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만성치열 수술 후기.
내 몸 한 군데 한 군데가 중요하다는 것은 관념적으로 알지만 치열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에는 사실 별 것 아니라고 여겼다. 그리고 왠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망설여지기도 했다. 창피한 일처럼.
결과적으로 항문, 즉 똥꼬 수술은 창피하다고 여기기엔 너무나 중요하고 막대한 고통을 수반하는 과정이었으며 그 뒤 관리 또한 어느 장기 못지않게 심혈을 기울여야 함을 느낀다.
이 주제로 글을 쓸 줄이야.
원인은 딱히 모르겠다. 아마도 다른 곳보다 겨울이 긴 지역에서 생활한 때문도 있으리라. 두 달 되었나, 힘겹게 일을 본지. 살면서 간혹 찢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면 금방 회복되곤 했다. 그러다 일주 이주 아픔이 지속되더니 어느 순간엔 동네에서 보았던 현수막이 번뜩 떠오르는 지경이됐다. 대장항문전문외과 현수막. 평소 현수막 근처를 지나가면 나와는 무관한 듯 관심도 없었는데 변기에 앉아 큰 괴로움을 겪고 있던 그날, 어느새 병원을 검색하고 있었다.
병원 가는 것은 미루는 게 아니란 말에 연차를 내고 당장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어떤 진단을 하거나 무슨 말을 할지는 전혀 안중에 없었다. 그저 고통을 덜고 싶었다. 그렇게 찾은 의사 선생님은 뜻밖의 말을 했다.
'수술해야 해. 상처 주위로 굳은살이 생길 정도로 오래돼서 이 상태에선 약도 안 들어. 궤양이 생긴 거야'
통증이 느껴져도 시간 지나면 낫겠지 하고 방치한 게 일을 키웠다. 어지간해서 약도 잘 안 먹고 병원도 잘 안 찾는데 수술이라니. 5월부터 무진장 바쁜 직장 일정 탓에 수술일을 보류하고 약을 타 왔다. 약을 먹다 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보았지만 결국 일주일 뒤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을 하게 되면 척추마취가 제일 두려운 건 줄 알았다. 물론 척추마취는 그 자체로 공포고 눈물 나게 별로다. 수술 날짜를 잡은 뒤 마주하는 한 단계 단계가 고통이었다. 검사부터 수술 후 배변 활동까지...
먼저 다양한 임상병리검사들, 항문압검사와 항문초음파다. 가벼운 마음으로 순서를 기다렸는데 고작 5mm 두께의 막대에 울부짖고 나왔다. 그다음은 손가락 두께의 기계로 여기저기를 본다.
'1분 남았어요'라고 말하고 한참이 지났는데, '이제 40초'
한참이 지났는데 20초밖에 안 지났다고요? 실없는 웃음이 터졌다. 난 정말 괴롭고도 어이가 없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똥꼬에 기계 넣고 웃는 사람 처음 본다고 같이 웃으셨다. 웃긴 게 아니었는데.
수술 날에는 아빠가 동행했다. 링거 바늘을 꽂는 것도 고통이었다 혈관이 도망친다고 피부 속에서 방향을 틀어가며 꽂았다. 이것도 아파하는데 수술을 잘 마칠 수 있을까. 너무 불안해하니까 수술할 때 주기도문을 외우라고 하셨다. 실제로 수술실에서 읊어보려 했지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만 반복했다. 다음 문장이 뭐더라. 머리는 새하얘지고 온갖 감각은 마취된 그곳에 집중되어있었다.
척추마취를 하기 위해 등판 전체에 소독을 했다. 그 차가운 솜이 등을 문지르는 느낌도 반갑지 않고 볼펜 같은 걸로 점을 찍고 선을 그리는 듯한 모션에 곧 바늘이 오려나보다 짐작하며 작은 터치에도 움찔했다. 겁에 질린 채 척추마취를 하고 나니 수술 전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고 가슴이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수술을 진행했다. 아직 느낌이 살아있는데 진행한다니 또 겁이 났다. 익숙해지지 않는 분위기에도 의사 선생님과 몇 번의 대화를 하고 나니 끝났다. 40분 걸린 듯하다.
마네킹이 된 듯한 다리의 감각은 6시간이 지난 뒤에야 돌아왔다. 마취가 풀릴 때까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아빠는 배고프다고 나를 두고 병실을 떠났다. 홀로 병원 천장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만들었다. 겁이 어쩜 이리 많은지. 수술 후 관리 영상을 보면서도 혹시나 내게도 응급상황이 생길까 하며 불안함은 자꾸 커졌다.
마취가 풀릴수록 수술부위가 화끈화끈해졌다. 밤 10시경 죽을 먹고 일어나려 하니 울렁이며 옆으로 쓰러지듯 누웠다. 간호사를 호출해 진통제를 맞고 고통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다 잠들었다. 두 시간 후 수술부위 통증이 선명해졌다. 그래도 여태껏 겪었던 생리통에 비하면 이길 수 있다 생각하며 버텼다. 주사를 무서워하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진통제 맞았을 거다.
수술 2일 차 시간 때마다 맞는 항생제와 식전 후 약, 척추마취로 인한 허리 통증, 팽팽하게 꿰매진 환부로 인해 어떤 자세를 취하든 아팠다. 모든 과정이 힘겨워 이 같은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되새겼다. 수술 3일 차가 되니 왜 입원을 2박 3일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긴 시간이 아니다. 처음에 고작 치열수술에 2박 3일 입원을 한다고? 했지만 그 이상의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수술부위가 매일 쓸리는 곳이라 아무는 시간도 오래 걸리니.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간혹 피가 한 바가지 날 수도 있다는데 그게 나면 어쩌지, 아직 대변 못 봤는데 집에서 보다가 큰일 나면(터지면) 어쩌지, 이전보다 아플까? 혹시나 다시 수술하면 정말 끔찍할 텐데 등.
이렇게 아프고 나니 다른 사람들은 이 아픔 몰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많은 사람들이 겪는 질병이라고 하니 조짐이 보일 때 관리 잘해서 수술하는 일 없기를 바란다. 걱정은 걱정을 낳으니 이제는 내려놓고 밥 잘 먹고 얼른 낫기를 바라는 게 좋겠다. 나는 부끄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끄럽지가 않어...
방금 화장실을 다녀왔다. 터질 거 같은 기분에 마치 자결하는 기분이 들었다... 수술환자들의 건투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