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숲을 찾은 고객은 알록달록 색색 옷을 입은 할머니들. 코로나로 인해 감염 고위험군이었던 노인단체를 맡은 건 어언 2년 만인가 보다. 개인적으로 반가운 고객은 아니었다. 나와 공통분모도 없다고 생각했고 뭔가 좀 그랬다. 배려는 하지만 마음이 가지는 않는 계층이랄까. 바쁜 시기에 만난 단체라 특별히 마음을 쓰지 못한 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평소처럼 물 흐르듯이 하리라 생각했다. 딱히,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불편한 걸음걸이와 굽어진 허리, 팽팽함은 사라진 피부와 빠마머리.(일반화가 아니라 그날 만난 이들의 모습을 기준으로) 그것을 추하다 할 순 없지만 아름답게 보이진 않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러나 동시에 드는 생각은 '저 여인이 내가 될 수 있다'.
그들은 타고 온 차량에 따라 각기 다른 시간에 도착했다. 곧 온다더니 20분, 40분, 1시간. 점심시간은 날아갔다. 어렵사리 상봉한 뒤 식전 혈당체크, 마감 직전의 식사 그리고 이후 일정을 안내드렸다. 할머니 단체는 잦은 이탈이 기본 옵션이었고, 하나하나 설명드림에도 당장에 궁금한 것만 물어보는 모습은 추가 옵션이었다. 그러다 큼지막하게 뽑은 사전 설문을 하며 깨달았다. 내 눈과 그들의 눈은 다름을. 질문을 읽고 해당 칸에 표시하는 동작은 내게 당연한 거였다.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동작. 그러나 누군가는 콩알만 한 글자가 깨알만 해 보인 거다.
문항수가 40개 이상이 되는 설문지를 손에 든 채 한 참 계시는 할머니. 도와드린다고 하니 다 읽어보셨단다. 난 무례하게도 믿지 않았다. 그저 궁금할 때 질문이 앞서고 다른 것에 집중하느라 제때 못 들을 때가 있을 뿐, 막무가내인 것은 아니었는데. 무식한 것도 아니었는데.
무릎이 닳고 다리가 벌어졌지만 유난히 발걸음이 활기차던 할머니. 그분은 젊은 시절 화려하게 꾸미고 하이힐 신고 서울 누비던 때와 같은 마음으로 사신다고 했다. 몸은 그때와 같지 않지만 마음은 그렇다고. 그 말은 씁쓸하기보단 당당하고 멋있었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인정하는 것이.
신체나이를 측정하는 시간이었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 상체를 숙여 손을 바닥에 대는 것. 어르신들은 '이게 안 되는 사람도 있어?' 하며 유연성을 뽐내셨다. 옆에서 보조로 따라 하던 나를 보며 안 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며 혀를 차셨다. 암 수술을 두 번이나 거치셨다는 할머니. 뻣뻣한 나를 보시고는 여유로운 웃음 보이신다. 건강이 제일이라는 진짜배기 잔소리와 함께.
흥이 나 춤추는 이들에게, 인솔하는 나의 뒤에서 '삐약삐약'하며 따라오는 이에게, 연애 기억을 떠올리며 설레는 이에게 그들은 말했다. 젊은 사람이 춤을 추면 예쁘고 화려한데 자신같이 나이 든 사람들은 그러는 거 아니라고 혀를 내두르셨다. 보기 흉하다는 할머니에게 '에이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하며 손을 잡고 흔들흔들하니 잡은 손 아래로 빙그르 도시고 웃으신다. 미의 기준과 자신의 모습이 다르다 할지라도 누군가 누리지 못할 즐거움은 없다. 어쩌면 누군가 동참하라고, 동심으로 돌아가자고 권하길 기다리셨을까? 거친 표현 뒤 순수함이 가득했다.
몸의 근육을 깨우는 시간. 생각보다 잘 따라오셨다. '우리 이런 거 매일 100개씩 해'라는 분도 계시고 '발가락 까딱까딱하는 게 뭔 운동이라고 나불대'라던가 다소 과격한 표현들이 오갔다. 아웅다웅하면서도 옆 사람과 손 잡으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주 잡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우시던지. 어찌 됐건 마른 사람, 퉁퉁한 사람 모두 나름대로 운동하고 계셨다. 자기 몸과 건강에도 관심이 많으셔 바르게 걷기 연습에 열중하셨다. 몸짓 하나하나에 잘하는 부분을 인정하고 칭찬해드리니 슬쩍 오셔서 귓속말을 하신다. 학창 시절 국가대표였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신다. 옛 기억에 키득키득하시는 모습과 비밀처럼 은근히 말씀하시는 모습에 그렇게 또 마음이 열린다.
노래하는 그릇이라 불리는 명상 도구 싱잉볼. 처음 보는 물건과 치고 난 뒤까지 울려 퍼지는 울림에 너도나도 눈을 못 떼신다. 아직 쌀쌀한 기후 탓에 손이 뻘겋게 되었는데도 쳐보겠다고 자기 순서를 기다리신다. 치는 것은 성공, 그러나 싱잉볼을 감싸듯 돌려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속상해하신다. 마음대로 안된다며. 우선 뒷사람을 위해 넘겨주지만 다시 한번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시다. 그 모습이 아이 같고 신선하다. 그 모습에서 왜인지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을까.
프로그램을 마치고 강당으로 돌아가는 길, 자신의 속도보다 한참 빠르게 걷는 할머니를 보며 말씀하신다. 쟤는 어려서 저리 빨리 간다고. 그 '젊으신' 분의 연세가 79세셨다. 농담하고 대놓고 웃어대기엔 아주 어린 29살은 피식거릴 뿐이었다.
처음엔 멀찍이서 할머니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어느 때엔 그들과 팔짱 끼고 걸었고, 모든 일정이 끝나고 귀가할 때엔 할머니와 포옹했다. 반갑지 않다면서 그들 속에 있어서 감사했다.
숲길을 이동하면서 한분 한분과 대화하며 꾸밈없는 모습을 보았다. 깊고 화려한 삶을 뒤로하고 현재 더욱 풍성한 삶을 살고 계셨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기쁜 일에 집중하면서 말이다. 빠마머리 꼬부랑 할머니들의 여유만만 반전 매력에 나이 들어도 괜찮음을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