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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Oct 17. 2022

서글픔

유일한 취미를 침해받았을 때

「서글프다」 1.외로워 불쌍하거나 슬프다 2.마음이 섭섭하고 언짢다

 산속에서 주말 없이 근무하는 내게 유일한 취미는 주 1회 있는 제과 수업이다. 근무시간 동안 고객에게 힐링타임을 선사하고(‘힐링타임’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제공하지만 내게 남아있는 육체 정신 에너지를 쥐어짜 내는 시간이다.) 나의 힐링인 제과 수업을 위해 퇴근 후 한 시간 반을 오간다. 아주 짧은 1시간의 수업이다. 정시 퇴근 후 4-50분 걸려 수업 시작보다 1-20분 늦게 도착한다. 그렇게 먼 길도 앞서 가게 하는 나의 ‘힐링타임’이다.      


스콘을 만드는 날이었다. 스콘 반죽의 포인트는 차갑게 그리고 빠르게. 2인 1조로 운영되는 수업방식이라 늦게 도착하는 내 대신 짝꿍이 먼저 반죽을 시작했다. 허겁지겁 달려왔지만 내가 하는 거라곤 짝꿍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빤히 바라보았더니 그제야 ‘한 번 해보실래요?’한다. 질문이 이상하다. 당연히 같이 하는 건데 내게 기회를 주듯. ‘네!’ 당연한 걸 뭘 묻느냐는 듯이 대답하고는 처음 해보는 방식(그릇이 아닌 평평한 바닥에서 반죽에 우유를 넣고 다지듯 반죽한다.)에 신나서 정성껏 우유를 넣어 반죽했다. 점점 질어지는 반죽. 짝꿍은 왜 반죽이 질어지냐며 질문했고, 선생님은 스콘은 질어지기 전에 빨리 끝내야 한다고 답했다. 그 말에 짝꿍은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면 내가 할 걸. 한번 해보라고 줬더니 세월아 네월아 해가지고.’, ‘빨리해야 하는 거면...’, ‘아 해보라고 줬는데.’ 이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게 아닌가.

     

나에겐 이 '과정'이 소중했다. 그렇기에 한 시간, 그중에서 내가 만드는 1/2 작업만을 위해 먼 길 시간 들여 오는 거였다. 그러나 실제 대부분의 작업을 짝꿍이 해버리니 그냥 무료 제과를 받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유일한 힐링거리라는 것이 더 서글펐다. 같은 수강생 눈치를 보는 것도 씁쓸한데 나를 탓하는 말에 맥 빠졌다. 짝꿍은 예쁜 결과물을 원했나 보다, 그래서 아까웠나 보다 등 그녀를 이해해보며 내 마음을 다독여봤지만 마음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이후로 짝꿍은 본인이 내 몫의 스콘까지 멋대로 모양내고 마무리해버렸다.     


울퉁불퉁한 마음이 올라왔다. 당혹스러운 감정은 이전에도 있었다. 퇴근시간 때문에 늦게 도착하는 나를 위해 선생님은 우리에게 물었다. ‘어차피 한 팀은 오븐 사용하려면 10분 기다려야 하는데, 오시는 시간에 맞춰서 시작하는 거 어떠세요?’ 감사함을 표현하기도 전에 짝꿍은 ‘어후 아니에요. 기다려주실 필요 없어요. 그냥 할게요.’ 나도 질문한 선생님도 당황했다. 그 후로도 종종 나를 배려하는 제안에 그녀는 나보다 앞서 거절했다. 내 의견인 마냥.     


그녀가 작업하는 동안 뭐라고 표현해야 불편하지 않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했지만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눈물이 났다. 이런 작은 것 때문에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게 초라하기도 하고, 작은 취미 하나 지키지 못한 게 서럽기도 해서. 다음 주에도 불편할 거라 예상되는 것도 꽤나 슬펐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아무나 내 취미를 침해하도록 두지 말아야겠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내 탓을 하기 전에 표현해야겠다. 이 시간을 다시 소소한 즐거움의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내 욕구, 바람을 분명하게 말할 필요를 느낀다.


저, 이거 만들러 온 거예요. 못생겨도, 맛없어도 직접 만들고 싶어요!




 한 주가 지나 우연히 선생님과 대화할 시간이 생겼다.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니 공감하시며 대책을 만들어주셨다. 다시 즐겁고 재밌는 시간 보낼게요. 다른 사람의 기분도 고려하겠지만 그전에 제 기분 먼저 챙겨줘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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