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코로나 직장인 3년 만에 해외여행을 떠나요.
타인의 감정과 말, 행동에 과한 에너지를 뺏기던 모습을 발견하고는 ‘자신에게 집중하기’를 당분간의 목표로 세운다. 내 마음 알기, 내 바람 이야기하기. 이를 위해 감정을 기록하고자 한다. 첫 감정은 산뜻하게 설렘으로.
[설레다] 1. 들떠서 두근거리다 2.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자꾸 움직이다
2019년 10월 입사 후 줄기찬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3년 만의 해외여행을 떠난다. 수능 이후로 매 해 공항을 찾으며 자유로웠던 삶에 마스크가 채워졌었다. 그 사이 숲이란 보기 좋은 곳에 고립되어 개인의 삶이 사라졌다. 게다가 팀장님의 폭주로 나를 포함한 팀원들의 바이오리듬은 파괴되고 스트레스를 대처하는 능력도 바닥났다. 공공기관 직원으로서 주된 업무는 미뤄두고 팀장이 중요시 여기는 일을 하느라 주부습진이 생기도록 설거지를 하고 ‘언니’ 혹은 ‘아가씨’라는 언어 감수성 부족한 단어로 칭해지는 것에 질려갔다. 그러다 보니 고객의 ‘행복한 하루’를 축복하던 유연함이 사라졌고, 아쉬움을 고하는 고객에는 공감이 어렵고, 분노를 표출하는 고객에게 따박따박 논쟁하기 잦아졌다. 그때 결심했다. 떠나기로.
‘더 이상 쿠션 없는 충돌에 나를 노출하면 안 된다. 고객이던 팀장이던 웃으며 대하려면 지금 멈춰야 한다.’
급박하게 준비하는 여행이 처음엔 불안했다. 가도 되는 걸까? 이렇게 바쁜데? 아니 지금 가야 해. 내 욕구를 알기에 단호했다. 혼자 갈 수 있을까? 시끌벅적하던 삶에서 벗어나길 바랐음에도 갑자기 낯설었다. 그래도 가야 한다. 지금과 동일하게 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제어되지 않고 충동적인 순간들이 잦았기에. 그러고는 숙소, 액티비티, 맛집 등을 순차적으로 알아보자 심장이 쿵 쿵 뛰기 시작했다. ‘가도 될까?’에서 시작한 마음이 점차 ‘가야만 해!’가 되었다.
이미 한 자릿수 기온이 자연스러운 강원도 산자락을 벗어나 뜨뜻하고 높은 하늘이 펼쳐진 섬으로 간다니. 아침에 눈을 떠 풀이 아니라 물을 볼 수 있다니. 저녁엔 어둔 적막이 아니라 붉게 고요한 노을을 볼 수 있다니. 푸르디푸르러 투명한 바닷속을 거북이와 함께 누빌 수 있다니. 내겐 도전적인 다이빙을 다시 시도해본다니! 그뿐인가, 유기농과 다양한 나라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뭣보다 화려하고도 엄마 말로는 촌스러운 수영복을 구경할 수 있다. 하나하나 알게 될수록 이미 나는 그 곳에 존재했다. 이게 상상 여행으로 끝난다면 허망하겠지만 상상이 현실이 될 날이 다가왔다. 이 자체가 설렘이 아닐 수 있을까.
쓰다 보니 어쩌면 이 설렘은 내 마음가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현재의 숲 속 직장인의 삶에서도 감사를 찾고 설렘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몸과 마음이 튼튼해진다면, 충격 완화 능력이 새로워진다면 말이다.
여행을 떠나며 나는 기대한다. 일 생각을 떨치고 연락을 자연스레 끊어버릴 수 있는 자유를.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만나는 인류애를. 익숙한 환경을 떠나 발견되는 새로운 나를. 어쩌다 생기는 난감함을 해결하며 성장하는 즐거움을.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을 기대한다. 그것이 날 설레게 한다.
짧은 시간 후회 없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려 한다. 좋아하는 물놀이를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활기찬 하루를 보내고, 스르륵 잠들며. 그렇지 않더라도 감사할 거다. 코로나 확산으로 사람 발길이 줄어 회복된 여행지처럼 나도 환기하고 미움 버리고 깨끗해져 올 거다.
그럼 이제 그 여정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