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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행복한 마을은, 예쁘다

아스토르가(Astorga)

by 그린망고

간디는 말했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동물이 어떻게 대우받는가로 가늠할 수 있다고.


전적으로 동의한다. 덧붙이자면, 한 마을의 인심은 그곳의 길냥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순례길을 걸으며 수많은 고양이들과 마주쳤다. 우리나라 도심의 고양이와는 달리 사람 손을 피하지 않는다. 인간을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 걸 보니, 나름 대접을 받고 사는 듯하여 보는 나도 마음이 편안하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두려운 눈망울로 멀찍이서 바라만 보고 있는 녀석들이 이따금씩 보인다.






반들반들 윤기 나는 털을 가진 고양이들이,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도도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동네에 가면 나는 행복해진다. 동네 사람들까지 이유 없이 좋아진다.


그런 동화 같은 마을 중 하나가 아스토르가(Astorga)다. 프랑스길 800km 여정의 3분의 2를 조금 더 지나면 나오는 작은 도시.


처음 가보는 장소임에도 괜스레 정이 가는 곳이 있다. 내리 낯설기만 한 곳도 있는 반면. 나는 이곳이 첫눈에 맘에 들었다.


언덕 위의 마을은 대체로 예쁘다. 아스토르가 공립 알베르게의 테라스에서는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도시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귀여운 규모다. 산타마리아 대성당과 가우디의 주교궁(Palacio de Gaudí)만이 “이래 봬도 나, 도시 맞거든.”하고 나설 뿐이다. 대성당과 주교궁 내부에는 가톨릭 박물관과 종교예술박물관이 각기 조성되어 있는데, 비종교인이 관람하기에도 꽤 흥미로운 전시물들이 많았다.


“아, 재밌다. 이 도시!“


이제 둘러보기 시작했을 뿐인데, 벌써 다시 오고 싶어진다. 아스토르가에서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다.


아스토르가의 거리는 정갈하고 예술적이다. 담벼락에 그려진 그라피티는 단정하고 격조가 있다. 색의 대비가 강렬하고 자극적인, 흔히 보는 그런 류의 벽화가 아니라 예술작품에 가깝다.


위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분명 선명한 원색이었는데, 구석구석 들여다보니 차분한 파스텔 톤이다. 도시마다 저마다의 색깔이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여행지에서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하는 곳. 나에게 있어서는 아마도 골목과 시장, 공원 정도일 것이다. 아스토르가에는 공원이 몇 있는데, 공립 알베르게 옆의 시나고가(Sinagoga) 공원에 우연히 들렀다가 이 동네에 눌러앉고 싶어졌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고양이 마을 내지는 엘리스의 이상한 나라에 뚝 떨어진 기분이다.


엘리스의 토끼마냥 인간이 지나가든 말든 각자의 볼일에 몰두하고 있는 고양이들. 번뇌 많은 결계 밖의 인간이 신기한 듯 어쩌다 한 번 힐끗 눈길을 줄 뿐이다.


세상 예리한 눈으로 비둘기를 쏘아보다 이내 쏜살같이 달려보지만 깃털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허당미. 동물이 본성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


고양이가 행복한 마을은, 예쁘다.


시나고가 공원의 고양이들
산타마리아 대성당
산타마리아 대성당 가톨릭 박물관 내부의 조형물
가우디 주교궁
주교궁 내부
멜가르 공원에서 바라본 가우디 주교궁
아스토르가의 사랑스러운 상점들
아스토르가 초콜릿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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