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키야 배낭을 돌려다오
순전히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에다가 ‘사건’이란 말을 갖다 붙인다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절체절명의 ‘사건’이었다.
순례길에는 ‘동키(Donkey)‘라는 것이 있다. 배낭을 그날의 목적지 숙소까지 실어다 주는 배송 서비스라고 보면 되겠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귀여운 동키가 실제로 짐을 옮기는 건 아니다. 그랬다면 안쓰러워 이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알베르게의 프런트에는 운송업체들의 봉투가 놓여 있다. 엽서만 한 종이봉투인데 그 안에 배송비를 넣고 밀봉한 후, 배낭에 매달아 로비에 놓아두면 업체에서 매일 아침 픽업을 해 간다. 봉투 겉에는 신청자 이름과 연락처, 도착지 주소를 적는 란이 있다. 숙소를 정하지 않고 걷는 날엔 공립 알베르게 주소를 적었다. 숙박은 다른 곳에서 하면서 얌체같이 배낭만 찾아가기도 했다. 공립인데 그 정도의 아량은 베풀어주겠지 하고 멋대로 합리화하면서.
동키서비스를 반칙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본디 순례길은 고행과 성찰의 길이었으니, 무거운 짐을 직접 지고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과정 자체에 순례의 의미와 가치가 담겨 있다고 믿는 것일 테다.
충분히 납득하고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종교적 이유로 이 길을 찾은 사람이 아니다. 그저 여행을 좋아하고 걷기를 즐기는 일개 한량에 불과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체력이 저질이다. 사고 없이 완주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첫날부터 나는 일말의 가책도 없이 동키 서비스를 이용했다. 마침 친구가 이 부실한 몸뚱이를 걱정해 동키에 쓰라며 노잣돈을 얹어 주기도 했었고.
그렇게 열흘 남짓을 작은 배낭만 멘 채 홀홀홀홀 가벼운 걸음으로 로그로뇨(Logroño)까지 왔다. 로그로뇨는 팜플로나(Pamplona)에 이어 순례길에서 만나는 두 번째 대도시였다.
빨래를 하고 거리로 나가니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웠다. ‘아니, 내가 이렇게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아무런 정보 없이 도착한 도시는 축제 기간이었다. 로그로뇨의 수호성인, 산 베르나베(San Bernabé) 성인의 축일인 6월 11일을 전후로 열리는 축제라고 한다.
광장은 먹거리로 넘쳐 나고 골목마다 가판대가 빈틈없이 들어섰다. 거리에는 전통 복식을 차려입은 행렬이 흥겹게 춤을 추며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야, 신난다!”
로그로뇨에 오면 꼭 맛봐야 한다는 양송이 타파스도 먹고, 완전 맛있는 아이스크림 체인점도 발견했다. 모든 것이 완벽한 하루였다.
로그로뇨에서는 알바스(Albas)라는 사설 알베르게에 묵었는데, 알베르게에 배낭을 맡겨 두고 빌바오(Bilbao)와 산세바스티안(San Sebastian)을 다녀오기도 했다.
며칠간 순례길을 이탈해 다른 지방을 여행하고 돌아오니 배터리를 풀로 충전한 듯한 기세다. 얼른 다시 걷고 싶어 안달이 났다. 정들었던 로그로뇨를 떠나 나헤라(Nájera)로 가던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배낭은 동키로 보내고 룰루랄라 신나게 길을 나섰다.
날씨는 눈부시게 화창했다. 공원에서 만난 붉고 풍성한 털을 가진 청설모 세 마리가 단숨에 내 몸을 타고 오르는 진기한 경험도 했다. 발톱이 어찌나 날카롭던지, 비명을 지르는 통에 순식간에 후다닥 도망을 가 버리긴 했지만.
'내가 더 놀랐다, 이놈들아.'
나무 그늘이 적당히 드리운 평지가 이어져 걷기가 수월하다. 한적한 저수지에서 평화롭게 낚시를 하고 있는 영감님을 지나, 아직 영글지 않은 푸릇한 송이가 싱그럽게 열린 포도밭 사이를 걷는다. 리오하(Rioha) 지방은 와인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러다 꽃다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아름다운 마을 공동묘지 앞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그렇게 순조롭게 하루가 흘러가는 듯했다.
몇 킬로를 걸었을까. 발이 이상하다. 그동안 야금야금 올라오던 족저근막염이 본격화되는 듯하다. 발을 디딜 때마다 뒤꿈치에 대못이 백 개는 박히는 것 같다. 이 상태로 나헤라까지 갈 수 있을까. 배낭을 이미 보내놨으니 다른 수가 없다. 까치발로 세월아 네월아 가는 수밖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나헤라에 도착했다. 마을 초입의 공원에 앉아 사설 알베르게를 예약하고 가까운 바르(Bar)에 들어가 빠에야를 주문했다.
어머, 웬일! 인생 빠에야를 만났다. 발이 아파 죽겠는데도 식욕은 왕성하고 입맛은 살아있다. 그게 나다.
나는 국물이 자박하니 질척하게 나오는 빠에야보다 꼬들꼬들 볶음밥에 가까운 빠에야를 좋아한다. 바로 그런 빠에야였다. 내가 먹어 본 순례길 빠에야 중 단연 최고였다. 잠시나마 육신의 고통마저 잊게 해 준 고마운 빠에야.
앉았다 일어나니 발바닥이 더 뻣뻣해졌다. 깽깽이걸음을 시전하며 배낭을 찾으러 공립 알베르게로 향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배낭이 없다. 다른 사람들의 배낭은 이미 다 도착해 있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진다. 어떻게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할지 머리를 굴려야 하는데 회로가 멈춰 섰다.
분명 아침에 로비에 쌓여있던 짐들 사이에 두고 왔는데. 내 배낭만 빠뜨렸단 말인가. 다른 주소로 오배송된 것인가. 정신을 차리고 로그로뇨에서 묵었던 알베르게 사장님께 전화를 했다. 로비에는 남아있는 배낭이 없다며 운송업체로 직접 연락을 해 보란다. 업체 직원이 이야기하기를, “알바스 알베르게는 신청 들어온 게 없어서 오늘 픽업 안 갔는데.”
다시 알베르게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왜 신청을 하지 않았냐고 따져 물었다.
”그거 네가 직접 신청해야 되는 거야. “ 하며 봉투에 쓰여 있는 안내문을 찍어 보내주셨다.
‘서비스를 요청하기 위해 JACOTRANS(업체명)에 통지할 책임과 의무는 전적으로 고객에게 있으며 숙박시설이 아닙니다.‘라고 떡하니 한글로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쳇.
지금껏 이용했던 알베르게에서는 배송비 봉투를 매달아 로비에 두기만 하면 알아서 픽업을 해갔었다. 아마도 알베르게에서 취합하여 업체로 신청을 하는 거였나 보다. 그런데 알베르게 알바스는 신청 대행을 해 주지 않는 곳이었던 거다.
이런 불친절한 업소 같으니. 하얗던 눈앞이 이제는 까매졌다. 이대로 순례를 접어야 하는 것인가. 오만가지 안 좋은 생각들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엄한 알베르게 사장님께 화풀이를 해댔다. 그러다 이성이 돌아오니 뭔가 부끄러워졌다.
결국은 내 불찰이다. 확인을 했어야 했다. 핑계지만 새벽 시간이라 프런트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전날 저녁에 미리 확인을 했어야지. 쭈욱 그래왔으니 당연히 그런 건 줄 알았지. 자학과 남탓을 넘나들며 내적갈등이 심화되던 중, 아침에 로비에 쌓여있던 짐들이 떠올랐다. 운송업체는 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짐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장님께 다시 물었다.
“그 짐들은 다 뭐였어?”
잠시 후 회신이 왔다. 그날 같이 묵었던 브라질에서 온 자전거 단체 순례객들의 짐이었단다. 아무래도 거기에 딸려 간 거 같다. 혹시 연락처를 알 수 없을까 여쭤보니 기다려 보란다.
“띠리링”
조금 지나니 동영상 파일이 하나 날아왔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니 차가운 타일 바닥 위에 널브러져 있는 회색 덩어리가 하나 보인다. 아, 아, 레인코트를 입고 있는 그 가련한 물체는 집 나갔던 내 배낭이 맞았다.
“이 가방이 네 가방이냐?”
“예, 예. 맞습니다. “
눈물이 찔끔 났다. 가방의 행방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브라질 순례 단체의 한 분이 자전거로 내가 묵고 있는 숙소까지 배낭을 가져다주시기로 하셨단다.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알베르게 사장님께 투덜대던 못난 내가 더욱 부끄러워진다.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앉아 그분을 기다린다. 잠시 후, 익숙한 배낭을 손에 들고 등장하는 한 남성. 저 후광은 무엇. 감동이 밀려온다.
자전거를 타고 갔으니 꽤 멀리까지 갔을 텐데. 그 먼 길을 다시 돌아온 걸 생각하니 고맙고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한국에서 기념품이라도 좀 챙겨 올 걸. 가방 무게를 줄일 요량으로 그런 건 생각도 못했다. 참, 더불어 사는 걸 모르는 모자란 인간이다. 마땅히 보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무례하나마 현금을 봉투에 넣어 건네는데,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거절하신다.
브라질에서 온 천사는 그렇게 배낭만 전해주고 홀연히 날아가 버렸다.
정신이 쏙 빠지는 하루였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언제나 마무리는 해피엔딩이다.
그날 이후로 난 동키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극적으로 재회한 내 배낭은 신줏단지 모시듯 앉으나 서나 업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