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 찾아온 공황

20년을 함께 해 온 공황 이야기

by 그린망고

공황 발작(Panic Attack)이란 말을 처음 들은 건 호주에서였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열리고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나는 캔버라의 버스터미널에서 멜버른행 야간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캔버라에서 멜버른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의 거리지만, 버스로는 8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코스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젊은 여행자들은 주로 야간에 출발해 새벽에 도착하는 버스 편을 이용한다. 야간버스라면 동남아시아에서도 여러 번 타 본 적이 있었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은 이번엔 나 혼자라는 것이다.


터미널 대합실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몸이 좀 이상하다. 손이 얼음장처럼 차다. 손가락이 불판 위의 오징어처럼 맥없이 오그라든다. 한기가 들어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몸살감기인가. 아, 숨이 답답하다. 뭐라 딱 꼬집어 설명하긴 어렵지만 어딘가 편치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여도 보고 조물조물 주물러도 보지만 나아지기는커녕 팔다리까지 뻣뻣해지려 한다. 이런 상태로 8시간이나 버스를 탈 수 있을까.


마지못해 버스에 몸을 싣는다. 중간 열의 창가 좌석이다. 옆자리엔 거구의 서양 남성이 앉는다. 갑자기 가슴이 옥죄여 온다. 숨을 못 쉬겠다. 아, 몸이 왜 이러지. 앞자리에 앉은 또 다른 거인이 좌석을 있는 대로 뒤로 젖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댄다. 이대로 가다간 죽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지.


차가 움직인다. 곧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이 숨 막히는 공간을 탈출할 기회는 아예 사라진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진다. 옆에 앉은 남성을 붙들고 “나 죽을 것 같아. 심장이 이상해." 하며 울부짖는다. 놀란 남성이 부리나케 기사님에게 달려가 뭐라 뭐라 얘기를 한다. 이윽고 차가 멈추더니 기사님이 나에게 다가온다. 맨 앞 좌석 승객과 자리를 바꾸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아니야, 나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병원에 가야 돼. 제발 나 좀 내려줘!"


기사님이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구급차가 등장했다. 일이 커졌다.


그런데 큰일이다.

몸뚱이가 멀쩡하다.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실은 버스가 멈춘 순간부터 그랬다. 요동치던 심장은 차분히 가라앉고 몸에 온기가 돌아왔다. 숨쉬기도 편해졌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난리 치던 인간은 어디 간 거니. 별안간 나일롱 환자가 되어 버렸다. 구급차까지 왔는데 나는 이제 어찌해야 하나.


일단 구급차에 올라 다소곳이 누웠다. 최대한 가련한 표정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Panic attack인 듯하다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한다. (패닉 공격이라고? 그게 뭐지?) 그렇게 병원으로 실려갔다.


대기실에 앉아 진료를 기다린다. 1시간이 지나도 2시간이 지나도 기별이 없다. 옆에 앉은 환자는 아파 죽겠다고 울고불고 난리인데도 무작정 기다리란다. 더 중한 환자들이 있는 건지 의사가 늑장을 부리는 건지. 이런 심각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려니 어쩐지 미안하고도 민망한 맘이 든다. 촌각을 다투는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서.


잠시 고민 끝에 진료를 포기한 채 택시를 타고 전날 묵었던 시내의 숙소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우니 안도감에 온몸의 긴장이 풀린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Panic attack이란 단어를 폭풍 검색했다. 우리 말로는 공황발작이란다. 증상을 읽어보니 어제의 내 상태 그대로다. 생각해 보니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몇 년 전 태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심한 에어포켓을 만나 비행기가 순식간에 몇백 미터를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비행공포증이 생겼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어제와 비슷한 증상이 찾아오곤 했다. 그런데 그게 공황발작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어쨌든 이날 이후로 나는 더 다양한 상황에서 공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20년을 넘게 공황이란 녀석을 끼고 살았다.






프랑스길 800km 여정의 1/3 즈음을 지나면 순례길 도상에서 가장 큰 도시인 부르고스(Burgos)를 만난다.

카스티요 전망대(Mirador Del Castillo)에서 바라본 부르고스


부르고스에서 레온(León)에 이르는 약 200km의 고원 평야 지대를 메세타(Meseta)라고 부른다. 지평선을 따라 광활한 들판이 끝없이 이어지는 이 구간은, 반복되는 풍경에 볕을 피할 나무 하나 찾기 힘들어 간혹 건너뛰는 순례자들도 있다.


나는 6월 하순부터 메세타를 걷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 스페인의 한낮 더위는 열사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더위를 먹지 않으려면 이른 새벽 길을 나서야 한다.


한 번은 땡볕 아래 지열이 이글대는 들판을 혼자 걷다 공황이 찾아온 적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공황발작의 전조증상인 예기불안이 엄습한 것이다.


더위를 먹었는지 머리는 핑핑 돌고 숨은 답답해 오는데,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다. 사방은 온통 밀밭이다. 눈앞에 놓인 길은 끝이 있기나 한 건지. 빠져나갈 곳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주변엔 아무도 없다.


예기불안을 서둘러 잠재우지 못하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와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지고 만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공포. 겪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두려움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황은 마음에서 오는 병이다. 마음을 다스려야 벗어날 수 있다. 직면한 상황이 실상은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현재의 신체 증상이 과도한 불안에서 비롯된 왜곡된 반응이란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나는 살면서 수없이 이런 상황을 겪어왔기에 불안을 컨트롤하는 법을 조금은 터득한 듯하다.


차가워진 손을 주무르며 천천히, 깊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반복하여 되뇐다. “이런 일로 죽지 않아. 벗어날 수 있어. 곧 괜찮아질 거야.”


가슴을 뚫고 나올 듯 나대던 심장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한다. 마음의 평정이 되돌아온다. 작은 나무 그늘을 만난 덕이기도 하다.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메세타를 무리해서 걸으라고 권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더위나 추위에 대처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누군가와 동행한다면 문제없이 잘 지날 수 있을 것이다.


메세타를 걸을 당시 나의 정강이 통증은 극에 달했었고, 파스를 붙였던 곳엔 알레르기 발진이 올라와 한창을 고생하던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세타를 그냥 지나치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두려움 때문에 메세타를 포기하기엔 메세타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답다. 지평선 위로 가득한 하늘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얼마나 되겠는가. 흔히 말하는 ‘윈도즈 배경화면’을 다 모아놓은 곳이 바로 이곳 메세타다. 감히 프랑스길의 정수(精髓)라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 프랑스길을 다시 찾게 되어도 나는 아마 이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순례길에서 만난 네 개의 대도시 중 가장 맘에 들었던 부르고스


메세타의 아름다운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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