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오(Lusio)에서 만난 사람들 (1)
이 이야기는 루시오(Lusio)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소소한 넋두리다.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달랑 두 명이다. 이탈리아 여자 프란체스카와 미국 남자 리카르도.
뭐 대단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다. 사람이 서툴고 어려운 내향형 인간의 대인(對人) 체험기라 해 두자.
그날 루시오 공립 알베르게의 투숙객은 나와 저 둘이 전부였다.
오늘 걷는 구간은 산길이지만 도중에 마을이 많아 쉬엄쉬엄 갈 수 있다. 날도 궂은데 다행이지 뭔가.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라는 마을을 지난다. 오늘의 출발지인 리냐레스(Liñares)에서 약 18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산골마을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는 140여 킬로미터가 남았다. 하루하루 차곡차곡 걷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나 와 버렸다. 기나긴 소풍이 끝나간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아쉽기만 하다.
마을을 벗어나려 하니 표지석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 게 보인다.
갈림길이다. 사모스(Samos)와 산실(San Xil) 방면 중 선택해야 한다. 사모스로 가면 7km가량을 더 걸어야 한다. 찾아보니 사모스 길은 남쪽으로 우회하는 코스이고, 산실 길이 북쪽을 가로지르는 공식 루트다.
사모스를 택하는 이들은 대부분 '산 훌리안 데 사모스 수도원(Monasterio de San Julián de Samos)'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6세기에 세워진 이 수도원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베네딕토회 수도원 중 하나라고 한다.
산실 방향은 울창한 숲길과 작은 마을들을 지나는, 전형적인 갈리시아의 시골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길이란다. 내 취향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통밥으로 미루어 보건대 거리가 짧은 만큼 길은 더 험할 것이 분명하다. 평소 같았으면 힘이 들더라도 당연히 이 길을 택했겠지만, 오전 내내 비를 맞으며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했더니 이젠 조금 평탄한 길로 가고 싶다.
사모스로 가기로 한다.
흠...
아스팔트다.
평탄한 길이라 했지 도로변이라 하진 않았다. 쳇.
그나마 보행로는 나무 데크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
빗방울이 굵어진다.
'그래, 비 오는 날엔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탕보단 반듯한 신작로가 낫지.'
라고 중얼대기가 무섭게 바로 흙길이 나온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간이다. 일희일비하지 말자.
순례길에 들고 간 것 중 의외로 유용하게 사용했던 것 중 하나가 우양산이다. 우천 시에도, 땡볕 아래서도 꽤나 쓸모가 있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속해 있는 갈리시아 주는 비가 잦은 지역이다. 폭우를 만난 적은 많지 않지만 새벽엔 부슬비가 자주 내렸다. 가벼운 빗발에는 우의보다 우산이 훨씬 편하다. 우의는 일단 움직임이 부자유스러운 데다, 배낭에서 뭐 하나 꺼내려해도 입었다 벗었다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다. 덥기는 또 얼마나 더운지 한증막이 따로 없다.
스스로를 태양교 신봉자라 부를 만큼 여름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스페인의 자외선은 두려운 존재다. 모자 하나로 막아내기는 역부족이다. 특히나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재질의 모자를 장시간 쓰고 있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열사병에 걸리는 수가 있다. 모자를 쓰려거든 열 배출과 땀 증발이 용이한 통기성 좋은 소재를 골라야 한다. 어쨌든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볕이 내리쬐는 날에는 양산이 제격이다.
그뿐이냐. 외딴 길에서 사나운 들개를 만났을 때 우산은 나를 좀 더 위협적인 존재로 위장시켜 줄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물론 나는 그런 용도로 사용해 본 적은 없다. 나는 집개든 들개든 다 좋아하기 때문에. 어쩌다 박박 짖어대는 애들을 마주치면 인간에겐 좀처럼 구사하지 않는 살가운 말투로 살살 달래준다.
"아가, 목 아프다. 고만 짖어라~~
아줌마 착한 사람이야. 해치지 않아.
그냥 조용히 지나갈게.
나 간다. 안녕~~!"
태국에서 늘 써먹었던 방법이다. 운이 좋았던 건지 다들 무사히 통과시켜 주었다. 고맙게도.
여행이 끝나갈 무렵엔 모진 풍파 끝에 우산 살이 다 부러져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순례 내내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등산 스틱 없이 다녔기 때문에 손이 자유로워 가능했던 일이다.
거미줄에 맺힌 빗방울이 영롱하기도 하다. 알알이 탱글 하게도 열렸다.
'산 크리스토보 도 레알(San Cristovo do Real)'이라는 절대 외워지지 않을 것만 같은 이름의 마을을 지난다. 하늘이 개기 시작한다. 사모스(Samos)까지 걸어가 볼까 하다 이내 그만두기로 한다. 사모스까지 가게 되면 총 27km를 걷는 것이다. 새벽부터 우중 산길을 걸어온 터라 27km는 무리다. 무리하지 않기로 맘먹지 않았던가. 다음 마을에서 멈춰야겠다.
찾아보니 가장 가까운 마을은 루시오(Lusio)라는 곳이다. 지도를 보니 방향이 조금 애매하다. 순례길 루트를 벗어나 사모스의 반대 방향으로 1km가량을 가야 한다. 잠시 고민해 보지만 어차피 다른 옵션이 없다. 사모스까지는 6km를 더 가야 하니 루시오로 가는 수밖에.
루시오까지는 차도를 따라 걸어야 한다. 인도가 따로 없다. 차가 많이 다니지는 않지만, 어쩌다 지나는 차량들은 쌩하니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바람을 일으키며 질주한다. 루시오가 순례길에서 벗어난 방향이라 들르는 이들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보행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을 걸 보니.
15분 남짓 걸었으려나. 저만치로 고깔 모양의 첨탑이 봉긋하게 솟아있는 하얀 건물이 보인다. 마을 어귀에 덩그러니 서 있는 이 이국적인 건축물이 루시오의 공립 알베르게인 '카사 포르테 데 루시오(Casa Forte de Lusio)'다. 중세시대의 요새를 연상시키는 이곳은 1551년 지어진 '로페 데 루시오(Lope de Lusio)'라는 봉건 귀족의 저택을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외관은 낡아 보이지만 내부는 모던하게 리노베이션 되어 있었다. 여느 대도시의 공립알베르게에 뒤지지 않는 시설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우측으로 리셉션 오피스가, 정면에는 널찍한 로비에 다이닝 공간과 주방이 벽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다. 조화롭게 어우러진 하얀 회벽과 베이지톤 석벽 위로는 호두나무 빛깔 서까래가 멋스럽게 늘어서 있다. 같은 색조의 원목으로 꾸며 놓은 테라스에는 아래층 정원으로 이어지는 데크가 깔려 있다.
도미토리는 로비층과 상층에 배치되어 있다. 나는 로비층에 있는 도미토리를 배정받았는데, 제법 여유 있는 공간에 벙커 침대 세 개가 간격을 두고 놓여 있었다. 아래층에는 화장실과 샤워실, 세탁실 그리고 정원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시설도 공간도 여유 있고 쾌적했다.
큼직한 주방이 무색하게도 취사는 불가능하다. 화재와 관리 문제로 취사를 금하는 공립 알베르게가 꽤 있다. 대신 저녁이나 아침 식사를 유료 또는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도 전자레인지는 있으니 간단한 밀키트는 조리가 가능하다. 단, 루시오에는 마트가 없으니 이전 마을인 트리아카스텔라에서 장을 봐 와야 한다. 식기와 커틀러리도 각자 구비해야 한다.
방에 들어서니 한 여성 순례자가 핸드폰을 붙들고 울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통화를 한다. 이탈리아에서 온 프란체스카라는 이름의 순례자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발에 생긴 물집이 원인이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통증이 심했나 보다. 엄마와 친구들에게 하소연 중이었단다. 딱하게도, 얼마나 아팠으면. 나는 순례길을 걷는 동안 물집으로 고생한 적이 없어 어느 정도의 고통인지는 솔직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마음씨 좋은 알베르게 봉사자분께서 직접 붕대까지 말아가며 처치를 해 주시고는 히터를 가져다 틀어주셨다. 7월이지만 비 내리는 갈리시아 산골은 꽤 쌀쌀하다.
꿉꿉한 몸뚱이를 씻어내고 점심 먹을 곳을 찾아본다. 이 마을엔 바르(Bar)도 없다. 문득 궁금해져 주민 수가 얼마나 되는지 찾아보니 통계가 없단다. 한 자릿수로 추정된다고 나온다. 하긴 알베르게 주변으로 보이는 집 몇 채가 전부였다. 나가는 길에 프란체스카에게 뭔가 요깃거리라도 사다 줄까 물으니 파스타를 사 온 것이 있어 벌써 먹었단다.
알베르게를 나서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월월월' 우렁찬 멍멍이 소리에 발을 멈춘다. 발원지가 어디인고 두리번 찾아보니 건넛집 2층 테라스다. 난간을 잡고 서서 박박박 짖고 있는 어깨가 떡 벌어진 우람한 강아지. 아, 귀여워. 이런 사랑스러운 생명체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다.
안녕!
아까 왔던 길을 1km가량 되짚어 걸어 나가면 바르가 하나 있다. 다시 도로 가장자리를 조심스레 걷는다. 말갛게 갠 하늘이 반갑다. 10분쯤 걸으니 '아 칸티나 데 렌체(A Cantina de Rench)'라는 간판이 보인다. 야외 테이블에 여남은이 넘는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모임인 듯하다.
나도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조금 과한 점심을 먹는다. 옆 자리에 먼저 와 있던 순례자가 과카몰리를 얹은 바게트를 맛보라고 건넨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다. 뭐 이 동네에 알베르게는 하나뿐이니 놀랄 일은 아니다.
미국에서 온 이 남성의 이름은 리카르도다. 라틴계 미국인인 리카르도는 남미 특유의 뜨거운 에너지와 넘치는 흥을 가진 자다. 내 기준, 10분 정도까지의 대화는 매우 즐거웠다. 조금 더 인심을 쓰자면 20분? 그런데 그 이상으로 길어지니 진이 빠지기 시작한다. 직계에서 시작해 방계 가족으로 이야기가 퍼져 나간다. 친절하게도 사진까지 매칭시켜 가며 지나치게 사적이고도 시시콜콜한 가족사를 들려준다.
나의 장점이자 단점은 진심 어린 경청과 찰진 리액션이다. 그렇다 보니 상대방은 이야기를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도무지 어디에서 어떻게 끊어야 할지를 이 나이 되도록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처세랍시고 궁리해 낸 방법이 애당초 상대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다. 대화를 시작조차 못하도록. 그러나 오늘은 바르의 구조상, 그리고 그 친구의 성향상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저 구석탱이에 앉아있었어도 그는 나를 홀로 내버려두지 못했을 것이다.
거의 1시간이 넘는 (주로 일방적인) 대화가 끝나고 알베르게까지 같이 걸어오는데 더 큰 난관에 봉착했다.
"내일 아침에 같이 출발할래?"
'헉'
한 술 더 떠, 지름길을 알아냈다며 조금 난코스이긴 하지만 그 길로 가보잔다. 당시 내 발과 다리는 그렇게 실험적인 도전을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응, 거절해. 얼른 싫다고 말해.
"응. 그래. 몇 시에 출발할까."
주둥이가 맘에도 없는 말을 또다시 배출하고 말았다. 고독한 내적투쟁이 시작되었다.
알베르게의 자그마한 뒤뜰에서 바라본 일몰은 참 아름다웠다. 바람 따라 흐르는 구름이 시시각각 하늘의 모양을 바꾸어 놓는다. 내내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물집으로 고군분투 중인 이탈리아 여성 프란체스카, LA에서 온 흥부자 리카르도, 그리고 당장 내일 아침이 걱정인 나란 인간. 오늘 이 넓은 알베르게의 투숙객은 이렇게 셋 뿐이다. 우리는 모두 한 방에서 동침한다.
프란체스카와 나는 이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2화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