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ome Aug 22. 2023

선택의 기로

경계에 서다 #7

언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인식하며 이를 사회적 구조에 반영한다. 이는 언어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에 대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지식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가치를 제공한다. 언어는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의미와 정보를 창출한다.


예를 들어 의료 분야에서는 자주 전문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용어에 다양한 의미를 축약하고 있기에 명확성을 높이고 빠른 결정과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의사의 전문지식을 환자와 공유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의사의 지식이 전달된다. 만일 의사가 오로지 전문 용어를 사용한다면,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의사소통의 효율성은 치료의 성공과 환자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전문 용어가 가져오는 어려움 외에도,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정보의 과잉으로 인한 복잡성이다. 정보의 급증으로 필요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점점 복잡해지며,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의 구별이 어려워진다. 의학의 빠른 발전으로 다양한 치료법과 약물이 개발되고, 이에 따라 새로운 전문 용어도 등장한다. 의사가 최신의 의학 지식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다면 환자의 치료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새로운 지식이 반드시 충분한 임상 검증을 거쳤다는 것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로 인한 결과가 항상 예상대로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새로운 정보의 등장은 그 자체로 정보를 이해하는 데 부담을 준다.


정보의 증가와 그 복잡성은 가치 있는 지식을 찾는데 장애가 된다. 날마다 새롭게 생산되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어떤 것을 '믿을 만한 지식'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선택하는 과정에서 깊은 탐구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나열된 정보보다 필요에 따른 지식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지식'에 대한 공동의 이해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뢰와 존중을 형성하는 기초다. 언어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 믿음과 가치를 표현하는 주요한 수단이고 어떤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것은 그 사람의 내적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에 대한 신뢰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정보나 지식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나 오해는 종종 불신과 존중의 부족을 초래한다. 언어와 지식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정보 전달이나 개인적 이해를 넘어서, 상호 존중과 사회적 조화를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언어와 지식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곧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상호 작용해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그러나 정보가 많아질수록 진정한 지식의 탐구를 방해하고, 이로 인해 지적 무기력이 초래될 수 있다.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만 깊이 있고 믿을 수 있는 지식을 취득한다. 정보의 양이 증가하면 쓸모없는 정보를 걸러내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결국 정확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이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의심하게 한다.


이러한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Wiki, Twitter, 블로그, YouTube, Facebook, 그리고 GPT와 같은 도구들이 등장했고, 이에 따라 정보의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이 정보 생산 도구로서 활용되면서 이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현장에서 사건을 기록하고 이를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즉시 업로드 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정보의 생산과 유통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난 것이다.


또한 그로인해 검색을 위한 기술도 발전했다. 빅데이터의 활용, AI의 딥러닝 기술을 통해 맞춤형 정보 제공이 가능해졌고, 검색어의 입력 방식도 키보드를 넘어서 음성, 이미지, 촉각, 모션 등 다양한 방법이 가능해 졌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검색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필터링 기술도 발전해 쓸모없는 정보를 거를 수 있게 되었다. 더욱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 검색에서의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검색을 통해 찾은 식당이 개인의 취향에 맞지 않을 수 있으며, 첨단으로 보이는 기술이 실제로는 과거의 낡은 기술일 수 있다. 또한, 합리적인 분석처럼 보이는 정보가 실은 비합리적인 음모론일 수도 있다. 필터링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여전히 정확한 지식을 찾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정보의 생산, 유통, 검색에 관여하는 기술의 발전은 양날의 검이다. 한편으로는 정보 접근성이 높아져 학문적인 연구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의사결정도 풍부한 데이터에 기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 환경은 지적 무기력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정보가 너무나 쉽게 생산되고 얻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깊이 있는 연구나 검증 과정을 경시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잘못된 정보나 음모론에 빠질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결국 사회적 불신과 존중의 부족을 초래할 수 있다.


분명 기술의 발전은 정보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만인 대 만인'의 정보 교류 시대가 도래했으며, 정보의 생산과 유통 주체는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보는 더 이상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유통되는 경향이 보이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정보의 획득 속도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영상, 사진, 녹음 등의 기술 발전을 통해 정보 생산과 유통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정보의 정확성은 반대로 저하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속도에 몰린 정보의 정확성이 파편적이더라도 만족하며, 전체적인 맥락을 간과하게 만든다. 정보를 제공하는 이들 역시 사건 전체의 개연성이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면서 정보를 업로드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직관적인 접근 방식은 사건의 전체적인 실체를 왜곡할 위험이 있다. 


과거에는 주로 언론사가 정보를 검증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최소한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언론사는 정확한 정보생산을 핵심 업무로 두며 높은 신뢰성을 유지하려 노력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언론사는 정보검증을 자신의 윤리적 의무와 책임으로 여기곤 했다. 이러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게이트키퍼라는 관리 시스템이었다. 언론사는 이 시스템을 통해 정보를 보충, 분석하고 진위를 확인하여 정보의 정확성을 높였다. 


그러나 새로운 정보 환경의 변화로 소비자들이 정보의 속도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는 분명한 시장의 변화였다. 때문에 기존에 언론사의 게이트키퍼라는 시스템은 점차 그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정확한 정보를 생산하기 위한 검증 과정은 필연적으로 시간을 요구하는 일이었지만, 이는 정보의 신속한 유통이 중요해진 현 시점에서 소비자들의 외면을 초래할 뿐이었다. 언론사가 속도에 대응하지 못할수록 경영은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변화로 언론사는 정보의 생산, 가공, 유통의 중심에서 점차 밀려나게 되었다.


언론사들은 생존을 위한 여러 방법을 찾아야 했고, 일부는 가짜 뉴스를 제작하는 등 비윤리적인 방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맥거핀(MacGuffin)이라고 불리는 낚시성 기사가 대표적인 예시다. 본문 내용과 무관하게 자극적이거나 극단적인 제목을 남발함으로써 소비자를 유혹한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해 클릭수를 높여 광고 수익 창출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소비자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정보의 검증이 소홀히 이루어지게 되면서, 소비자들은 정확한 정보를 획득하는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고, 그 결과 판별력을 점차 잃어가게 된 것이다.


이제 이러한 현상은 정보의 생산이 더 이상 사회적 신뢰나 정확성 등의 윤리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단지 이익 추구를 위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졌음을 반영한다. 정보자본주의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어그로'라는 용어의 등장은 현 시대의 사회적 흐름을 반영한다. 수익 창출을 위해 고의적으로 분란을 야기하는 행위는 사회적 문화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사건 발생 시 빠른 접근으로 이익을 얻는 '사이버렉카'와 같은 이슈판매상에게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었다. 정보생산시장에서 이윤 추구가 주요 목적이 됨에 따라 사회적 맥락이나 영향보다는 감정적인 자극에 더욱 초점이 맞춰지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훔쳐보기', '관음', '도착', '폭력' 등과 같은 비윤리적인 정보마저 쉽게 정보유통 플랫폼에 쉽게 노출되며,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클릭을 유도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정보 생산자가 감정을 자극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면, 알고리즘 역시 그런 경향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클릭과 관심을 기반으로 정보를 추천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클릭했을 뿐이고 알고리즘은 이를 집계했을 뿐이지만 그 결과로 더 많은 자극적인 정보가 소비자의 화면을 가득 채우게 된다. 결국 필요한 정보로부터 소외되고 만다.


그렇게 우리의 관심은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되고 만다. 이는 결국 개인의 판단과 선택보다는 기계에 의존한 판단이 우선시 된다는 것이며, 결국 더욱 심각한 정보 불평등과 왜곡을 초래할 뿐이다. 이제 특정한 정보생산의 태도나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권리는 있지만, 사실은 개인이 독점할 수 없다는 원칙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실의 전달, 해석, 그리고 논평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좀 더 신중하게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맥락과 그에 따른 영향력, 그리고 가능성까지도 고려한 정보를 생산해야 한다. 정보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정보의 질과 정확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 생산자의 이윤 추구와 사회적 불신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책임을 서로 미루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같은 순환논란과 유사하다. 이러한 흐름은 사회 전체의 신뢰와 협력의 기반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각 개인이 사회와 단절된 체 점차 자신만의 세계로 고립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선택했던 소통, 협력, 연대의 역사가 점차 무력화되는 되는 것이다.


우리는 거짓 정보 확산과 사회적 신뢰 상실 문제에 직면해 있다. 자정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정보를 조작하는 이들에 대한 불신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으며, 이는 강력한 처벌과 감독을 요구하는 요청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불행하게도 억압적인 사회 구조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일종의 선례로 제공된다. 신뢰가 무너지는 현재에서, 안전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들은 대개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조치에 의존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는 정보의 생산과 검증 과정을 GPT와 같은 인공지능에 맡기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주관적인 목적과 의도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GPT와 같은 인공지능은 속도와 정확성,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이상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에 의해 개발되고 운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경험적 측면까지 고려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는다.


이처럼 정보의 속도와 정확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런 트레이드 오프는 정보 사회에서의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결국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안전은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스스로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두 가지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가 있다. 주인공은 두 갈래의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시인은 한 길을 선택해 걸으며 “이 길을 선택한 것이 내 인색을 바꿨다”고 말한다. 


이는 하나의 길만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와, 그 한계가 모든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되새기게 하며, 미래의 방향 또한 현재의 선택에 의해 결정될 것임을 시사한다. 우리는 이처럼 언제나 두 가지 길 앞에 서 있다. 무엇을 선택할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미래를 만들지는 오직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미로에서 선택을 앞두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