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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ome Aug 24. 2023

어른이 된다는 것

선은 넘지마 #1

나이가 들면 모두가 어른이 된다. 그러나 어른의 정의는 생리학적 성숙이나 법적인 자격 외에도, 자기 성찰, 책임감, 그리고 경제적 독립이 요구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우리가 생각하는 어른의 이미지는 대체로 결정적이고, 확고하며, 언제나 옳은 결정을 내리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 성장하면서 만나는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실제 어른들은 때로는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고, 오류를 범하며, 때론 자신의 감정과 사회적 기대 사이에서 갈등을 느낀다. 또한 나이와 무관하게 철없는 어른이 있고 어른스러운 아이도 존재한다. 이처럼 어른이라는 표현은 우리 사회에서 복잡한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어른이란 무엇일까? 또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되는 것일까? 


어린 시절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성장함에 따라 어른이 되면서 사물의 의미와 그에 따른 반응을 더욱 정확히 이해하고 표현하게 된다. 이는 오랜 시간동안 다른 사람의 지원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만일 이런 과정이 생략된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발견하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타인과의 관계구축이나 감정의 균형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에서도 혼란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과 다른 자신을 인지하며, 주체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부모는 아이의 세계 이해와 정체성 형성에 있어 중요한 거울이 된다.  


어른이 되는 과정은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 순간은 인생의 특별한 전환점이 되지만 동시에 익숙함으로부터의 이별을 의미한다. 이시기에 우리는 혼란과 불안을 겪게 되고 때론 정서적 결속력이 강하게 작동한다. 부모가 제공하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 탓이다.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성장통이다. 그러나 고통은 한층 더 성숙하게 이끄는 힘이 되곤 한다. 자신의 욕구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역할과 책임에 따라 행동하는 방향성을 갖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어른이 되는 것은 '언어적 분리'와 '사회적 분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언어적 분리'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언어를 통해 표현하며,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언어는 대화를 위한 수단이며,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자신이 타인과는 다른 독립적인 존재라는 인식이 발생하는 것이고 이로써 주체성이 강화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을 말하고 그에 따라 타인의 반응을 이해하며 의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사회적 분리'란 사회 내에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인식하고 이를 수용하는 과정이다. 가족, 친구, 학교 등 다양한 사회적 환경에서 자신이 독립된 인격체이면서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예를 들면, 유치원 아이들은 놀이 중에도 서로의 차례를 존중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워나간다. 이는 개인의 욕구보다는 집단 내에서의 협력과 조화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한다. 따라서 아이는 자신의 욕구가 최우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 것이다. 이러한 기다림의 이해가 사회적 분리의 한 예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분리는 세계를 이해하고, 삶을 주도하는 데 필수적이다. 언어를 통해 독립된 자아를 형성하고 주체성을 깨달으며, 사회에서 타인을 고려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의 표현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언어는 사회성의 중심에 위치한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회의 가치와 문화를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소통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언어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구조와 상응한다. 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정의하고,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언어를 통해 사회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나 가치를 확립하는 것이다.


언어와 사회성은 주체적 인간, 즉 어른으로서의 성장을 제공한다. 사회 내에서 믿음과 욕구를 공유하고, 서로의 행동을 통해 독특한 생활 방식을 창출한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 사회를 통해 통합되고 공통된 인식세계로 수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이해하고,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공감하면서 공동체 내에서 협력한다.

사회적으로 형성된 권위는 구성원들의 신뢰를 기반으로, 사회의 규칙이나 도덕적 가치, 전통 등을 유지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만일 권위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우리는 사회적인 혼란이나 무질서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른이란 사회의 구조와 질서를 존중하고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체계를 보호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권력관계와 같은 특별한 역학적 구조도 만들어진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성장 과정에서 미성숙함이라는 필연적인 단계를 거친다. 이는 섣부른 판단으로 인한 위험이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반드시 이들을 교육시키고 학습시켜야 하는 당위가 존재한다. 권력이 정당성을 갖는 이유다.

따라서 사회에는 수많은 위계들은 이러한 이유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예를 들어 어른과 아이, 선배와 후배, 상사와 부하와 같은 관계다. 이들은 대체로 힘과 권력의 관계로 설명되며, 개인의 경험, 지식, 능력 그리고 사회적 위치에 따라 수시로 변화한다. 이러한 위계적 관계를 통해 사회에서의 역할과 책임이 부여되고 그로인해 사회적 안정성이 유진된다.


우리가 살면서 한번쯤 듣게 되는 '버르장머리'나 '싸가지'가 없다는 말은 그것이 비록 비속어 일지라도, 위계에 따른 개인의 사회적 지능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취한 행동이 타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인식하고 적절히 행동하도록 유도한다는 긍정성이 있다. 사회적 지능은 인간관계와 상호 작용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누군가 '버르장머리'나 '싸가지가 없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아직 사회적 상황을 판단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능력이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대체로 우리는 이런 사람을 어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계기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면에서 부족한지를 깨닫는 기회를 얻는다. 이 또한 사회적 지능을 키우는 데 중요한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과정으로 우리는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을 반성하게 되고, 자신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성장에도 기여한다. 개인이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를 개선하게 되면서, 그 결과 사회는 보다 건강하고 성숙한 구조로 발전하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는 사회의 안정과 지속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때로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개인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기는 질문은, 사회가 요구하는 '성숙한' 인간 즉 어른의 기준이 정확히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할 수 없다. 이러한 억압적 방식의 개입이 모든 이에게 긍정적적으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관계는 상호작용과 상호의존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어, 한 사람의 성장과 발전을 일반화하거나 정형화하는 것이 어렵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개인적 욕구에 충실하며 제멋대로 행동한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사회적 이익으로 환원될 수 있다. 반대로 사회적 규범을 완벽하게 따르는 사람이라 해도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런 상황들은 사회적 규범과 개인의 자유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통제되는 것이 아님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인의 행동에 강제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필요하다고 여기며 이를 정당화한다. 이는 사회적 안정성이라는 목표를 위한 개인의 성장을 돕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이런 접근법은 어떤 면에서는 모순적이다. 인간 개개인은 자신의 이해와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권리를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억압적인 언어로 개인의 욕구를 억제하려 하면, 그것에 대해 부당하다는 느낌은 자유를 가진 인간에게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이로 인해 '꼰대' 혹은 '라떼는~' 같은 풍자적인 표현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때로는 "너나 잘하세요."라는 자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런 표현은 사회적 압박에 대한 개인의 저항적 반응이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기대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이 발생한다. 


물론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싸가지'와 '버르장머리'라는 말은 사회의 거울처럼 우리에게 성찰을 제공할 수 있어 보인다. 거울은 우리가 현재 어떤 모습인지를 직접 확인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아의 형성과 자기 인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자신과 타인의 유사성과 차이를 알게 한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자. '버르장머리'나 '싸가지'는 듣기에 좋지 않은 표현이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의 성장에 대한 진심어린 기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말이 진심어린 기대보다는 감정의 폭발이나 스트레스의 표현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말이 과도하게 사용되면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희석되어, 독립된 주체로서의 성장을 방해하게 된다. 결국 듣는 사람은 위축되고, 타인의 평가나 기대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서, 자신의 주체성을 잃게 된다. 이는 성장할 기회마저 잃게 한다. 자신감을 잃은 사람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생긴다. 따라서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서 행동하게 된다. 자아 존중감이나 삶의 만족도가 저하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사회적인 고립상태에 직면하면서 어떤 도전적인 상황에서는 부정적인 성과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반대 상황에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자기중심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면,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자신과 타인과의 경계를 설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과시하면서 관계의 긴장을 유발한다. 따라서 성장의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또한 타인을 동등한 존재가 아닌 수단으로 여기는 왜곡된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어른의 정의는 대체로 명확해 진다.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개인의 성장과 발전이며, 이를 통해 더욱 건전하고 발전적인 사회를 형성하는 데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명령을 전달하며 즉시 그것을 이해하고 행동하도록 기대하는 것은 인간이 그동안 만들어온 언어의 효용과 가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성장이라는 본질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그 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단순한 지식 전달만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과 생각이 사회에서 유연하게 상호작용하며 자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있다.


물론 현실에서 우리는 종종 개인의 사회적 성공에 더 관심을 두는 경향이 강하다.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성공 지표들이 사회적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학 진학률, 고등교육 이수률, 고소득 업종에 대한 진출 등을 중요시 여기곤 한다. 이런 지표들이 개인의 지식, 능력, 노력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한편, 사회적 성공의 증거로 인식된다.


또한 현대 사회는 경쟁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어, 한정된 자원과 기회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개인의 경쟁력을 강조하는 경향이 크다. 대체로 경쟁 사회에서는 개인의 성공 여부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사회적 성공이 어른의 주된 목표처럼 여겨지며, 개인의 자아 성장에 대한 중요성이 간과되기 쉽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싸가지와 버르장머리”와 같은 사회적 관습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말들이 오히려 사람이 사회에 적응하고, 타인과 협력하며,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개인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능력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창의성, 비판적 사고력, 감성 지능, 윤리적 판단력 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은 심각하게 고민해야하는 지점이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른은 단순한 사회적 지위나 성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창의성, 비판적 사고력, 감성 지능, 윤리적 판단력을 갖추어야만 한다. 이 능력들은 개인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어른의 본질적인 목표가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어른의 모습은 자주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거나, 자신이 믿고 있는 지식이나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권력과 권위에 기댄 행동을 합리와 이성으로 정당화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욕망을 위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모습이 우리의 철없던 어린 시절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 결국, 어른이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회를 위해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을 추구하는 인간을 의미할 뿐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것에 머물게 된다. 그 무엇으로도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어른의 정의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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