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을 넘던 날
모든 여행은 결국, 나 자신을 낯선 곳에서 다시 만나는 일이다.
우리의 첫 해외여행은 자유여행이었다. 기간이 짧아 배낭여행이라 부르기엔 부족했지만,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그 작은 자율이 주는 낯선 해방감 속에서 우리는 설렘과 두려움, 그 사이의 알 수 없는 긴장을 안고 있었다.
비행기에 올라탄 순간, 서로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정말 우리가 외국으로 떠나는 걸까. 제주도를 갈 때를 제외하면 비행기를 타본 적도 없었다. 창문 밖으로 구름이 흘러가고, 햇살이 하늘 위를 미끄러지듯 번져 있었다. 그 장면 속에서 우리는 어쩐지 세상이라는 바다로 막 나아가는 두 사람 같았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기의 냄새부터 달랐다. 습한 바람, 낯선 향신료의 냄새, 수많은 언어가 뒤섞인 소리. 설렘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었다. 마치 새로운 세계의 문턱을 조심스레 밟고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공항은 거대한 미로였다. 표지판을 따라 걷다가 멈추고, 되돌아서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어렵게 찾아낸 정보 하나—공항 지하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사실—그것이 우리에겐 구조 신호 같았다. “익스큐즈미, 디스 버스 고 투 오차드로드? 랑데부 호텔?” 어눌한 영어를 내뱉으며 용기를 냈고, 다행히 친절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버스에 몸을 싣고도 한동안 창밖을 보지 못했다. 노선표의 영어 글자 하나하나를 읽으며 손끝이 땀에 젖었다. 길을 잃을까 두려워 눈을 떼지 못했고, 그 두려움 속에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세상에는 우리의 언어가 닿지 않는 곳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그때 조용히 마음속에서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어”라는 후회가 흘러나왔다.
해 질 무렵, 호텔 근처를 걷다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실외에 세워진 에스컬레이터가 천천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건물 안에 있어야 할 것이 길 한복판에 서 있는 광경은 묘한 충격이었다. 비라도 오면 어쩌나 싶은 생각과 함께,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세계의 모양이 얼마나 좁았는지를 깨달았다.
편의점 진열대에서 새우깡을 발견했을 때, 순간 한국의 밤으로 돌아간 듯했다. 반가움에 손을 뻗었지만, 1,400원이라는 가격표가 그 환상을 단숨에 깨뜨렸다. 십 수년 전 그 금액은 꽤 비쌌다. 우리는 그것을 사는 대신 사진 한 장을 남겼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기억하는, 가장 조용한 방식이었다.
리틀 인디아의 거리는 진한 냄새로 가득했다. 흙냄새와 향신료, 그리고 사람들의 체온이 뒤섞여 묘한 공기를 만들었다. 알록달록한 건물 사이로 인도인, 말레이시아인, 아랍계 사람들이 오갔다. 우리의 이국적 감상과 그들의 일상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세상이 얼마나 넓고 견고한지를 느꼈다.
그 도시에는 세 종류의 버스가 있었다. 영국식 이층 버스, 길게 이어진 굴절버스, 그리고 평범한 버스. 서로 다른 버스들이 낯선 거리 위를 달리며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덜컹거림이 이상하게도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와 닮아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오래된 필름처럼 천천히 움직인다. 빛이 바래고, 소리가 희미해져도 그 감정만은 또렷하다. 아마도 그 여행은 세상을 배우기 위한 첫 번째 수업이었을 것이다. 낯선 길 위에서 우리는 조금 어른이 되었고, 두려움 대신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