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해외여행 첫날
2006년 11월 정도. 그보다 전(前)일 수도 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래도 분명한 건 그해 그월 19일 정오, 인천공항의 유리창은 맑았다는 것이다. 활주로 위의 빛이 비행기의 날개를 따라 반사되었다. 유나이티드 항공의 좌석은 좁고 답답했다. 음료는 미지근했고, 간식은 손에 잡히자마자 부서졌다. 보안 검색은 유난히 꼼꼼했다. 가방을 다시 열고, 주머니를 비우고, 벨트를 풀었다. 승무원들은 친절했지만, 그 친절은 매뉴얼의 한 줄 같았다. 비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피로가 어깨 위에 쌓였다.
비행기는 오후 두 시를 넘겨 나리타 공항에 닿았다. 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안으로 밀려왔다. 인천의 햇살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도쿄는 비였다. 공항 밖 도로에는 얇은 물막이 반짝였고, 우산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천천히 포장도로를 따라 흘러내렸다. 마중 나온 차를 타고 사이타마로 향했다.
고속도로는 도시의 몸통을 가로질렀다. 신호등이 있는 구간에서는 차들이 질서정연하게 멈췄고, 모노레일이 머리 위를 조용히 지나갔다. 도쿄의 풍경은 단단하게 짜여 있었다. 건물의 형태, 간판의 위치, 사람들의 보폭까지 어딘가 계산된 질서가 있었다. 낯선 나라지만, 그 익숙함이 이상했다. 도시라는 건 결국 비슷한 리듬으로 움직이는지도 모르겠다.
저녁은 ‘아이야(あいや)’라는 식당에서 먹었다. 문을 열면 기름과 간장의 냄새가 퍼졌다. 신발장 문을 여는 소리, 나무가 닳은 질감, 낮은 조명의 색이라서 왠지 따뜻했다. 맥주잔에 거품이 천천히 가라앉는 걸 보며 하루가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음식은 간단했고, 맛은 조용했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렸다.
이번 여행에는 목적이 없었다. 나를 위하나 혹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계획표도 없었다. 다만 잠시 멈추고 싶었다. 공항의 소음에서 벗어나, 낯선 거리에서 천천히 걷고 싶었다. 목적이 없다는 건 어쩌면 가장 자유로운 상태일지도 모른다. 밤이 되자 비는 멎었다. 도로 위 불빛이 젖은 아스팔트에 길게 번졌다. 숙소의 공기는 차분했고, 창문 틈새로 들어온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다. 도시는 여전히 깨어 있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조용히 멈춰 있었다. 그때 처음 여행을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자신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라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