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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ome Jun 15. 2021

길을 잃어서 좋은 날

아무렴 어때

어느 날 아무개 사람이 물었다.

"왜 그렇게 자주 여행 가는 거야?" 나에게는 이미 준비된 답이 있었지만 말하지 않고 웃었다. 여행을 본격적으로 가기 시작한 건 회피 같은 거였었다. 당시 삶이 힘들었다. 피하고 싶어서 도망치듯 여행을 갔다. 그때 아내가 함께 해줬다. 틈나는 대로 우리는 여행이라는 걸 한다. 그렇게 여행을 하다가 문득 여행지의 낯섦이 나를 편안하게 하는 걸 알게 되었다. 답정너의 세상에서 내 멋대로의 세상으로 바뀌는 것이 만족감을 주는 이유였던 거 같다. 새로운 것들을 살피고 만져가며 망상에 가까운 상상을 통해 얻어지는 재미가 컸다. 여행은 그런 거 같다. 통제되지 않은 체 감정이 오버되면서 분출는 엉뚱한 경험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침엔 이성을 상실한 채 쾌락을 좇았던 전날의 감정이 생생하게 떠올라 이불킥을 시전 하는 것은 추가로 얻어지는 추억이 된다.  그런 통제되지 않는 오버된 감정이 좋다. 냉정하고 침착해서 뭐 어쩔 건데? 그런 건 하나도 즐겁지 않았잖아!


사실을 기록하는 것보다
그때 그때 변하는 내 감정의 확인이  
더 좋기 때문이야!


아내는 앞서 걷는 걸 좋아하고 나는 아내의 뒤에서 걷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아내의 뒷모습 사진이 많다. 아내는 사진이 이게 뭐냐며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내 뒤에 서있는 게 좋다. 뒤에 서있기를 좋아하다 보니 사진이 변할 일은 만무하다. 아내는 걸음이 빠르지 않아서 좋다. 무턱대고 쫓지 않을 수 있고 주변을 살펴보기도 좋다. 게다가 느린데 길치이기도 하다. 아내를 쫓아가면 백이면 백 길을 잃는다. 여행지에서 급할 일이 별로 없어서 큰 문제가 된 적은 아직까지 없었다.


길을 잃는 게 얼마나 즐거운 경험인지
여행을 통해 알았다.


아내가 일부러 길을 잃는 척하는 거라고 생각도 했었다. 아내는 늘 길을 잃는다. 그리곤 언제나 구글맵을 탓한다. 구글맵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는 다른 여행자들의 유튜브나 블로그 등을 보여주며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진심을 다해 확인해주곤 한다. 아내는 의심의 여지없이 길치다. 길치라고 놀리는 재미는 부가서비스다.처음 여행지에서 길을 잃었을때는 두려웠었다. 한 번 두 번 반복되다 보니 무뎌지면서 그냥 별거 아닌 길이었다.


여행의 목적이 무엇일까? 나는 늘 어딘가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적지가 뚜렷하게 있었고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하는것을 선호했고 시간은 아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가야할 코스를 정하고 시간을 통제하는데 익숙했던것이다. 여전히 그러한 삶의 태도와 현실을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여행에서는 꼭 해야 한다는 당위를 가진 목적지는 없다. 여행은 자유다. 그것이 착각일지라도~


여행이 무엇이냐고?
무언가를 안 해도 되는 연습!


안 해도 그만.. 안 사도 그만.. 관계가 느슨해진 느낌이 좋다. 내 영역 밖의 사람들과 가볍게 어울리는 것으로도 즐겁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일 천지다. 우리는 '자유여행'이라는 이름을 맘에 들어했다. '자유' 그 단어를 좋아한다. "로또 1등으로 자유를 돈 주고 사자!!" 그런 시시껄렁한 농을 치며 서로를 향해 손가락 질 한다. 그리고 "천박해!!"라며 비웃는다. 정작 로또는 사지 않으면서 말이다.


느린 건 게으른 걸까? 게으른 건 느린 걸까? 게으른 건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아내는 나에게 "정말 게을러. 좀 부지런해지면 안 돼?"라고 말을 자주 한다. 난 그리 수용적인 성격은 아니라서 듣고만 있지 않는다. "게으른 건 나쁜 게 아니야. 그건 내 자유 의지를 실현하는 투쟁이야."라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준다. 기가 막히겠지. 근데 왜 게으름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누구 아는 사람 손~!" 아마도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할 일이 많아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말이야. 근데 정작 해야 하는 일을 못하는...


'너무 빨리 가도 말이야~ 잘난 척 빼곤 딱히 할 일도 없어. 네가 그냥 네 인생을 즐겨. 게으르게~'라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냥 그뿐이다. 내가 게으르니까 게으른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게으름이란
인간의 자유의지 실현을 위한
실천적 투쟁이다!


아~ 팬데믹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여행을 가지 못하는 것 같다. 여행 가고는 싶고 어디를 가면 좋을지...  얼마 동안이나 할지 등등을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서 예전 여행기를 읽으며 옛날 생각에 잠시 빠짐~ 빨리 코비드야 물렀거라 여행을 가야 쓰겠다. 오늘은 그냥 인트로~ 그동안 다녔던 여행기를 정리해서 올려볼까 한다. 나는 재미있었는데 당신도 즐겁게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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