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 Jan 18. 2023

내 꿈은 할머니

이제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물어보지도 않는, 내 꿈에 대하여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들어왔지만 어느 순간 뚝 끊긴 질문.

  "넌 꿈이 뭐니?"


 침침해진 눈을 감고 식탁 의자에 걸터앉아 오디오북으로 타일러의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들었다.

타일러는 자신의 꿈을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보통 말하는 '꿈'을 '직업'과 연관 짓는 것을 문제로 제기하였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꿈을 꿈으로 인정하지 않고 직업과 연관을 짓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 새삼 '꿈'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다가도 빨래를 개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나의 꿈'에 대한 생각은 우연한 기회에 정리가 되었다. 


나의 꿈은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할머니는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 : 부모의 어머니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좁게 해석면 내 손자 혹은 손녀가 부르는 호칭이 되기도 하고, 넓게 해석하면 흔히 나이 드신 분들을 부르는 호칭처럼 많은 이들의 할머니가 될 수도 있다. 내 꿈은 좁게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 내 아이의 아이가 부르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크니까.

그렇다면 또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알아봐야 할 점. 왜 굳이 꿈이 할머니인가.


 복덩이를 품고 있었을 때는 정말 뭘 해도 피곤했다. 그렇지만 휴직 전이었기에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출산 후 코로나의 여파 + 응급 제왕으로 아이를 내 품에 제대로 안아본 건 조리원에서였다.

조리원에서 모자 동실 시간이 끝나면 작은 내 아이를 직접 안아 들고 신생아 케어실로 데려다줘야 했는데 그 짧은 복도 길을 정말 천천히도 걸어갔다. 복도에 켜진 불에 눈이 부실라, 내가 걷는 걸음에 흔들릴라 온갖 조심을 다 하며 데려다주고 오면 어느샌가 슬금슬금 마음에 미안함이 생기곤 했다.

아무리 양수가 보호해 줬다지만... 일할 때 너무 뛰어다니고 무거운 거 들고 다녔나? 이 사랑스러운 아기가 얼마나 멀미(내가 멀미가 심한 편이다)를 했을꼬-라는 생각에 우울해질 정도였다. 


  이렇게 소중하고 또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의 아이는 벌써 21개월에 접어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서 둘째를 임신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놀이터에서는 형제, 남매, 자매로 보이는 아이들이 사이좋게 -밖에서는 대부분 사이가 좋아 보인다- 놀이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임신부터 출산, 양육까지 이 고단한 사이클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외동아들로 잘 키워보자'라는 결심을 했지만 놀이터에서 보인 그 모습이 문득 떠올라 결심이 흔들릴 때가 많아졌다.

무엇보다 아이가 커 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그 시간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 졌지만 여전히 자신은 없어 나의 고민은 몸집을 키워만 가고 있었다.


 영상통화로는 채워질 수 없는 손자에 대한 그리움에 그날도 아이와 친정을 찾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문득 내 아이를 보며 더 행복해하고 가끔은 나보다 더 걱정하는, 이제는 할머니가 된 내 엄마를 보며 '나도 저렇게 할머니가 되어서 맛보는 기쁨도 생길 수 있구나! 손자나 손녀가 생기면 내가 꼭 함께 돌보며 도움을 주고 그 행복감을 다시 느껴봐야지'라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그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나는 할머니가 된 미래의 나를 떠올리며 만족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내 아이는 언제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까?

출산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요즘이라 걱정과 조급함이 생겼는데 심지어 2030년에는 변화된 기후로 지구 생태계가 망가져 우리가 느끼는 평범한 일상이 사라지게 될 수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경제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내가 먹고 자고 입는 모든 환경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럼 과연 미래의 아이들은 출산을 선택할까?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려지는 부정적인 결과들에 나는 초조해졌다. 미래에 내가 손자, 손녀를 보며 느낄 행복감이 사라질 거 같아서.


어찌 보면 정말 이기적이게 느껴질 수 있는 나만의 작은 걱정들이 지구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만들었고 미래를 내다보게 했다.


그렇게, 나의 꿈은 할머니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