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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Sep 08. 2023

공립유치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서

나를 위해서일까, 유아들을 위해서일까

시끌벅적한 사회 뉴스 탭에서 현재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책은 단연 '유보통합'일 것이다.

들어본 적은 있으실까? 누군가에겐 반갑고 누군가에겐 달갑지 않고 누군가에겐 관심이 없을, 그런 정책들 중 하나이다.

현재 유아들을 위한 기관은 크게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뉜다. 하나는 어린이집, 다른 하나는 유치원. 

어린이집 안에는 직장어린이집, 민간어린이집, 국공립어린이집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기관이 포함되며 유치원에는 공립유치원, 사립유치원이 들어간다. 유아학원이라 볼 수 있는 일명 '영어유치원'은 예외로 친다. 

그중 나는 공립유치원에서 유아들을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유보통합은 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이라는 큰 카테고리를 합하는 일이다. 남. 여가 하는 결혼이라는 제도도 양쪽 집안의 참견이 많기 마련인데 유보통합은 보지 않아도 얼마나 많은 말들이 나올지 뻔하지 않은가. 


공립유치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우연히 뉴암스테르담에 나온 에피소드를 통해 공립유치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시즌1 중 한 에피소드에 나온 대사였다. 

"그게 바로 공립병원이 존재하는 이유죠."

치료비나 보험의 여부에 상관없이 생명을 살리는 일에만 열중해야 하는 병원이 공립병원이라면, 지위나 신분(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도 여전히 다른 계급과 신분은 존재하는 거 같다)에 관계없이 모두가 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공교육 즉 공립유치원이라고 생각했다. 


한동안 기자 놀이에 푹 빠진 유아들과 태블릿으로 아침마다 신문을 보았다. 무슨 신문이었는지, 어떤 칼럼이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칼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였다)을 보고 한 유아의 말은 선명하게 기억이 남는다. 

"원래 저런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라요."

순간 머릿속에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으나 가까스로 대화를 이어갔다.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을 거야, 다만 배울 기회가 없었던 거 아닐까?"

그러자 그 유아는 제법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맞아요. 우리 아빠가 말해줬는데 못 배워서 가난한 거랬어요"

내 머릿속은 더 아득해져 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생각과 이 유아의 생각이 절대 이어지지 않고 평행을 그리며 가고 있다는 사실만 더 명확했다.


맘카페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영어유치원에만 한 달에 200만 원이 넘게 들고, 사립 유치원에 보내며 한 달에 50만 원 이상을 내는데 추가 사교육비(영어, 학습지, 태권도, 피아노 등)로 또 50~70만 원을 쓴단다. 남편과 내 월급으로 감당은 할 수 있으나, 점점 더 커지는 사교육비는 어떻게 감당하고 우리의 노후자금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 아이들은 정말 많은 걸 배우고 좀 더 큰 사회로 나갈, 학교라는 곳으로 갈 준비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부모들의 레이스에 끌려가는 중인 것일까?


적어도 공립유치원에서만큼은 유아들의 놀이를 지원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하며, 다양한 갈등과 문제를 맞닥뜨리고 이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지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나는 행정가이다. 끊임없는 행정 일에 교육을 지원하는 일을 뒤로 미루게 되기도 한다. 

가끔은 내가 있는 유치원보다 어린이집에서 더 많은 걸 경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내 직업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가진 책임의 무게를 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가진 무게를, 알까?

이만큼 교사의 어깨를 짓누르는 말이 있을까?

적어도 이 무게를 아는 사람이, 교사라는 직업에 있었으면 좋겠다. 수많은 유아들과 어린이들을 위해서.


현재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지만 그중에서 제일 빠르게 무너지는 건, 아니 이미 무너져 내린 건 유아교육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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