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 침대, 소파, 카페... 그리고
그리고 도착한 유치원. 교무실에 들어가 이제는 익숙해진 내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부팅시킨다. 그날따라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바로 업무를 시작해도 야근해야 할 판에 모니터에 가득 자리 잡은 파일들을 다 폴더로 정리를 해 치워 버렸다. 그리고 네이버에 들어가 초여름이 가득한 이미지를 검색했다. '이거다!' 싶은 건 없었지만 그럭저럭 마음에 든 이미지를 배경화면으로 정하니 너저분한 책상이 눈에 들어온다. 시간이 없어 바로 정리하지 못하고 일하는 내내 마음에 걸려있다가 어차피 이미 지난 퇴근 시간을 확인한 후, 오늘은 책상 정리를 하고 집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리저리 치우고 보니 이렇게 넓었나 싶은 내 책상.
퇴근하는 길에 괜히 다이소에 들러 작은 액자도 사고, 소품도 샀다.
그리고 다음 날 책상 위에 올려놓으니 뭔가 그럴듯하다. 그저 일하기 위해 마련된 내 책상이, 내 공간이 된 거 같았다.
내가 꿈꾸는 공간이 있었다.
어릴 때는 이층침대였던 거 같다. 좁은 집에서 그나마 봐줄 만했던 이층침대는 그때의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돌이켜 보니, 그랬다.
처음으로 이층침대가 들어온 날, 막연하게 2층이 더 좋을 거 같았던 상상과는 다르게 막상 1층에 자리를 잡고 앉아보니 나를 둘러싼 적당한 어두움과 고요가 퍽 마음에 들었다. 침대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앉으면 거실이 보였다. 나는 고요하지만, 시끌벅적한 거실의 소리를 듣는 순간이 좋았다.
몇몇의 집을 거치며 우리가 사는 집은 더 작아졌고 대부분의 가구를 정리해야 우리가 누울 자리가 마련될 즈음에 돼서는, 이층침대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넓어진 집에 들어갔을 때 부모님이 제일 고심하다 산 건 소파였다.
질 좋은 가죽이 아니어도 푹신하지 않아도 적당한 크기에 싼 값으로 구입한 소파는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집에서 가장 좋아하던 공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앉아 있는 시간이 참 편했다.
짧은 소파 사랑 후에는, 임용고시 준비 기간이 있었다. 돈이 들지 않는 공공도서관을 이용했지만 알바한 돈을 투자하며 하루에 2-3시간을 카페에 있기도 했다. 그래야 공부가 잘 되는 것 같았다. 그래야 내가 사는 것 같았다.
운 좋게 합격한 후에도 카페 사랑은 계속되었다. 카페에서 일을 하면 이상하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이건 카페에서 해야지.'라며 일을 남겨두는 때도 있었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난 요즘은 아이랑 어디든 걷다가 길가에 마련된 혹은 공원에 마련된 벤치에 앉는 것을 즐긴다.
잠깐 앉아 목을 축이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싱그럽다. 그 싱그러움이 나를 또 웃게 한다.
어릴 때는 좁고 아늑한 공간을 좋아했다면 점점 넓고 오픈된 공간을 좋아하게 되는 거 같다.
왜 그러는 걸까-라고 혼자 생각하다 엄마, 아빠가 생각이 났다.
이러다 더 시간이 지나면 우리 엄마, 아빠처럼 거실에 나와 티비를 보며 누워있거나, 식탁 의자에 앉아 방에 들어가 유튜브를 보는 자식에게 말을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더 나이가 들면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길가에 앉아 출근하는 누군가를 바라보거나,
유모차를 끌고 가는 가족을 보고 괜히 가까이 다가가 아기에게 인사를 건넬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의 크기만큼, 세월의 크기만큼 내가 있고 싶은 공간의 크기도 넓어지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