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나를 '생각'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건 금요일 밤 8:50 서진이네 뿐.
[서진이네]를 봤다. 복덩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2주를 보내고 집에 오며 진정한 '육아'에 입문할 때는 [윤스테이]로 매주 금요일 나를 위로해 줬는데, 복직할 시기가 되니 [서진이네]로 평일의 고단함을, 끊임없는 생각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주말이 오기 때문에 금요일이 기다려지는 것도 맞지만, 가끔은 주말만 기다리는 내가 한심해 보일 때도 있어 금요일 저녁에 하는 예능은 여러모로 좋은 핑계가 되어 준다.
[서진이네]에서 김밥을 둘둘 마는 김유미를 이서진(사장님)이 쳐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사장님의 시선에 김유미는 뚝딱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쳐다보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평범한 우리의 모습, 그리고 결국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았다. 분명 잘해나가고 있었는데 누군가 쳐다보면, 누군가의 기대가 눈가에 서리면 내 생각에 스며들면 그때부터 삐그덕거리는 기 시작하는 게.
2년간의 육아휴직은 참 행복했다. (물론 지나간 일이기에 '행복했다'는 단어로 넘길 수 있는 걸 수도 있다, 나 또한 아이를 쳐다보는 것도 힘들 정도로 우울했던 때가 있었으니)
갓난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반복적이고 단순하다. 그래서 그런가. 휴직 전에 어떻게 일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이스...? 업무포털...? 환경구성...? 만 5세 발달 특성........????
요즘 내가 아는 것은 내 아이의 발달과 내 아이의 관심사와 내 아이의 컨디션뿐이었다.
인수인계를 받으며 선생님이 친절한 목소리로 "잘 모르겠는 부분 있으세요?"라고 물어보셨지만 나는 그저 듣기만 했을 뿐 이해를 못 해 내가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상태라 그저 웃었다. 결국 사회적 미소로 끝낸 인수인계를 뒤로 하고 내가 맡은 만 5세 교실로 돌아와 환경구성을 시작했다. 며칠 내내 교실을 뒤집었다 엎었다,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를 반복하다 근처에 계신 선생님을 불러다 내가 한 교실구성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이 길로 가는 게 맞는지 확신이 없었다.
회의 시간에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당장 내일 계획도 이해하지 못한 상태라 역시나 사회적 미소로 답해드렸다.
코로나가 시작되어 원격수업으로 유지하던 2020년을 마칠 때쯤 출산휴가를 들어가 2년을 속세와 떨어져 지냈고, 만 5세 반은 거의 10여 년 만이고, 새로운 유치원에 복직을 하였고, 처음 맡아보는 업무를 배정받았다.
다른 유치원에서 일하는 능력 있는 친구는 함께 정보를 나누며 잘해보자고 이야기를 한다.
이 업무 속에서 놀이를 이어나갈 자신도 없고, 일하다가 소중한 내 아이와 함께 얼굴 마주 보고 이야기할 시간도 없이 지내기도 싫다.
그렇다고 나와 함께 1년을 지낼 아이들을 무시할 수도 없다.
이게 진퇴양난인가.
어떻게 하면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틈틈이 끊임없이 어떤 놀이가 이루어지는지, 나는 무엇을 지원할 수 있을지.. 한 달 반의 시간 동안 나름 잠을 줄여가며 노력하고 있다. 그 와중에 유치원 내 교직원분들이 우리 반 놀이에 관심을 보여주신다. 재미있겠다고 말해주신다.
아이 참, 내가 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고 자신도 없고... 나는 누가 알아봐 주면 뚝딱거리는데...
그럼 어떻게 확장시켜 나가야 할까, 또 고민을 하다 가뜩 많은 업무에 퇴근도 늦어진다. 잠은 더 줄어든다.
하, 이 일 더 할 수 있는 게 맞나? 걱정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람들이 자꾸 나를 보며 설레 보인다고 한다.
눈치챘나...?
걱정과 함께 바닥 친 자신감 속에 묻혀 언제쯤 나갈 수 있나-하고 기웃거리고 있는 설렘을.
아이와 함께 한 2년은 정말 행복했다. 죽기 전에 가장 먼저 생각날 시간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그래도 나를 필요로 하는 다른 사회가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다.
그러니 벌써 죽이 될지, 밥이 될지 걱정만 하는 것보다 일단 쌀부터 씻는 게 먼저겠지.
자, 그럼 이제 쌀부터 씻으러 가야겠다. 부디 내가 하는 일이 제대로 된 밥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