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지나가면 어떡하냐고? 어쩔 수 없지 뭐
몇 달 전, 한참을 방황하던 손가락이 정한 '유퀴즈'프로그램에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나오고 있었다. 핸드폰을 만지던 손을 멈추고 볼 만큼 의미 있었던 이동진의 말은, 몇 달째 내 마음에 내 머리를 서성이고 있다.
"그래야 일에서 오는 치명적인 권태를 버틸 수 있어요"
(어차피 사랑이 식고 권태가 올 거면 이왕 결혼한 거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는 게 맞고
어차피 일이 지겨워져 올 지독한 권태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맞다-라고 요약)
일단, 이 글에서 '사랑'은 열외로 두고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어렸을 때,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정확히는 '국어 선생님'이.
중학교 1학년때, 담임이셨던 국어 선생님이 참 어른스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갑자기 화를 내셔도 그다지 무섭지 않았기에 그 당시 여중생들이 우습게 보던 선생님이셨으나, 그 선생님을 싫어하는 학생은 없었다. (아마도)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유하다'라는 단어의 사람 버전이 아닐까 싶다.
국어 수업을 하시던 어느 날, 뜬금없이(나는 수업을 집중해서 듣지 않았다, 그렇기에 뜬금없다고 느껴졌었다) 본인의 시집이 출판되었음을 알리셨다. 이게 바로, 엉망진창으로 보내던 청소년 시기의 몇 없는 기억 중 한 컷이다. 뭐가 멋있다고 느꼈는지 모르겠으나,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고 선생님이 주신 시집은 지금도 내 책장에 꽂혀있다.
그 이후부터였나 보다. 막연히 '선생님'이 되어야겠다- 에서 '국어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한 건.
여전히 막연했던 내 생각은 꿈이 되지 않았고, 엉망진창으로 보낸 청소년 시절과 경제적 상황에 그럭저럭 괜찮은 유아교육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졸면서 대학을 다니던 내가 약 한 달 동안 잠을 줄여가고 촛불 켜가며 (실제로 그 당시 집에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켰다) 열심히 했던 시기가 있었으니, 바로 [보육/교육 실습] 기간이었다. 이론으로 만나던 '유아'들과 실습에서 만난 '아이'들은 참으로 달랐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일단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이라는 '기관'으로 오전과 오후 시간을 보내러 왔으니 이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행복하게 '기관'에 있다가 집으로 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가득해 하루하루가 고되었으나 보람찼다.
그러나 그 생각과 기억만으로 이 직업을 선택하기엔 사알짝 부족한 느낌이 들었기에 나는 많은 시간을 여기저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매는 데 썼다. 그리고 결국,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싫지만 현실로 가득한 문장에 나는 유치원 교사가 되어 있다. 그래도 이 정도 직업이면 나쁘지 않다 여겼다. 다른 직업에 비해 '권태'를 느낄 일이 적다고 느꼈으니까. 아이들은 매년 바뀌고, 내가 하는 수업이나 활동도 교과서가 없기에 바꿀 수 있었다.
(특히, 마음 맞는 선생님들과 동일 연령을 했던 두 해 정도는, 매일매일 야근에 회의를 해도 제법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세 반이서 힘을 합쳐 신나게 놀았으니까. 노는데 필요한 일이라면 마땅히 해야지 않겠는가. )
채워야 할 '직무 연수' 시간을 위해 이것저것 다양한 연수를 신청하여 듣다 보면, 이 일은 정말 사명감이 있고 내 일을 사랑하는 대단한 사람들만 있는 집단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퇴근하면 나만 바라보는 아기새를 두고 어떻게 수업연구를...?
잠잘 시간도 부족한데 어떻게 수업준비를...?
행정일할 시간도 빠듯한데 교사협의를....?
여기저기서 '부장선생님(나)'을 부르는데 내 개인 일을...?
캔바로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주말 지낸 이야기'를 생각하고, 노션을 이용해 한눈에 들어오는 '기록 템플릿'을 만들고, 유아학비에 관한 전체적인 과정을 정리해서 블로그로 올리고, 더 재미있고 유익한 체험을 찾아보며 백년은 커녕, 일이년 뒤만 내다 보는 교육일에 한탄함을 앞서 투쟁하는 일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이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직업을 사랑하고 연구를 하며 실적을 내겠는가.
그 실적을 사용하며 그럭저럭 사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겠지.
누가 보면 쉼 없이 10년 일 한 사람처럼 '유치원 교사'에 질려버렸다.
누가 보면 책 3-4권 낸 사람처럼 글 쓰는 것도 슬럼프에 빠져있었다.
누가 보면 몇 달 동안 열심히 운동만 한 사람처럼 움직이는 것도 싫어졌다.
누가 보면 삼시세끼 가족 반찬 걱정하고 준비한 사람처럼 음식도 하기 싫어졌다.
누가 보면 생각만 한 사람처럼 머리가 아파졌다.
누가 보면 어린이집도 안 보내고 아이랑 있었던 엄마인 것 마냥 내 아이랑 있는 시간도 힘들어졌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를 들춰보려다 그것도 귀찮아져서 소파에 널브러졌다.
다 덮고, 재부팅하면 되지 뭐.
내 유일한 장점이 '어쩔 수 없지 뭐/ 안 되면 말지 뭐'이다.
단점일 수도 있는 장점이 이럴 땐 참 도움이 된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하진 않으나,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스스로 인정을 했으니, 권태가 나를 스쳐 지나가고 나면 좋아질 거다.
시간이 지나도 다시 안 좋아지면 어떡하냐고?
어쩔 수 없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