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처방전

요즘 나를 위한 처방전은 '눈 감고 고기 먹기'다

by 초록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말이 있다. '체력은 국력'.

체력이 곧 나라의 자산이라는 이야기인데, 나라의 자산이 체력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개인의 자산에 체력은 포함이 되는 것 같다.


아이가 낮잠을 하루에 두 번이나 잤을 적(그런 때가 있었지, 행복했다...)에 한창 오디오북에 빠졌었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 오디오북을 틀어 놓고 집안일을 하곤 했는데 그때 읽은 책 중에 한 권이 <마녀체력>이었다. 저자는 30대에 얻은 고혈압 등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몸을 돌보는 일이 곧 마음을 돌보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고 체력을 키워가며 느낀 삶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기술하여 오디오북으로 듣는 내내 지금 당장 '운동'을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들게 하였다.

위의 글만 보자면 운동을 전혀 안 할 것 같은 느낌을 풍기지만, 사실 나는 제법 운동을 좋아한다. 다만 지속성이 없는 편인지라 몸이 무거워졌다 싶으면 유튜브로 요가 등을 틀어 놓고 며칠 따라 하다 그만두고, 날씨가 끝내주게 좋은 날에는 며칠 달리기를 하기도 한다. 운 좋게 문화센터 수영 수업에 성공했을 때는 2-3달 수영을 한다. 그래도 괜찮았다. 지속성은 없었으나 고른 움직임과 충분한 휴식이 있었으니까.

문제는 복직 이후였다.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게 되니 도저히 운동할 짬이 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운동할 시간에 잠을 자고 싶었다. 출퇴근 왕복 시간이 3시간 가까이 되니(설마 출퇴근 버스에서 잠을 자면 된다는 생각을 하진 않겠죠?), 출퇴근, 직장에 머무는 시간, 아이 돌보는 시간, 퇴근 후 일하는 시간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한데 여기서 운동을 하게 되면 잠을 얼마나 줄이라는 말인가.


보통 하루 약 만보(워치 기준으로 10,000~15,000보가 나온다)의 움직임을 제외하고 특별히 하는 '운동'없이 약 2년의 시간을 보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은 음식에서 힘을 끌어 쓰다 바닥이 나버린 '힘'은, 결국 내 안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기초 체력'이란 것을 끌어 쓰기 시작했고, 더 이상 가져 올 '기초 체력'도 없어지니 수시로 골골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내가 느낀 첫 '체력고갈'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의외로 '체력고갈'의 신호는 그전부터 있었다. 내 몸의 절반은 차 있다고 느꼈던 인내심이 복숭아 뼈 근처에서 자작하게 고여있는 정도로 줄어들고, 누가 툭 하고 건들면 "빼액!!!!"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을 보이기도 하다, 주변의 소음에 귀를 막고 멍-해졌다. 어디서 빼다 쓸 체력도 없으니 몸에 신경 쓰라는 신호를 꾸준히 보내고 있었던 거다.


나에게 남은 체력을 쥐어 짜내 하루를 살다 보니, 다른 사람의 체력도 보였다. 학부모님의 상담 전화에서, 외식하러 간 식당에서, 놀이터에서 만난 일면식도 없는 엄마에게서 상대방이 나에게 주는 이유 없는 짜증과 불쾌함을 직면할 때는, 생각한다. '저 사람, 체력고갈 상태구나' 혹은 '아, 내가 지금 체력이 완전 고갈되었구만'으로 시작하면 곧 '이긍, 좋은 음식과 운동 좀 처방해 드려야겠네'이란 의식의 흐름으로, 순간의 불쾌함이 사람에 대한 짠함으로 넘길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무리 좋은 처방전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 처방전이 특별한 노력 없이도 습관처럼 되려면 100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처방받은 3-5일 치 약으로는 택도 없이 부족하겠지만, 이 처방약을 5번 반복하다가, 10번 반복하다가 20번 정도 반복하면 되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한다. 무겁게 생각해 봤자 느는 건 스트레스요, 걱정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 달 내가 나에게 내리는 처방전은 '눈 감고 고기 먹기', '아침 스트레칭'이다. (지난주는 '낫또 한 끼', '요가 30분(주 2회)였다. 생각보다 요가 30분은 힘들다는 걸 알았다...)

당신만을 위한 처방전은 무엇인가?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길 바란다! 나를 위해서, 우리 가족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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