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는 무려 '작심십일'이나 갔음을 미리 알린다
해가 쨍한 것도 아니고,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구름이 잔뜩 낀 것도 아니고, 바람이 많이 부는 것도 아닌......
어릴 적 일기장에 날짜 옆 날씨 그림 어딘가에 동그라미를 치기 애매한 그런 날이었다. 일주일 한 번, 아이가 다니는 그림책미술수업이 끝날 때쯤부터 나의 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외식을 해......? 말아......?'
나의 갈등을 눈치챈 아이가 슬쩍 물어 오면
"엄마, 오늘 우리 회식(자꾸 외식을 회식이라고 한다.)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을 먹으러 갈지를 정하곤 한다.
우리의 회식(외식) 메뉴는 대게 나의 메뉴 의견 중에서 아이가 정하는 식이다. 아이에게 모든 선택을 맡기면 메뉴가 거기서 거기가 되므로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나의' 외식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가 강력하게 무언가를 주장하면 그때는 그 메뉴로 정한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는 음식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외식'을 좋아하는 편인데, 무언가를 강력히 주장한다면 그 음식이 먹고 싶다는 것이기 때문.)
그날도 2~3개의 메뉴 중 아이가 선택한 '보쌈&전'집으로 갔다. 보쌈 중자에, 녹두전과 감자전 세트를 시키니 53,000원이 되었다. 남은 음식을 싸가서 내일도 먹을 수 있으니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 자신만 설득한다. (남편에겐 조금 미안......)
아이가 있어서인지 2인이었으나 넓은 좌식 테이블로 안내해 주셨는데, 앉은자리 오른편으로 통창이 나 있었다. 분명, 오늘 하루 종일 날씨가 애매하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통창으로 내단 본 바깥 풍경에서는 산수화가 펼쳐져 있었다.
통창이라는 도화지 가운데에 내가 그린 언덕처럼 완만하게 올라 있는 산, 도화지 양 옆과 아래쪽에는 나무와 가지각색의 잡초가 부담스럽지 않게 자리 잡고 있었고, 무엇보다 도화지 안의 갖가지 녹색들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끔 흐린 날 잎사귀를 보면 형광 아닌 형광처럼 보일 때가 있죠?...... 아니라면 죄송)
오늘이다.
작심 십일일째, 오늘은 그냥 넘길 수 없다. 내 마음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어찌 술이 빠질쏘냐.
막걸리 한 병 추가로 이 세상을 가지련다.
그렇게 나의 '금주'는 다시 리셋되었다. 그래도 작심십일, 작심오일, 작심칠일 등 다양한 일수로 진행 중이다.
추가한 막걸리를 도자기 잔에 꼴꼴꼴 따르고, 음식을 먹기 전에 한 잔 먼저 목구멍으로 넘긴 후, 다시 도화지를 바라보았다.
"크, 복덩아 이게 행복이야."
"뭐가 행복이야? 막걸리가 행복이야?"
"...... 아니, 엄마 옆에는 복덩이가 있고, 음식도 맛있고, 바깥 풍경도 너무 멋지지. 그래서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상관없이 엄마는 그냥 행복해졌어. 그래서 이게 행복인 거야."
"그게 행복인 거야? 그래 복덩이도 행복해. 복덩이는 회식 좋아하거든~"
'무엇'으로 행복해졌냐 와는 상관없이 내가 행복이라 명하였다.
그러니, 나는 이 소소한 행복을 따라 살아나가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