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 제 머리를 아주 힘들게 깎는 중

저도 '엄마'는 해본 적도, 배운 적도 없어서요......

by 초록

'아기'(지금도 이 그리움에 가끔 아이를 '아기'라고 부를 때가 있다.)라고 불리는 게 당연했던 약 11개월 쯔음, 첫 돌을 축하해 주기 위해 시부모님께서는 미리 날을 정하고 우리 집에 방문하셨다. 주무시고 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출발하신지라 점심 전에는 우리 집에 도착하셨는데, 마침 그때는 아이의 첫 낮잠 타임이었다.(이 시기는 낮잠을 두 번 정도 잘 무렵이었다.) 코로나 시기에 태어나 많은 사람을 접해본 적이 없었고, 무려 처음 보는 어른 두 명에 눈이 땡그래진 채 낮잠시기를 놓쳐버린 아이는 칭얼거리기를 시작했다. 거실 한가운데에서 아이를 품에 안고 둥가둥가 흔들며 낮은 소리로 몇 곡의 노래를 흥얼거리니 아이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평소에 이렇게 쉽게 잠든 적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시부모님은 나에게 "너가 유치원 선생님이라서 아이를 이렇게 잘 재우는 건가?"라며 진지하게 물어보셨다. 어색한 미소로 넘겼으나, 그 이후로도 비슷한 상황에서 "너가 유치원 선생님이라서~"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던 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이십여 년 전,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국어국문과를 넣었으나 그럴만한 성적도, 의지도, 돈도 없었기에 미래에 난 무얼 해 먹고살아야 하나-를 고민하던 시기의 일이다. 딸의 미래에 대해 뭐라 할 자격이 없다 생각하셨던 그 당시 나의 아버지는 딱 한 마디를 지나가며 던지셨다.


"그럼 유아교육과를 가 봐. 결혼할 때 좋아."


결혼할 때 좋으려고 선택한 건 아니었으나, 더 끌리는 다른 과가 없기에 갔다. 유아교육과를.
이쯤 되면, 그저 나이 드신 분들의 생각인가 싶지만 놀랍게도 그렇지 않았다.
철 없이 놀던 시절 만나던 20대의 젊은 남자들도 '유아교육과'라는 말을 들으면 비슷한 말을 했더랬다.


"아이 좋아하나 봐?"
"그럼 나중에 결혼할 때 아이 잘 키우겠다."


특별히 불편하진 않았으나 꼬박꼬박 답변을 주었었다.


"아이들이 좋아서 선택한 과는 아니야."
"결혼한다고 내 애를 잘 키운다는 보장은 없어."

뚜렷한 미래를 그리며 걸어간 길이 아니었기에 몇 번의 이탈은 있었으나, 결국 난 유아교사가 되었고 지금은 적당한 경험치를 얻으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구구절절하게 내 직업에 관한 에피소드를 늘어놓은 이유는, 내 직업이 육아와는 전혀 별개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나는 '아이'라는 존재를 특별히 사랑하지도 않고, 거창한 포부를 가지며 유아교육에 대한 것을 배운 것도 아니다. 심지어 결혼 후, 2세 계획 세우기에 열중한 남편에게 "난 아이를 낳을 자신이 없어."를 꾸준히 어필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아기를 낳았다. 너무 귀여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처음 맛보는 사랑스러움이란 감정은 찰나와 같고, 대부분의 시간을 자괴감, 반성, 죄책감, 짜증, 지겨움 등과 같은 감정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조상님의 지혜가 담긴 말이 알려주듯, 차라리 몰라야 하는데 알아서 문제다. [유아교육과]를 다니며(또 그 이후로도 계속된 연수에 의해......) 알게 된 영유아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들과 함께 마땅히 부모가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정보가 넘쳐났다. 아는데 안 되니까 괴로운 거다.

이 모든 서사를 한 마디로 압축하면, 중이 제 머리를 정말 힘들게 깎는 중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머리를 깎는 과정은 '충만하다'. 내 안에 다양한 나와 아이가 만나 항상 무언가로 가득 차는 느낌을 받는다.(그 무엇이 항상 긍정적이진 않는다는 것이 문제지만.)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소용돌이 안에서 아이와 몸 한 부분이 우연히 맞닿을 때의 기분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러기에 나는 기꺼이 제 머리를 깎을 것이다,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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