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없이 어떻게 여행을 했던 걸까요?
어느 곳이던 여행을 가면 숙소 근처의 작은 서점들을 간다. 만약 숙소 근처에 따로 없다면 이동동선을 보고 정하거나 후기를 보고 가고 싶은 곳을 정하기도 한다. 오늘은 미리 봐둔 서점을 가는 날. 면허를 딴 지 근 3년이지만 난 아직 운전을 할 때 자석으로 만들어진 [초보운전] 딱지를 붙인다. 고속도로 무섭지 않다. 샛길 조금 무섭다. 그렇지만 제일 무서운 건 주차다. 주차 자리가 없어 뱅뱅 돌아야 할 때는 내가 돌아버릴 거 같다.
오늘 가고자 하는 서점은 *문우당 서림이다. 주차장도 널찍하게 잘 되어 있다는 후기를 보았으나, 그것은 숙련된 운전자들의 후기 일 수 있기에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기로 했다.
하루 일과의 시작을 알리는 "밥 먹은 지 30분 지났다. 얼른 먹어라."를 내뱉으며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혹시 모르니 물, 간단한 간식거리, 카페에서 할 소소한 거리들, 더울지 모르니 손풍기, 지갑, 차키......핸드폰은 나가기 전에 목에 두르면 되니, 준비 끝.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은 아이와 양치, 소변 확인 등을 하니 벌써 9시 30분이 지나고 있다.
헐레벌떡 가방을 들고 나와 차량 내비게이션에(난 핸드폰으로 길을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너무 작다.) 목적지를 입력한 후, 출발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꽉 차있진 않겠지-'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주차'가 사라지자 슬며시 노래 생각이 난다.
왼손 엄지를 열심히 움직여 블루투스 오디오 플레이가 나올 문구를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으아! 핸드폰, 핸드폰 안 챙겨 왔다. 어떡하지?"
내 외침을 듣던 복덩이는 느긋하게
"다시 가~ 가면 되지"
라고 말했으나, 돌아갔다 다시 오면 !!!!주차!!!!를 못 할 거란 불안감이 더 컸기에
"아...... 괜찮을 거야, 사진은 못 찍겠지만. 그냥 가즈아!!!"
를 외쳐버리고 말았다. (복덩이 말을 들었어야 했다.)
도착한 문우당 서림 주차장은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휑-했으나 애써 일찍 나온 보람이 있다며 넘겼다.
문우당 서림은 생각보다 컸다.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1층은 백화점 내부에 있는 교보문고와 같은 느낌이 부쩍 풍겨 사실 당황스러웠었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편하게 책과 장난감거리...... 들을 고를 수 있다는 장점(단점)이 있기도 했다. 2층은 내가 생각한 독립서점의 느낌이 났다. 특히 2층 한편에는 박완서 작가님의 방으로 꾸며진 공간이 있었는데, 아담한 공간 안에 혼자 있으려니 별로 관심 없던 소설도 기웃거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약 10만 원어치의 책들을 골라 계산을 한 후, 다음 코스로 이동하기 위해 차량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해야 할 시간이다.
그렇다, 다음 목적지는 빼놓을 수 없는 카페이며 근처에 작은 소품샵&서점이 있다고 후기에서 본 *칠성조선소이다. 전 날 밤 열심히 찾아본 후기(보통 주차를 위해 후기를 찾아본다.)에 의하면 칠성조선소는 주차장이 따로 없으며 근처 민영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였는데, 다행히 어느 주차장이었는지 이름이 기억이 난다, 만세! 주차장에서 금방 걸어갈 수 있다고 하니 도착해서 여차저차 사람들 따라가거나 물어봐서 가면 되겠지 뭐!(그렇다, 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속초 시내는 생각보다 좁고, 심지어 시내에서 시내로의 이동이었기에 금세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며 차량 내부 시계를 확인하니 11시 02분. 완벽하다. 칠성조선소는 11시 오픈이라고 했었다.
아이랑 주변 눈치를 보며 슬렁슬렁 주차장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아이 앞이라 있는 대로 난감함을 표현할 수 없었기에 애써 태연한 척
"음~ 사람이 없네. 어떡하지? 물어봐야 하는데~~~~~"
를 외치다 얻어걸린 사람 한 명. 맞은편 건물이 석봉 도자기 박물관이었는데, 그 앞에 누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누가 봐도 석봉 도자기 박물관 직원(사실 차림새가 관광객이었으나 표정은 날 것의 직원이었다.)이었기에 당당히 다가가
"죄송하지만, 혹시 이 근처에 칠성조선소라는 카페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라고 말하다 누가 봐도 요즘 세상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싶어(인신매매로 오해하겠다 싶었다)
"아, 제가 급하게 나오다가 핸드폰을 두고 와서요."
라고 덧붙였다.
잠시 침묵을 하던 사람은 앞에 보이는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 1km를 걸으면 된다고 했다.
운전할 때 제일 힘들었던 건, 거리였다. 내비게이션에서 5km 앞에서 우회전하라고 하면 나는 안내가 나오자마자 우회전하기 편하도록 제일 가장자리로 간다. 감이 안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1km라......
일단 감사함을 전한 뒤 복덩이와 1km에 대해 가늠하며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예전에 혼자 제주도 여행을 할 때 올레길을 걷다가 무서워서 1km를 10분 내로 돌파했다며 스스로 칭찬한 일기장 내용이 문득 생각이 났다.
'오호, 아이랑 같이 걷고 있으니 한 최소 10분 정도는 가봐야겠군.'
이미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오면서부터 폭염으로 인한 날씨 탓에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나, 희망이 있었다.
그렇게 10분을 걷고 있는데 뭔가 쎄-하다. 이 길이 아닌 것만 같다. 어, 블로그 후기에서 봤던 다른 주차장이 나온다! 이상하다, 우리가 걸어온 주차장과 지금 내 앞에 있는 요 주차장 사이에 있다는 거 같았는데......
다시 서둘러 주변을 탐색한다. 앞에서 걸어오는 커플 포착.
"저, 혹시 칠성조선소라는 카페를 아실까요?"
"아니요, 몰라요."
"...... 아, 그럼 제가 핸드폰을 두고 나와서 그러는데 그 카페 위치를 한번 지도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마치 도를 아시냐,는 뉘앙스의 질문으로 나를 수상하게 보던 눈빛이 재차 이어진 질문에 풀렸다. 아이가 땀을 비 오듯이 흘리고 있으니 안쓰러워하며 둘 다 핸드폰으로 검색을 시작한다.
"아, 여기가 아니에요. 뒤돌아서 반대 방향으로 한참 가셔야 해요. 한 십 분쯤?"
우린 잘못된 방향으로 십 분을 걸어오고 있었던 거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아 다행이라며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하고 난 뒤 급격히 싸늘해진 표정으로 혼잣말을 했다.
"그 아저씨가 잘못 말해준 게 분명해."
"누가? 맨 처음에 그 아저씨?"
차마 더 못난 말을 할 수 없어 내뱉고 싶지만 나오지 못한 말들을 속으로 삼키며 복덩이의 손을 잡고 계속 걸었다.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서.
그런데 뭐가 잘못된 건지 이번엔 생뚱맞은 시장의 메인 골목 같은 길이 나왔다. 더위에 얼굴이 익어가는 아이를 살피다 그냥 눈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제가 핸드폰을 안 가지고 나왔습니다."
나이대가 좀 있어 보이는 2명의 여자분은 서로를 눈짓으로 쳐다보곤 슬쩍 손에 쥐고 핸드폰을 등 뒤로 감춘다. 아, 뭔가 시작이 또 이상했다.
"그렇지만 핸드폰을 빌려달라는 건 아니었고, 칠성조선소라는 카페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돌고 돌던 질문에 두 분은 고개를 내저으며 모른다는 말을 남긴 후, 가던 길을 향하셨다.
아- 매정하셔라. 핸드폰으로 지도 한 번 봐주시지.
절망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이의 혼이 육체를 빠져나가고 있는 게 느껴진다. 잡아야 한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지도를 보며 친절히 방향을 알려주던 커플.(커플 만세. 행복하십시오!!!) 그렇게 우린 그 근처를 계속 뱅뱅 돌았다.
"엄마, 근데 여기 아까 봤던 거 같은데. 엄마 생각은 어때?"
"...... 맞아. 우리 여기 3번째 지나는 중이야. 복덩아, 힘들지?"
"......"
엄마의 찌든 얼굴 속에 차마 안아 달라는 말도 못 하고 있던 아이가 안쓰러워
"엄마가 안아줄게. 이리 와."
라고 말하니 머뭇거리며 다가온다. 칠성조선소를 가고 싶었으나, 이렇게 개고생 하며 갈 정도는 아니라고 느낀 터라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 땀을 맞대며 물었다.
"복덩아, 우리 그냥 다른 카페 갈까?"
"근데 엄마가 가고 싶다고 했잖아."
그렇게 말하며 땀에 절은 내 목을 끌어안고는
"안아줘서 고마워."
라고 말한다.
핸드폰을 두고 와서 길을 못 찾고 헤매는 엄마를 탓하지 않고, 힘들지만 안아주고 있는 엄마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아이에게 울컥하며 힘을 내어 다시 칠성조선소를 찾기 시작했다.(이게 맞나?)
결국은 돌고 돌아 석봉 도자기 박물관.
너무 더워서 땀이라도 식힐까 하고 들어가니 극락이 나를 반긴다. 그 극락에는 시계가 있었는데 1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실성한 것처럼 웃다가, 다시 길 찾기에 도움을 줄 만한 사람들을 찾았다.
길을 잃었을 때 3원칙을 알고 있는가? 간단하게 말하면 1. 멈추기, 2. 생각하기, 3. 도와주세요 이다. 이 중, 3. 도와주세요 에서는 아무에게나 도움을 요청하면 안 되고 일하는 직원, 아이라 함께 있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물론 경찰도 포함된다.)
마침 도자기 박물관 앞에 대가족이 모여 있다. 할머니 한 분에게 눈인사를 하며, 아이를 내 전면에 내세워 상대 가족의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들과 마주 보며 서 있게 한 후, 그 옆에 계신 여성분에게 물었다.
"제가, 급하게 나오느라 핸드폰을 두고 나오는 바람에 길을 못 찾고 있습니다. 칠성조선소라는 카페를 알고 계실까요? 혹시 지도를 켜서 방향을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나의 의도가 왜곡되지 않게 한 번에 풀어낸 말에, 그 여성분은 안타까움이 섞인 어머어머-를 내뱉고는 친절히 지도를 켜서 '칠성조선소'라는 카페를 입력한 후, 다시 방향키를 건드려 지금 내가 나아갈 길을 찾아주셨다.
"음, 여기서 2분 정도밖에 안 걸리네요, 이 뒷골목으로 돌아서 가시면 돼요."
"네......?"
오늘 들었던 말 중에 제일 믿을 수 없는 말이었기에 다시 한번 실례를 무릅쓰고 직접 핸드폰 지도를 터치하며 보았다. 맞았다. 2분 거리였다.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 내어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하고, 도자기 박물관 뒤 골목 쪽으로 가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간다. 누가 봐도 카페 가는 모습이다.
"엄마, 여기야? 맞아?"
"응, 여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맨 처음에 아저씨가 한 말은 맞는거야?"
행복에 실성한 나와, 누가 잘못한 건지 따지고 싶은 얼굴이 익은 아이.
칠성조선소는 우리가 헤맨 시간만큼 극적인 외관도, 커피맛도, 빵맛도 없었으나 우린 그곳에서 실컷 쉬었다.
(그 이후에 간 '동그란 꿈'이라는 소품샵&서점에서 아이와 말싸움 한 건 다음 편에 나올 테니 안 비밀.)
분명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도 나는, 우리는 여행을 다녔을 텐데, 그땐 어떻게 다녔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세월이 흘러 버렸다. 이제는 핸드폰이 없다는 말이 누군가에게 무섭게 들릴 수도, 길을 잃었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시기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세상 어딘가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2분 거리를 45분 동안 헤매는 사람들 말이다.
앞으로 나는 길을 잃은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망설임 없이 핸드폰에서 지도를 켤 것 같다. 그게 오늘의 내 배움이다. 폭염 속에서, 혹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누군가를 위하여 말이다.
*문우당 서림: 속초를 대표하는 종합서점이라고 한다. 1층, 2층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림책(스티커북, 색칠놀이, 소소한 놀잇감 포함), 학습만화 등 어린이를 위한 코너와 주제별로 다양한 책들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으며 사장님으로 보이는 지긋한 연세의 신사분이 인상 깊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