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취향을 맞춰나가는 중

"엄마도 여행 중이야"

by 초록

문우당 서림에서의 성공적인 시간을 뒤로하고, 한참을 헤맨 후 도착한 칠성조선소 옆에는 *동그란책이라는 작은 서점이 있다. 많고 많은 카페 중 굳이 굳이 그 시간을 헤매며 칠성조선소로 온 이유이기도 하다.


칠성조선소에서 시원한 오미자차(복덩이 것), 라테(내 것)와 빵을 조금 주워 먹다가 아이는 문우당 서림에서 득템 한 것들을 주섬주섬 꺼내고 나는 책을 꺼냈다. 아이가 고른 것 중에는 오리기 놀이책이 있는데, 칠성조선소를 찾아 헤매는 내내 희망이 되어주기도 했다. ("카페 가서 시원한 주스 한잔! 하고 오리기 공부해야지~"라고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말하는 모습을 보았다.)


오리기 공부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다 보니 몸이 젤리처럼 반투명해진다.


"엄마, 이제 가자."


카페에서 1시간 30분을 넘긴 건 처음이었다. 약 2시간 만에 카페를 나오는데 들어올 때는 못 봤던 놀이기구(?)들이 보인다. 높낮이가 다른 나무들을 연결해 놓은 나무 놀이터와 가볍게 오르내릴 수 있는 나무 언덕들이 있었는데, 내 눈에 보이니 아이 눈에도 보일 수밖에.


"이거 해 보고 가자."


호기롭게 좋다고 했으나 5분도 안 되어 땡볕에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어 아이와 협상을 시도했다.


"엄마 너무 힘든데, 옆에 서점 하나 더 있대. 거기 들렀다가 나와서 더 놀자. 그건 됨! ㅇㅇ"


통할 리 있겠나.


몇 번의 실랑이 끝에(이럴 거면 차라리 그 시간 동안 즐겁게 놀게 할 것을, 항상 하는 후회다.) 결국 동그란책으로 걸음을 옮겼다.


들어오고 약 2-3분 뒤,


"다 구경했지? 이제 나가는 거다?"


를 신경질스럽게 말하는 아이를 보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애처롭게 말해보나 소용이 없는 거 같다.


"엄마가 여기 들어와서 구경하면 저거 더 놀게 해 준다고 했잖아! 왜 약속 안 지켜!"


듣다 보니 기분이 몹시 상한다.


"복덩이랑 엄마랑 같이 여행하고 있잖아. 너 혼자 여행 온 거 아니잖아. 복덩이 하고 싶은 거 기다려준다고 했으면 복덩이도 엄마 기다려 줘야지."


라고 무표정하게 내뱉으니 아이는 씩씩 거리며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다.

그렇다, 우리는 같이 여행을 온 거다. 엄마와 아이라고 무조건 아이 말을 들어줘야 할 건 아니지 않은가?

내 말과 행도에 당당함을 가지고 구경을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투가 너무 쎘나- 싶다. 약 5-7분 정도의 구경을 끝내고 아이 옆으로 다가갔다.


"엄마 이제 혼자 구경할 건 끝났어. 저쪽에 귀여운 거 많이 있던데 같이 보러 가자."


"...... 그래?"


은근슬쩍 내민 엄마의 손에 못 이긴 척 넘어가는 아이의 손.

우리는 그렇게 가벼운 말싸움을 끝내고 귀여운 소품을 구경했다.(귀여운 강아지 인형도 득템 했다.)


그렇게 서점을 나오고 난 다시 땡볕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나무 놀이터 그게 뭐가 재밌다고- 하아, 깊숙한 한숨 뒤로 칠성조선소를 찾아 헤맬 때 투정 한 번 없던 아이를 떠올린다.

...... 그래, 가끔 보면 내 아이지만 네가 참 사람이 됐더라.


아이와 함께 떠난 여행은 내가 기존에 한 여행과는 다르다. 친구와, 남자친구와(지금의 남편이지 암암, 그렇고 말고), 엄마 혹은 동생과 한 여행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여행: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이나 국가로 이동하는 행위]


같은 여행이라도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 건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아이랑 함께 여행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누구'가 '아이'가 된다는 건 큰 어려움을 동반하게 될 거라는걸. (사실 여기에 견줄 '누구'가 있긴 하다. 그것은 바로 '우리 엄마'다. 이 돈 주고 여기를~ 이 돈 주고 이거를~ '이 돈 주고' 시리즈는 이길 수 없을지도.)

20대에는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때에- 내가 오고 싶어 한 장소에서 한다는 자체에 만족감을 느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때, 장소를 못 맞추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도 만족스럽다.


아이와 나는 여행 취향을 맞추어 가는 중이다.(남편과는 못 맞췄지만 아이와는 맞출 수 있겠지.)

때로는 내 취향에 조금 더, 때로는 아이 취향에 조금 더 맞춰지기도 하지만 이런 들 어떠하고 저런 들 어떠한가. 함께 여행하고 있는 이 순간이 만족스럽다.


*동그란책: 칠성조선소부지 내에 있는 독립서점이자 소품샵이다. 다양한 그림책이 전면에 전시되어 있으나 권수로 따지면 많지 않아 보인다. 다만, 소품샵이 함께 있어 아이와 함께 구경하기엔 더 좋을 것 같다. 칠성조선소라는 카페가 근처에 있어 겸사겸사 가볍게 들리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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