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웃음소리가 참 좋아
여름 속초 2주 살기에서 간결하지만 확실한 목표 한 가지는 하루에 한 번, 바닷가에 가기였다. 바다 가까운 곳에 숙소를 얻었으니 꼭 지켜야 했다.
시간대는 다양했다. 아침, 오전, 오후, 저녁. 우연히 나간 저녁시간대의 등대해변은 오싹하면서 씁쓸했기에 되도록이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오전, 오후 시간대를 선택하려 했다. 베스트는 오전 시간대였으나, 서점과 카페, 박물관 투어 등으로 오전 시간대는 훌쩍 지나버렸기에 이틀 연속 오후 바다 물놀이를 하게 되었다.
"이제 집(속초)에 가자."
어디로 가도 물놀이로 5-6시간 정도는 특별한 음식(물 혹은 주스만 있으면 된다.) 없이 지치지 않고 노는데 오후 4시쯤 나온 물놀이를 고작 2시간 만에 정리를 하고 들어가자는 말을 하다니. 먹힐 리가 없다.
그렇다고 어제처럼 옥토넛으로 원만한 합의를 보기에는, 오늘의 엄마 양심 혹은 자존심 그것도 아니면 이기심.....? 암튼, 그런 마음이 있어 옥토넛을 대가로 건네 주기가 싫었다. 심지어 들어가자는 이유가 저녁 먹어야 한다니, 이건 절대 먹힐 리가 없다는 걸 내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싫어."
간단하게 대꾸를 마치고는 물속에서 버둥거리는 듯, 헤엄을 치는 아이.
몇 번의 실랑이를 하다 점차 올라가는 내 눈꼬리에 덩달아 내 두 손도 허리춤으로 올라간다. 조금 더 얕은 물로 발걸음을 옮기며 아이의 눈에 치골쯤 자리 잡은 내 두 손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조교 포스가 물씬 풍기도록 하는데, (조교가 뭔지 모르는 아이일지라도 그 느낌은 알겠지.)
"......?"
갑자기 두 손에 뭔가 이상한 게 만져진다.
한참 기싸움을 하던 중이라 복덩이도 자연스럽게 내 시선을 따라 움직였는데, 내 두 손으로 만진 것은 밖으로 길게 혀를 내밀며 빵빵하게 부풀은 바지 주머니였다. (다리 전체를 감싸는 래쉬가드 하나만 입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보는 눈을 오염시킬 수 있기에 짧은 수영 바지 하나를 덧 대어 입었는데, 이 날은 하필 빨래를 제 때 안 해서 짧은 수영바지 대신 그냥 외출복을 덧대 입었었다.)
"뭐야, 이거."
주머니에 공기가 들어갔다는 사실보다 그냥, 이상한 모양새와 느낌에 어이없어하고 있는데 앞에서 아이가 자지러지기 시작한다.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발도 안 닿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웃다가 짭쪼름한 물 한 바가지를 먹고 있다. 아이를 구해주기 위해 팔을 뻗으니 냉큼 그 손을 잡고는 내 앞까지 단숨에 와 주머니를 만진다.
그리고는 여전히 자지러지게 웃는다.
이미 아이의 웃음은 터졌고, 곱게 들어갈 거 같지 않아 일단 시간과 상황이 흘러가게 두기로 했다. 포기를 하니 마음이 편했다.
주머니를 갈무리해 안으로 넣고, 아이의 볼에 입맞춤을 하고, 다시 깊은 물속으로 들어갔다. 내 얼굴에 마음이 드러났는지 여유를 찾은 아이가 열심히 두 팔과 발을 저으며 다가온다.
그리고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밖으로 꺼내고 엉덩이를 흔들며 공기를 집어넣어 부풀게 했다. 아이는 또 자지러지게 웃는다. 그 모습을 보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냥 웃긴다. 함께 막 웃다 보니 배가 아프다. 뱃살도 빵빵하게 하고, 엉덩이도 빵빵하게 하고 그냥 이것저것 막 하다 보니 시간이 그새 흘렀나 보다.
"나오세요!!!"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에 주변을 보니 바닷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다.(처음에는 안전요원인 줄 알았는데, 파라솔을 빌려주는 업체에서 튜브 등을 회수하며 사람들이 안전에 신경 쓸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얼레벌레 바다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그 이후로도 대충 6시 40분 전후로 나오세요! 를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벼운 목욕을 하고 나오니 털지 못한 모래로 쌓아 둔 옷 옷 사이에 혀 내밀고 빵빵해졌던 그 바지를 만지작 거리는 아이가 보인다.
"엄마, 이거 또 아까처럼 그럴 순 없어?"
아쉬운 마음에 바지를 만지작 거리는 모습을 보다, 내일도 바다 물놀이를 할 때 그 바지를 입기로 약속을 한다. 생각만 해도 좋고 웃긴지, 혼자 계속 웃는다. 근데, 이상하게 나도 계속 웃는다.
찾았다, 우리의 웃음벨.
속초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도 아쉽지 않을 거다. 우리가 찾은 웃음벨 바지를 주기적으로 입을 테니까. 아이 아빠는 우리가 왜 웃는지 모르겠지.(그러니까 시간 내서 오라고 해찌!!!)
우리의 추억은 한 바지에 곱게 쌓였다.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