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는 못 참지.
워터파크를 다녀왔으니 쌓인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후다다닥 정리를 해놓은 뒤(장소가 바뀌었을 뿐 집안일은 어디나 똑같네.) 잔뜩 성난 위장을 이끌고 집(속초) 근처 식당으로 갔다. *등대곳간이라는 곳으로 네이버 지도에서 집(속초) 근처 식당을 훑어보고 후보에 들어간 곳 중 하나였다. 계속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었던 터라 매콤한 낙지에 아이도 먹을 수 있는 돈까스가 메뉴에 있어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강렬한 양념이 나왔고 그에 맞춘 하얀 밥을 두 그릇이나 먹고 나오니 몸이 급격히 노곤노곤해졌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며 짧은 해변가를 따라 걷다가 도착한 우리 집(속초) 현관문을 열자마자 우리는 곧 작은 침대 방 안에 4명이 아복다복 모여 데굴거리기 시작했다. 복덩이와 있을 때는 의식적으로 tv를 안 켜는 엄마지만(그렇지만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는 못 참는다. 이 날은 금요일이라 괜찮았다.), 엄마도 몸이 무거운 탓인지 벽에 기대며 습관적으로 tv를 켰다.
tv만 켜지면 반사적으로 시선이 향하는 복덩이는 이내 곧 할머니와 이모에게로 향했다. tv보다 더 재밌는 대화시간이기 때문이다.
"근데, 저 사람들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아, 여행을 갔나 봐.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서 기대가 된다는 거 같아. 어, 근데 이모도 여행 가는데 거기는 에그타르트가 유명하다고 하더라."
"응? 이모 여행가?"
tv는 거들뿐, 혹은 대화에 좋은 소재를 던질 뿐이다. 포르투갈 여행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네덜란드와 미국을 거쳐 태국에 종착지를 마련했다. 요리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고, 중간중간 종잡을 수 없는(유치원, 옥토넛 혹은 도라에몽 에피소드, 그림책 이야기 등) 에피소드가 툭툭 튀어나오기도 했다.
사실 아이를 낳으면서 기존에 있던 대형 TV를 치우고 싶었다. TV가 없이 전면 책장으로 가득한 거실이라니, 이 얼마나 멋스럽단 말인가.(자녀교육에 도움된다는 말은 덤.) 몇 번 남편을 설득하려고 했는데, 설득을 당하지 않았다. 남편은 그런 낙(樂)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계속 틀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고 나를 설득했고, 나는 그 말에 설득을 당했다. 조리원에서 퇴원한 후, 100일의 기적을 바라며 날 버티게 해 준 건(이렇게까지 거창하게 쓸 일은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그 시기에는 그랬다.) 8할이 *<윤스테이>였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이 내 설득에 넘어가 주지 않아 정말 고마웠다.
이제는 tv가 틀어져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일부러 광복절 기념식 장면 같은 건 틀어 놓기도 한다. 때로는 봐야 하는 것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가끔은 차가운 집안 공기에 훈훈한 tv소리를 일부러 곁들여놓기도 한다. 아이에게 냉전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작은 침대방에 널브러져 tv를 배경음악 삼아 재잘재잘대는 오늘의 풍경이 또 생각날 테다.
*등대곳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속초 등대해수욕장과 속초 등대에 위치해 있다. 아담하지만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2층에서 밥을 먹으면 바다 뷰가 쫙-펼쳐진다.(창가석에 앉으면 더 좋다.) 짜글낙지와 돈까스가 유명한 메뉴인 것 같고 그 외에 제육볶음, 고등어 조림도 있다. 밥과 반찬은 리필이 가능해 물놀이 후에 방문하면 혈당 스파이크 받기 딱 좋다.(과식할 수 있음.) 강렬한 양념이 필요하나, 아이가 신경쓰일 경우에 가족단위로 가기 좋은 곳이다.
*윤스테이: 2021년 1월 8일~4월 2일까지 방송된 tvn프로그램으로 윤식당, 서진이네 등과 같은 형식으로 '쉼'을 전달하는 한옥 체험 리얼리티 쇼다. 나는 이 시기 '쉼(잠)'이 절실히 필요한 신생아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