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333'과의 만남
나는 늘 아침 시간이 바빴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땐 엄마가 깨우면 겨우 일어나 차려진 아침을 대충 먹은 후, 벽에 걸린 교복을 입고 매일 뛰었다. 지각하면 교문에서 이름이 적히고 무서운 교무실로 가야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뛰었다. 혼자 살았던 대학생 땐 아침밥은 패스하고 일어나자마자 후드티에 트레이닝 바지를 대충 입고 뛰었지만, 출석번호가 앞 번호였던 난 자주 지각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는 부끄럽게도 지각을 한 날이 안 한 날보다 더 많았다. 지각한 것을 숨기려고 가방 없이(때로는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기도 했고, 자동차에 실내화를 두고 주차장에서부터 실내화를 신고 이미 출근한 듯 들어가는 꼼수를 쓰기도 했다.
이런 내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거의 3년 만에 다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예전엔 나 혼자 챙기기도 벅찬 아침이었는데, 이젠 어린이집에 등원시켜야 하는 4살(만 2세) 아이가 내게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출근 전 등원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상상조차 잘 안 됐지만, 매일 아침이 전쟁일 것은 분명했다. 아침 전쟁 속에서 등원과 출근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매일 무사히 완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준비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했다. 보리는 늘 먹던 우유에 오트밀을 말아 먹이고 싱크대에서 대충 세수를 시킨 후, 뭘 입어도 귀여우니 아무 옷이니 입힌다. 나도 오트밀을 먹고 화장은 선크림만 바른다. 아니 시간이 없으면 오트밀은 패스하고 선크림은 출근길 자동차에서 바르면 된다. 문제는 옷이었다.
난 보리처럼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없었다. 뭘 입어도 봐줄만한 젊음은 이미 날 떠난지 오래였다. 아침마다 옷장에 서서 옷을 골라 입으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옷을 입었는데 너무 이상해 입고 갈 수는 없고, 옷장 속 옷을 막 뒤지는데 마땅히 입을 옷은 보이지 않고, 시간은 자꾸 가고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지고, 그런 와중에 아이는 응가를 하거나 냉장고 문을 열고 사고를 친다. 아, 상상만해도 아찔하고 식은땀이 난다. 그렇다고 매일 저녁 다음 날 입을 옷까지 미리 골라놓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내가 신경써야 할 것은 많아지고 내 시간이 너무 부족해 마음 속에서 왱왱 적색경보가 울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옷에 없는 시간과 신경을 쪼개 쓰고 싶지 않았다.
스티븐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처럼 셀프 유니폼을 입는건 어떨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분명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 거라며, 용기를 내기 위해 셀프 유니폼을 입는 일반인(?)을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일주일 정도 고민하다 난 너무 평범하며 직장에서 없어도 잘 티가 나지 않게 아주 아주 평범하게 있고 싶기에, 그들이 될 수도 없지만 돼서도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셀프 유니폼은 포기하고 이것저것 검색하다 한 블로그에서 ‘캡슐옷장’을 발견했다. 캡슐옷장은 그 시즌에 사용하는 옷, 가방, 모자, 액서서리 등을 모두 넣은 하나의 옷장을 말했다. 캡슐옷장에는 지금 입고 쓰는 것이 모두 모여 있어 한 눈에 파악하기 쉽고, 이 옷장 하나면 열면 외출 준비가 금방 끝난다고 했다. 캡슐옷장! 이것만 있으면 출근할 때 옷을 빠르고 쉽게 골라 입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남는 옷장이 없었다. 캡슐옷장이 내게 맞을지 성공할지 알 수 없어 새 옷장을 사는건 부담스럽고, 당근으로 옷장을 구입했다. (당근 옷장은 너무 괜찮은 옷장으로, 우리집 옷장보다 좋다.) 집에 빈 옷장이 들어오고 캡슐옷장을 만들기 위해 인터넷에서 정보를 더 찾다가, 캡슐옷장이 ‘프로젝트 333’에서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프로젝트333?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살펴보니 프로젝트 333은 '3개월 동안 33개의 의류 아이템'만으로 생활하는 걸 말했다. 이 33개는 옷, 모자, 가방, 신발, 액서서리를 모두 합친 숫자이다.
아니, 이건 뭔가? 흥미가 생겼다. 더 찾아보니 프로젝트 333을 시작한 코트니 카버가 쓴 <프로젝트 333> 책도 있었다. 온라인 서점의 책 소개에는 “아침에 뭘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돼요. 왜냐하면 가진 옷이 다 멋지거든요.”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세상에, 내 마음 속에 들어왔다 나온 건가? 마음이 너무 혹했다. 집 근처 도서관에 이 책이 있었고, 난 당장 도서관에 가 책을 빌렸다. 읽을수록 <프로젝트 333>이 마음에 들었다. 프로젝트 333을 하면 아침에 옷을 빨리 입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시간도 좀 더 벌고 덕지덕지 붙어 날 무겁게 하는 여러 문제까지 해결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캡슐옷장이 아니라 ‘프로젝트 333’을 시작하기로 했다.
33개 이하의 아이템으로 옷 입기를 실천한 사람들의 피드백에서 내가 발견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결국 이 패션 프로젝트가 패션이나 옷이 아니라 건강, 행복 그리고 마음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