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록 거북
첫째와 둘째는 성격이 많이 달라서 양육을 할 때마다 새롭고 힘듦이 달랐다.
첫째는 예민한 성격 때문인지 낯선 모든 상황을 불편해했고 칭얼대거나 잠투정이 심해서 새벽 2시 3시에 겨우 재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7살이 되고 나서는 따뜻한 성격으로 동생을 잘 챙기고 엄마의 힘듦을 이해하고 자신이 맡은 일은 해내려는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자라고 있다.
그러나 둘째는 쾌활하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잘 먹고 잘 자고 울음도 쉽게 그쳤지만 집을 엉망으로 만들거나 내가 아끼는 그림책을 찢고 낙서하는 등 다른 방향에서 나를 힘들게 한다. 어제 그림책방에서 구입한 '초록 거북' 책에 신나게 낙서를 해놔서 아이에게 꽥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엄마에게 혼이 나서 울더니 곧 울음을 그치고 웃으며 바로 안아달라고 다가온다.
초록 거북의 아빠는 아이를 키우는 내 모습과 겹쳐진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들려주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래서 어린 갓난쟁이 때부터 그림책도 읽어주고, 자연을 느끼게 해 주려고 수시로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도 다녔다. 아이가 학습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을 때는 초록이 아빠처럼 수학, 한글, 영어 등 가르치는 것에 진심이었다. 기대만큼 수학을 이해를 못 하는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많이 울리고 포기하기도 했다. 아이가 이유 없이 화를 내면 나도 아빠 거북처럼 화가 나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스스로를 격리시키기도 했다.
아이들은 미숙하고 부족한 엄마지만 초록 거북이 아빠에게 사랑한다며 토마토 한알을 넣어주는 처럼 다가와 뽀뽀를 해주고는 했다.
아빠 거북은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이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두르지 않기로 한다. 나도 아빠 거북처럼 내 아이에 대한 것이 욕심인 것을 알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자 아이와 관계도 편안해졌다.
첫째가 약시 진단을 받던 날,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며 수시로 아프고 입원을 하는 동안 아이가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좀 더 자라고 이제는 내 손이 가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이를 지켜보며 이제는 언젠가 내 품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첫째가 어느 정도 자라고 아직 손이 많이 가는 둘째를 키우며 힘에 부쳐 지칠 때면 나의 나이 듦과 늙음을 느낀다.
점점 더 자라나는 초록 거북처럼 아이들은 완전한 어른이 되고 나는 이제 많이 늙고 노쇠하고 병이 들지도 모른다.
"하나도 안 안픈데... 무서워. 점점 네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단 말이야." 몇 번을 읽고 다시 읽어도 아빠 거북의 이 말에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둘째를 낳고 돌발성 난청을 겪으며 사랑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나이가 들면 청력이 완전히 소실될지도 모른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아빠 거북의 두려움과 슬픔이 느껴져서 눈물이 난다.
초록 거북은 늙고 노쇠한 아빠의 곁을 항상 지키지만 나의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사느라 내 품을 완전히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던 그 삶 자체로 나는 행복하니까.. 부족한 엄마지만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도 컸고 나의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아이들을 키우며 치유하는 경험을 했으니까.. 양육의 시간을 나를 더 성장시켜 주었으니까.. 짧은 시간이지만 지나 놓고 보니 양육의 시간은 나에게 축복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내 품을 떠나 더 먼 세상을 향해 나가더라도 나는 나대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준비를 할 것이다.
아빠 거북과 초록 거북의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나는 초록 거북의 아빠처럼 두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시간에 감사하며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