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기후변화 협약 이후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신기후체제. 그리고 그 테두리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이 두 가지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100% 재생가능에너지가 IT기업들의 경쟁력을 위한 중요 요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글은 8월 24일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기후변화 뉴스레터 전문가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더 많은 시민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브런치에도 발행합니다.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해양대기청(NOAA)의 자료를 인용, 2016년이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재앙 수준의 폭염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해 5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1,800명이 온열질환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 가운데 사망자가 16명에 이른다.
지구를 점점 더 뜨겁게 만드는 주범은 화석연료 사용 등으로 인한 온실 가스다. 지난해 말 세계 195개국은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파리 기후변화 협약(신기후체제)'을 채택했다. 이번 세기가 끝나기 전까지 인위적 배출원에 의한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자는 목표가 여기 담겼다. 이 협약은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해 온실 가스 배출과 관련한 국제적 규범 역할을 하게 된다. '탄소 제로'. 우리의 눈앞에 닥친 새로운 시대의 모습이다.
신기후체제는 제조업 비중이 큰 우리나라 경제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했던 교토의정서와 달리 파리협약은 195개 당사국 모두가 이행 의무를 지닌다. 따라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은 앞으로 기업들에게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신기후체제와 함께 우리나라 기업들 앞에 놓인 또 다른 변화의 흐름이 있다. 지난 1월 세계 정치, 경제 리더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다보스포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3차 산업혁명이 정보기술(IT)과 산업의 결합을 의미한다면, 4차 산업혁명은 이를 기반으로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의 융합과 연결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것이 만물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이다. 이제 모든 산업 분야에 걸쳐서 디지털화가 더욱 촉진될 전망이다.
산업의 전 영역에 걸친 디지털 인프라 구축과 만물인터넷의 확산은 데이터 양의 폭발적 증가를 의미한다. 당연히 그 데이터를 처리하고 보관하는 데이터센터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는 전력 소비량 증가와 직결된다. 2011년 기준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사용한 전력량은 6,840억kWh에 이른다. 서울시에서 15년 동안 소비되는 전력량과 맞먹는 양이다.[1] 이를 한 국가의 사용량이라고 치면 세계 6위에 해당한다. 문제는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축적되는 데이터량, 그로 인한 전력 소비량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인류가 쓰는 전기는 대부분 화석연료, 특히 석탄과 천연가스를 원료로 만들어진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로 흘러드는 전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신기후체제가 추구하는 탄소 제로의 경제 모델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IT 기업의 에너지원을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증가하는 전력 사용량을 100%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 조달하지 않는 기업은, 머지않은 미래에 탄소 배출 규제에 따른 경쟁력 약화를 겪게 될 것이다. 페이스북, 애플, 구글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이 자사 데이터센터를 100% 재생가능 에너지로 운영할 목표를 세우고, 빠르게 재생 에너지 사용 비율을 높여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컨대 4차 산업혁명은 신기후체제의 테두리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탄소 제로의 시대를 앞서가려는 움직임, 또는 변화에 뒤처진 기업들이 겪는 불이익은 이미 현실이 됐다. 2016년 현재 전 세계에서 총 3조 4,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금을 운영하는 기금, 대학, 재단 등 548개 기관들이 화석 연료에 대한 투자 철회 결정에 동참하고 있다. 한편 세계의 영향력 있는 69개 기업은 향후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RE100'[2] 그룹을 결성했다. 여기에는 자동차 제조사 BMW도 참여하고 있는데, 이 기업은 최근 자사에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하는 삼성SDI에 사용 전력의 일부를 재생가능 에너지로 조달할 것을 권고했다.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 특성상 우리나라 기업 중에는 해외 유수 브랜드의 공급망에 속하는 곳이 많다.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될수록, BMW처럼 재생가능 에너지 사용에 대한 요구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주요 납품 업체로서의 지위를 잃거나 투자 철회의 대상이 되는 사례도 생길 것이다.
글로벌 IT 기업들은 이미 발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예컨대 애플은 전 세계에 있는 데이터센터를 포함해 자사 관련 시설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93%를 재생가능 에너지로 조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100% 재생 에너지를 선택한 이유는 결국 이득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재생가능 에너지를 쓰면 탄소배출 규제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전력 가격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 따라서 화석연료 에너지에 비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막는 IT 기업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도 챙길 수 있다.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을 약속한 글로벌 IT 기업엔 아마존 웹 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도 포함된다. 이들 기업은 KT, SK브로드밴드, LG U+ 같은 우리나라 기업의 데이터센터를 임대해 사용 중이다. 하지만 해당 국내 기업의 재생가능 에너지 사용비율은 채 4%가 되지 않는다. 해외 기업 고객들이 재생가능 에너지 사용에 대한 기준을 국내에서도 똑같이 적용하려 든다면 어떻게 될까?
그린피스가 다음 달 전 세계에서 발표할 예정인 <깨끗하게 클릭하세요(Clicking Clean)> 보고서에는 국내 IT 기업의 재생가능 에너지 사용 점수가 포함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재생가능 에너지 사용 비율이 현저하게 낮고, 그것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미미하다. 국내 IT기업 중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을 약속한 곳은 현재로선 네이버가 유일하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정책적 뒷받침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태양광이나 기타 재생가능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어도 구매할 수 없다. 그린피스는 지난해부터 전력구매계약(PPA)[3]이 가능한 길을 열어달라고 정부에 요구해 왔다. 전력구매계약이란 전기를 쓰는 기업이 직접 전력 생산자를 선택해 계약을 맺고 전기를 사서 쓰는 일을 말한다. 산업부는 관련 제도 개선 방안을 9월까지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1세기 인류의 새로운 삶을 디자인하는 IT 기업이 구시대적인 화석연료와 위험한 원자력 에너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 한 일이다. 재생가능 에너지 사용은 IT 기업의 생존을 위한 조건이 되어 가고 있다. 변화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신기후체제와 4차 산업혁명의 막이 오르는 시점, 글로벌 경제의 주도권을 쥘 것인가, 아니면 도태되고 말 것인가. 이제 이 질문에 답할 때이다.
글: 이진선 /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1] <당신의 인터넷은 깨끗한가요?>, 그린피스, 2015
[2] 중장기적으로 자사 전력을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운 이니셔티브. 2014년 출범했다. 현재 이케아, 코카콜라, 골드만삭스, H&M, 구글, HP, 나이키, 월마트 등 69개의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3] Power Purchase Agreement
*이 글은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기후변화 뉴스레터 전문가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