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를 통해 재조명하는 대한민국 원전의 불편한 진실들
지난 글에서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영화 판도라 속 현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살짝 복습해 볼까요?
영화의 배경인 월촌리의 실제 모델이 한별 1호기의 모델이자 우리나라 최고령 원전, ‘고리 1호기’가 위치한 부산 기장군의 ‘고리’라는 것과,
실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역시 지진으로 촉발되었는데, 한반도에서도 최대 7.5의 강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뿐더러, 우리 원전의 내진 설계가 결코 안심할 수준이 아니라는 점,
마지막으로, ‘벤트’,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등 영화 속 다양한 이야기 역시, 현실에서 벌어진 원전사고에 바탕을 두었다는 점을 말씀드렸어요.
>> 키워드로 살펴보는 판도라 - 영화 vs 현실 다시 보기
그래도 여전히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거라 생각해요. 중대 사고 이후 원전 보유국들은 하나같이 “우리 원전은 다르다. 그래서 안전하다” 말해왔고, 그게 결국 우리가 한결같이 들어왔던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우리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정말 괜찮은 걸까요?
이번 글에서는 대한민국 원전의 특수한 위험성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안일한 대응으로만 일관하기엔, 우린 실로 너무도 특별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전 세계 원전 밀집도 1위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다음의 메시지가 영화관 스크린 위로 나타납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기억하시지요?
네, 정말로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미국보다도 20배 이상 높고, 러시아보다는 100배 이상 높습니다.
지도로 한번 비교해 볼까요?
이렇게 좁디좁은 국토에 25기(*최근 상업운전을 시작한 ‘신고리 3호기’ 포함)라는 많은 원전이 밀집해 있다 보니 우리나라 원전 밀집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사고가 발생할 시 미치는 영향은 우리나라 원전 밀집도의 약 ½ 수준인 일본, 프랑스와 더불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개별 부지별 원전 밀집도 및 규모, 세계 1위
우리나라에 있는 이 25기의 원전은 총 4개의 부지에 집중되어 있는데요. 바로 고리, 월성, 한울, 그리고 한빛 원전단지입니다. 그리고 개별 부지별 원전 밀집도 및 부지별 원전 규모에서 역시, 우리는 세계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습니다.
현재 (2016년 12월 1일 기준), 전 세계에는 450개의 원전이 188개 부지에 위치해 있는데요. 평균적으로 단지 당 원전 개수는 2.4개 정도입니다. 6개 이상의 원전이 한곳에 밀집해 있는 곳은 초대형 원전 단지는 지구 상에 단 11곳(6%)에 불과합니다.
놀라지 마세요. 우리나라의 경우 네 곳의 원전 단지(고리, 월성, 한울, 한빛) 모두가 6개 이상의 원전이 위치한 초대형 원전단지입니다. 부산과 울산에 걸쳐 있는 고리 원전에 7개, 경주 월성 원전에 6개, 경북 울진 한울 원전에 6개, 전남 영광 한빛 원전에 6개… 이처럼 4곳에 과도하게 밀집돼 운영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초대형 원전 단지 11개 중 1/3 이상이 우리나라에 있는 겁니다. 모든 원전단지가 6개 이상 원전이 밀집된 ‘초대형’ 원전단지인 나라는 지구 상에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고리 원전은 총 설비용량 6,860메가와트(MW)로 현재 가동되는 원전 단지 중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원전 단지입니다.
그리고 고리원전을 포함 원전 개별 단지별 규모로 세계 1, 3, 4, 7위의 원전단지가 모두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원전 30km 반경 내 인구수 전 세계 1위
고리 원전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타이틀은 “대형 원전 단지 주변 30km 내 인구, 세계 최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고리 원전 인근 30km 내에는 부산, 울산, 양산 시민 총 380만 명이 살고 있는데요. 전 세계에서 대형 원전 단지 반경 30km 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는 곳은 우리나라뿐입니다.
세계에서 원전이 6개 이상 밀집된 원전 단지 중에서 우리나라 4개의 원전 단지를 제외하면 평균적으로 30km 반경에 46만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8개의 원전이 밀집해 있는 캐나다 브루스 원전의 경우는 같은 범위에 3만명의 시민들만 살고 있습니다.
고리 원전 주변에는 사람만 많은 게 아닙니다. 부산항(32km),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26km),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25km), 울산 석유화학단지(18km), 해운대(21km) 등, 우리 경제의 각종 핵심 시설들이 고리 원전단지 30km 내외에 위치해 있습니다.
30km가 중요한 이유는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들이 그 무게 때문에 사고 지점 30km 내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체르노빌 참사와 후쿠시마 사고의 경우도 모두 30km가 피난 구역으로 설정된 바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의 30km 반경 내 인구는 사고 당시 17만 명이었고, 경제적으로 핵심적인 지역도 아니었습니다. 고리는 후쿠시마의 무려 22배인 380만입니다. 또한, 각종 경제 시설들이 위치해 있습니다.
300명도 구하지 못한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으로 과연 380만 명을 구할 수 있을까요?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고리에 3개, 울진에 4개의 원전을 더 추가할 예정이고 삼척과 영덕에 새로운 원전 부지를 만들어 4개를 더 추가할 계획입니다.
이런 국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왜 항상 걱정과 우려는 국민들의 몫이어야 할까요?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현실에서도 여러 차례 열렸습니다. 체르노빌 참사와 후쿠시마 사고를 목격한 전 세계는 이미 탈핵으로 가는 에너지혁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의 행보를 보이며 여전히 판도라의 상자를 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전 밀집도 세계 1위”, “세계 최대 규모 원전 및 부지별 밀집도 최대의 원전 보유국”, “대형 원전 인근 주변 인구 최다”... 이토록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세 개나 거머쥐었음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원전을 늘려나가려 합니다.
대체 왜? 누구의 이익을 위해,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까요? 정말 대안이 없는 걸까요?
위 질문들에 대해 다음 글에서 계속해 다루어 보겠습니다. (마지막 3편에서 계속)
글: 장다울/ 그린피스 선임 기후에너지 캠페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