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마피아가 아닌 시민을 위한 에너지 전환으로
예상치 못했던 지진으로 원전의 냉각기능이 상실되고 핵발전소가 폭발합니다. 발전소 인근 수백만 시민들은 필사적으로 사고 지역을 벗어나려 하지요. 하지만 방사능 구름이 꽉 막힌 도로에 갇힌 이들을 위협합니다. 혼란과 절박함으로 가득 찬 그 길 위엔, 어린아이도, 몸을 가누기 어려운 노인도, 아들을 사고 현장에 남긴 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어머니도 있습니다.
원전 재난 블록버스터 ‘판도라’가 그려낸 피난 장면… 여러분 기억하시나요? 이제 판도라는 누적 관객 450만을 넘기며 서서히 박스오피스를 떠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남긴 경고와 원전의 위험은 우리 삶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린피스는 영화 판도라가 던진 화두와 원전의 위험을 더 많은 분들께 알리고자 4분 남짓의 짧은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하이퍼 텐션 스펙터클 해설 영상’이라는 별칭으로 공개된 이 영상을 현재까지 무려 5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보셨고, 많은 공감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주신 시민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지난 12월 발행한 두 편의 글을 통해 ‘판도라가 보여주는 현실 속 원전사고의 위험’과 ‘대한민국의 특수한 위험성’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려드렸습니다.
블로그 1편 <판도라 - 키워드로 살펴보는 영화 vs 현실> 다시 보기
블로그 2편 <우리나라 원전 왜 문제일까요? - 대한민국의 원전의 불편한 진실들> 다시 보기
자, 그런데 위 블로그 혹은 영상을 보시면서 아래의 질문들이 떠오르지 않으셨나요?
“이렇게 위험하고 사고 시 그 피해를 감당할 수 없는데,
대체 원전을 왜 계속 지을까?"
“어떡해야 하지? 해결책이 있기는 한 걸까?"
판도라와 함께 보는 그린피스 블로그 마지막 편, 바로 이번 글에선 위험한 원전이 계속 확대되는 이유와 문제의 해결책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지속적 원전 확대 뒤에는 원전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소수의 이익 카르텔이 있습니다. 그 거대한 이권과 드러나지 않는 특성 때문에 일각에서는 ‘핵 마피아’라고도 부르는데요.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지난 2014년, <원전 묵시록>이라는 특별기획을 통해 거대한 이권을 둘러싼 ‘핵 마피아’의 카르텔 구조를 추적 보도한 바 있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원전산업, 과연 그 천문학적 이익은 어디로 돌아갈까요? 원전 산업은 실질적으로는 독과점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요 기기를 거의 독점으로 납품하는 두산중공업과, 과점 형태인 주설비공사를 따내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SK건설과 같은 주요 건설사들이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입니다. 예를 들어, 작년 6월에 건설허가를 받으면서 공사를 시작한 신고리 5,6호기의 경우에는 전체 사업비가 8조 6,254억 원에 달합니다. 이 중에서 주기기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두산중공업이 약 2조 3,000억 원을 가져갑니다. 주설비공사는 삼성물산, 두산중공업, 한화건설로 구성된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따냈고 약 1조 1,775억 원을 가져갑니다. 소수 대기업으로서는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너무 쉬운 시장인 것입니다. 그리고 뇌물, 재취업, 연구비를 통해서 원전 공기업, 원전 당국, 원자력 학계 등이 그 이익을 공유하면서 그들만의 견고한 카르텔이 유지되고 확대되는 것이지요.
핵 마피아의 감춰진 폐해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건 지난 2012년입니다. 끊임없이 터져 나온 원전 비리로 그 심각성이 드러난 건데요. 그린피스는 뉴스타파의 자료를 토대로 지난 2012년 5월부터 2014년 7월까지, 약 2년 2개월 동안 1심 판결에서 유죄가 확정된 총 94건의 원전 비리 사건을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정말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피고인 205명이 받은 누적 형량만 무려 340년 4개월이고, 벌금과 추징금을 합하면 총 136억 8196만 원에 이릅니다! 이 범죄자 중에서는 정부의 차관, 원전 공기업 사장 등 최고위직들부터 말단 직원들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원전 비리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핵 마피아들은 은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실제로 고리 원전에서 영화 판도라와 같은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불과 5년 전인 지난 2012년 2월 9일, 고리 1호기에서 작업자의 실수와 기계 고장이 겹쳐 원자로가 냉각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다행히 전원이 완전히 상실된 후 12분 뒤에 복구가 되었지만, 최악의 경우 후쿠시마와 같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죠.
고리 원전 1호기의 전원 완전 상실 사고는 사고 발생 후 한 달여가 지나서야 한 부산시의원이 식당에서 우연히 소문을 들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죠. 냉각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도 무섭지만, 이 사고가 조직적으로 철저하게 은폐되었다는 사실은 더 충격적입니다.
핵 마피아들의 정보 은폐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뉴스타파는 원자로에서 타고 남은 ‘죽음의 재’로 불리는 폐연료봉 1,699개가 시민들이 모르는 상황에서 전국의 핵발전소에서 대전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으로 반입된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사용후핵연료라고 불리는 폐연료봉은 높은 열과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선을 내뿜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데요. 이 위험천만한 폐기물을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지난 30년간 제대로 된 검증시험조차 거치지 않은 용기에 담아, 과적 제한기준을 넘어서는 다리를 지나며 위험천만하게 운반했습니다. 시민들의 알 권리는 무시됐고,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은 언제나처럼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습니다.
영화 판도라가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원전의 위험성과 핵마피아에 대한 경고뿐이 아닙니다. 판도라는 소수의 권력이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많은 이들에게 불이익을 가져오는 결정을 거듭하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다음의 질문을 남겼습니다.
“우리 정말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요?”
다행히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는 매우 현실적인 대안이 있습니다. 석탄처럼 대기 오염을 발생시키거나 기후변화를 촉진시키지 않고 원전처럼 위험하지 않은 안전하고 깨끗한 “재생가능에너지”말입니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지난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에너지 혁명 보고서를 발표하며, 재생가능에너지가 한국에서도 실현 가능하고 경제성 있는 대안이라는 점을 이미 과학적인 분석 결과를 통해 밝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30~2040년까지 에너지 수요관리와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정책을 통해 원자력발전과 석탄화력발전을 동시에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에너지 전환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점을 제시했습니다.
그린피스뿐 아니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도 기술적인 재생가능에너지 잠재량이 현재 우리나라 전력 설비용량의 무려 88배에 달하며, 2015년 공급된 전력량의 22배에 달한다 발표한 바 있지요.
자, 우리에게 이미 대안이 있습니다. 이제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변화를 요구하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
대한민국은 지금 정치와 경제 민주화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한 격변의 순간에 와 있습니다. 소수의 권력이 이권을 챙기며 정의를 무너트렸고, 시민들은 광장으로 나가 변화를 외치고 있습니다. 소수의 권력과 이권을 위함이 아닌, 우리 모두의 안전과 행복추구를 위한 에너지 시스템 전환 역시 우리가 함께 목소리를 모으고 행동한다면 만들어 갈 수 있을 겁니다.
현실엔 늘 많은 장벽이 존재하지만, 그린피스는 행동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변화를 믿습니다. 저희는 판도라 상자 속 남겨진 희망을 찾아, 앞으로도 시민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함께 행동하며 변화를 이끌어 가겠습니다!
그린피스와 559인 시민이 제기한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 취소 요구 국민소송을 지지해 주시고, 앞으로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글: 장다울 /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선임 기후에너지 캠페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