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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는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4개월 전 저는 후쿠시마현 이타테 마을에서 원전 재난으로 고향을 떠날수 밖에 없었던 미우라 쿠니히로씨를 만났습니다. 이 어르신은 이타테 마을에서 3대가 함께 살았던 행복한 삶을 기억합니다. 일본 전역을 악몽으로 몰아넣었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발생하기 전이었죠. 하지만 바로 그 사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고, 여전히 큰 상실과 절망감 속에 있습니다. 


어느 원전 재난 실향민의 말: ‘철저하게 버려졌습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미우라씨는 피난지시가 해제되면 다시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방사능이 걱정되지만 고향이자 삶의 모든 추억이 담긴 곳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살 수는 없다고 말했죠. 하지만 자식들과 손주들은 함께 돌아오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르신에게 조심스럽게 현재의 마음이 어떤지를 여쭤보았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피난민 미우라 쿠니히로 씨, 곧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양팔이 모두 잘린 기분입니다.


이타테 마을로부터도, 후쿠시마 현으로부터도,
일본 정부로부터도 철저하게 버려졌습니다.


이날 미우라씨와 나눴던 대화와 제가 본 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원전 재앙이 한 사람의 일생을 어떤 절망으로 몰아넣었는지 제 가슴에도 시리게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3월 11일, 바로 오늘은 일본 전역을 악몽으로 몰아넣었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지 6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난해 11월 저는 그린피스 방사선 방호 전문가팀의 일원으로 후쿠시마를 방문해 현지 상황을 조사하고 돌아왔습니다.


벌써 6년… 그러나 아직도 계속되는 원전 재난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재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수만 명의 주민들이 지금도 피난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이미 133조 원에 이르는  사고 피해 비용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이 사고 비용의 대부분은 일본 시민들이 내는 세금과 전기요금에서 충당되고 있고, 사고 인근 지역에는 여전히 두려움과 절망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후쿠시마 현을 방문한 그린피스 방사선 방호 전문가팀은 이타테(Iitate) 마을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래 지도에서 보시듯 이타테는 사고가 난 핵발전소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28~47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거리상으론 상당히 떨어져 있지만, 이곳은 사고 후 바람 방향이 내륙 쪽으로 바뀌었을 때 방사능 구름이 지나가면서 고농도로 피폭이 된 지역입니다. 


그린피스는 사고 직후 이타테 주민들을 즉각 대피시켜야 한다고 경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사고 후 한 달이 지나서야 피난지시를 내리면서 이곳 사람들이 오히려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보다 더 많은 양의 방사선에 피폭되었습니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 지점에서 28-47km 떨어진 이타테 마을

일본 정부는 지난 5년간 위 지도상에 노란색으로 표시된 ‘거주 제한 구역’과 녹색으로 표시된 ‘피난지시 해제 준비 구역’에서 방사성 오염을 제거하는 제염(除染) 작업을 시행해 왔습니다. 특별한 작업은 아닙니다. 민가와 도로 20m 반경 지역 지표면의 오염된 흙을 약 5센티미터가량 걷어내 밀폐된 플라스틱 자루에 담는 방식입니다. 


후쿠시마 현의 75% 이상을 차지하는 산림은 아예 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이 제염 작업을 진행하는 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갔지만,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그린피스 전문가팀이 이 지역의 방사성 오염 실태를 측정한 결과 제염 후에도 대부분 지점에서 일본 정부가 설정한 제염 목표인 시간당 0.23μSv(마이크로시버트)를 상회하는 방사선 수치가 측정되었습니다.


효과는 미미했지만, 제염작업으로 발생한 핵폐기물의 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아래 사진과 같이 수백 개의 핵폐기물 자루가 주택과 농지 인근 노지에 그대로 쌓여 있는 곳이 후쿠시마 현 내에 이미 14만6천 개(2016년 10월 기준)가 넘게 있습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검은 자루만 7백만 개 이상입니다. 보낼 곳도 없이 산처럼 쌓여있는 핵폐기물 앞에 서면 그 누구라도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이렇게 산처럼 쌓여있는 핵폐기물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 후쿠시마에 14만 6천여 곳이 넘습니다

일본 정부의 거짓말: ‘정상으로 돌아왔다’


지난 11월 그린피스 조사 결과, 이타테 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향후 70년 동안 받게 될 공간 방사선의 누적 피폭량이 39~183mSv(밀리시버트)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자연 방사선, 사고 직후 피폭량, 귀환 후 내부 피폭량은 제외한 채 공간 방사선 피폭량만을 고려한 수치입니다) 이는 매주 흉부 X-레이를 찍으며 사는 것과 비슷한 수치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자연 방사선 외에 추가 피폭을 연간 최대 1mSv 이하로 제한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돌아와서 살기에 결코 안전한 상황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이타테 마을을 포함한 여러 지역의 피난지시를 이달 말로 해제할 계획입니다. 피난지시가 해제되면 피난민들이 매달 받고 있던 주거 지원금도 1년 뒤 끊기게 됩니다. 결국,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없는 피난민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안전하지 않은 곳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됩니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인권문제입니다. 


돌아가는 것은 결국 주민 개개인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고,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는 주거 지원을 지속해야 합니다. 일본 정부의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인 결정은 피난민들을 절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자인 엄마들은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결정에 맞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우리는 후쿠시마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후쿠시마의 비극은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은 국가 면적 대비 핵발전 밀집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고, 현재 가동 중인 핵발전소 단지 중에서 규모로 세계 1위, 3위, 4위, 7위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작년 9월 12일 핵발전소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과 이후 최근까지도 이어진 590여 차례가 넘는 여진은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도 지진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위험한 핵발전으로부터 단계적으로 벗어나는 에너지 전환은 이미 후쿠시마 사고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사고 이후에는 더욱 가속화됐습니다. 독일에 이어, 최근 가까운 나라 대만도 2025년까지 에너지 전환 정책을 통해 단계적 탈핵을 추진하기로 법에 명시했습니다. 선진국 중 매우 드물게 현재 핵발전 규모의 대폭 증대를 계획하고 있는 한국도 이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해야 합니다. 안전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지난 2013년 한국을 찾은 그린피스의 레인보우워리어 호가 고리원전 인근에서 원전 위험을 알리는 메시지를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에너지 전환의 시작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입니다. 그린피스와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560인 국민소송단은 신고리 5, 6호기 건설 허가의 위법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지난해 9월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더 많은 시민들이 힘을 모아 함께 요구한다면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은 이룰 수 있는 목표입니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2030~2040년까지 단계적인 탈핵이 가능합니다.


해를 거듭할 수록 후쿠시마는 잊혀질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린피스는 계속해서 후쿠시마의 현실과 주민들의 삶을 돌아보고, 기록하고, 또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미래를 보장받도록, 여러분도 잊지말아주세요. 후쿠시마를, 그리고 한국의 현실을.


신고리 5, 6호기 건설 허가 취소 서명하기 

글: 장다울 선임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그린피스 방사선 방호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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