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국민소송단' 117번째 원고 고이나님의 첫 재판 참관기
"의견 있습니다. 심사를 중단하십시오.
이게 표결해서 될 일입니까?
60년 동안 안전하다고 누가 얘기할 수 있습니까?
380만 명의 안전을 60년 동안 누가 책임집니까?
일단 해놓고 보자고, 전 세계가 아무도 하고 있지 않은 짓을
우리가 지금 한다고!"
2016년 6월 23일 오후 7시 제 57회 원자력안전위원회의에서 밀양 주민 이계삼 선생님이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확정 지어지는 상황에서 하신 말씀이다. 이어 밀양 할매가 호소하셨고, 두 분 모두 회의장에서 퇴장당하셨다.
오후 7시 25분 "전 하여튼 찬성합니다"라는 위원장의 발언으로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가 났다. 처참한 심정으로 회의장을 나서는데 저 멀리 망연자실하게 앉아계신 아까 그 할매가 보였다. "할머니, 할머니.. 좀 쉬셔요. 이제는 저희가 열심히 할게요." 안아드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씀드리고 나왔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 과정이 충격이었는지 한동안 무의식으로 지내다가 정신을 차리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중 8월에 그린피스에서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 국민 소송단"을 모집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오… 이거야 이거. 길이 아예 없지는 않구나”
그 당시 내가 원고로 참여한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취소소송이 8번째 재판을 앞두고 있었기에 그린피스에서 진행하는 소송 소식이 가뭄 속 단비처럼 반가웠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식구 셋이 모여 앉아 위임장을 쓰고, 사진을 찍어 보냈고 그렇게 우리는 또 한 번 원안위와 법정 공방을 시작했다.
탈핵을 향한 나의 여정은 2013년 가을부터였다. 후쿠시마 사고로 방사능의 위험성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내 아이 먹거리에 특별히 신중을 기했었는데, 방사능이 대체 어떤 것이기에 피해야 하는지 알아보다가 ‘핵발전소’까지 가게 되었다. 도대체 발전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사람 입에 들어가는 것까지 조심해야 하나 싶어 한 달 정도 핵발전소와 방사능에 대해 공부했다. 그리고 이 위험성을 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나같이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종종 관련 주제의 기자회견과 토론회 소식도 접하게 되었는데, 밖으로 나가기엔 아이가 많이 어렸기에 세 돌만 지나면 외부활동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온라인에서 열심히 핵발전소의 위험에 대해 알렸다.
그렇게 지내다 세 돌이 지난 2015년 1월, 한창 논쟁 중이었던 월성 1호기 수명연장 문제를 접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내 아이와 함께 탈핵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 후로 수많은 기자회견, 토론회, 세미나 등 핵발전소나 방사능과 관계된 현장을 찾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외교부 앞에서 아이와 둘이 '1인 시위'를 했다.
처음엔 서울에서만 활동하다가 같은 해 가을, 세 차례에 걸쳐 영덕에 내려가 영덕 핵발전소 건설 찬반 주민투표를 도왔고, 여건이 되는 한 경주, 부산, 울산 등 탈핵의 현장에서도 마음을 모았다. 그리고 늘 내 옆엔 내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최고의 파트너인 내 아이와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 취소 소송에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렇게 첫 재판 날짜가 다가오길 기다리던 중에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을 공론화위원회와 시민배심원단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났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서 6월 29일에 첫 재판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일 재판 과정에서 건설이 불법적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그 무엇보다 결정적인 판단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재판이 더욱 기대됐다. 과연 재판부에서는 소송을 어떻게 볼지, 떨리는 마음으로 첫 재판에 참석했다.
재판에 앞서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과 퍼포먼스가 있었다. 첫 재판인 만큼 많은 분들이 오셨고, 이런 열정과 정성이 모인다면 향후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이번 재판을 맡으신 두 변호사님은 존경하고 또 신뢰하는 분들이라 변호사님의 말씀에 더욱 힘이 났고, 3월에 그린피스에서 진행한 ‘국민소송단 만남의 자리’에서 뵌 분들도 계셔서 무척 반갑고 감격스러웠다.
법정은 가득 찼고, 양측의 변론이 오갔다. 그런데 피고 측 변론의 대부분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는 데다가, 타당하지 않은 이유들을 들면서 무조건 원전이 안전하다고 우기는 모습이었다.
반면에 담당 판사는 이 사건에 대해 많이 알아보고 오셨는지 양측 변론을 차분히 끝까지 다 들으시고, 이해하시고 그에 맞는 반응을 보이셨다. 판사님이 상당히 검토를 많이 하고 오셨다는 인상을 받았고, 쟁점을 조목조목 정리해주시는 모습에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실, 두 차례(56, 57회)에 걸쳐 논의된 신고리 5, 6호기 건설 허가 원안위 회의록만 보더라도 얼마나 그 결정이 비합리적이었는지, 또 이런 지난한 싸움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졸속이었는지 드러날 텐데. 그럼에도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 결정이 났기 때문에, 이 재판에서 최선을 다해 승소해서 건설허가가 취소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대한민국의 뜨거운 감자가 된 신고리 5, 6호기 건설 찬반 논쟁은 우리나라가 탈원전 국가로 가는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찬성 혹은 반대를 하는 사람들 모두가 대한민국이라는 한배를 탄 국민이기에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무조건 청와대와 국회에만 그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이 대한민국 핵발전소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알아야 하고, 그 정보를 통해 국민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선적으로 신고리 5, 6호기 건설에 관심을 갖고 원고로 참여한 ‘560 국민소송단’이 소송 및 원전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보다 많은 국민에게 전하고 이해를 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취소소송에서도 열두 차례의 재판에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했었는데, 이번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에서도 가능한 한 모든 재판에 참석할 생각이다. 법정에 앉아있으면 소송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듯한 뿌듯함과 나의 소송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하는 기쁨도 느낄 수 있다. 그 느낌을 더 많은 분들과 현장에서 함께 느끼고 싶다.
소송에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큰 일이지만 그저 참여로 끝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한다면, 그 노력과 정성들이 모여 우리 소송단이 바라는 미래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글: 고이나/ ‘560국민소송단’ 117번째 원고
“쓰리마일 섬 핵발전소 사고가 난 1979년 겨울에 태어났고,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난 1986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 2011년에 임신과 출산을 했다”
* 이 글은 단계적 탈핵을 위한 '560국민소송단' 홈페이지에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