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전 세계가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그러나 국내 산업계는 상향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반대하며 온실가스 감축으로 한국이 국제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정말 온실가스 감축으로 국가 경쟁력이 저하될까요? 실제 세계 시장의 흐름을 살펴본 결과, 국내 산업계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죠.
지난 6월 28일 정부가 <2030 국가 온실가스감축 기본로드맵 수정안>을 발표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은 2015년 전 세계 195개국이 모여 체결한 파리기후협정에서 우리나라가 줄이기로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분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수정안이 의미가 있는 것은 기존에 명시돼 있던 온실가스 해외 감축분 중 일정 부분을 국내 감축분으로 전환했기 때문입니다. 전체 감축분의 3분의1 가까이를 차지했던 해외 감축분은 그동안 실행 가능성이 낮고 감축 방식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늘어난 국내 감축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대응은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아쉬움을 감추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산업계의 반응입니다. 산업계는 '온실가스 감축으로 한국이 국제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 말합니다.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의 방향을 논의하는 토론회나 세미나에 가면 산업계 측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향상되면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량이 늘어나면서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이것이 곧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주장이죠. 특히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산업 부문인 철강, 시멘트 및 발전 업계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더욱 큽니다.
그런데 정말 온실가스 감축으로 국가 경쟁력이 저하될까요?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한 이야기지만, 실제 세계 시장의 흐름은 전혀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죠.
세계적인 통신사 블룸버그가 매년 발표하는 신에너지전망(New Energy Outlook)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분야에 11조 달러(약 1경2300조 원)가 투자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중 무려 86%가 태양광과 풍력을 포함한 무탄소(Zero Carbon) 에너지원에 투자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재생가능에너지의 보급이 확대되고 기술이 개발됨에 따라 발전 단가는 더욱 싸질 전망입니다. 2050년 기준 태양광의 발전 단가는 현재보다 무려 71%, 육상 풍력의 발전 단가는 현재의 절반 이상(58%)으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더불어 전 세계 전력 생산 시장에서 재생가능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더 높아질 예정입니다. 반면 석탄을 포함한 화석연료의 비중은 현재(2017년 기준)의 63%에서 2050년에는 절반 이상 떨어진 29%로 줄어들게 되죠. 즉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재생가능에너지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화석연료 시장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업이 계속해서 화석연료에 의존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탄소배출권거래제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와 다양한 환경 규제는 앞으로 더 강화되고 화석연료의 경제성은 계속해서 악화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받게 될 국제정치 차원에서의 윤리적인 비난과 압박 그리고 이에 따른 기업 이미지의 악화는 기업의 수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재생가능에너지는 나날이 저렴해지고 있으며,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생가능에너지의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수익성 증가는 블룸버그, REN21 등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에너지 관련 보고서를 통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재생가능에너지가 화석연료보다 더 큰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글로벌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요? 그들 역시 우리나라 산업계처럼 온실가스 감축이 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고 주장할까요?
사실 전 세계 산업계의 대응은 한국과 180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대응이 가져다줄 이익을 빠르게 읽어 내고, 온실가스 감축을 통해 지구뿐만 아니라 비즈니스까지 살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죠.
일례로 애플, 구글, 페이스북, 이베이, 코카콜라, 이케아 등 세계 각 분야의 시장을 이끌어 가는 이 기업들이 주요 멤버로 가입한 모임, RE100이 있습니다. RE100은 사업에 사용되는 전력을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사용하겠다고 약속한 기업들의 모임입니다. 2018년 현재 무려 137개의 세계적 다국적 기업들이 이 모임에 소속돼 있죠. 이들은 장기적인 기업 이익을 따져보았을 때, 재생가능에너지의 사용이 더 나은 경제성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고 믿습니다.
구글의 기술 인프라 부서 선임 부사장인 우르스 회즐(Urs Hölzle)은 RE100의 연례 보고서(2017)를 통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건물 중 전기를 가장 많이 잡아먹는 곳 중 하나인 데이터 센터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전기비는 데이터 센터 운영에 드는 비용에서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다. 재생가능에너지가 장기적으로 제공하는 안정적인 가격은 에너지 가격 변동 폭을 막을 수 있다."
실제로 또 다른 RE100 회원 기업 중 한 곳인 H&M은 스웨덴에 위치한 데이터 센터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함으로써 매년 1만5000 달러의 재정을 절약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RE100뿐만이 아닙니다. 항공, 유통, 미디어 등 다양한 사업을 하는 영국의 버진그룹(Virgine Group)과 세계 최대 규모의 국부 펀드인 노르웨이 국부 펀드를 운용하는 투자회사 스토어브랜드(Storebrand)가 속한 탈석탄동맹이라는 모임도 있습니다. 이들은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석탄의 사용을 종식하고 기후변화 대응에 맞설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처럼 국외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의무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심지어 이를 새로운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으며 시대의 흐름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럼 한국은 온실가스 감축에 불평하면서 계속 이렇게 세계 흐름에 뒤처지고만 있어야 할까요? 아주 다행히도 한국의 산업계 내에서도 선도적인 기업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삼성전자는 동아시아 전자 업계 최초로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2020년까지 중국과 유럽, 미국에 위치한 모든 삼성 공장에서 사용되는 전력을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었죠.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2020년까지 삼성전자의 주요 반도체 공장이 위치한 지역에 6만3000 제곱미터 규모의 태양광과 지열발전을 직접 설치하고, 자체적인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을 늘린다고 발표했습니다. 향후 재생가능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국내 정책 인프라가 마련되면 추가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세계적인 재생가능에너지 연구 기관인 IRENA에 따르면 기업이 사용하는 전기는 전 세계 최종 전력 소비의 3분의2를 차지합니다. 산업계가 화석연료 사용을 종식하고, 재생가능에너지를 중심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앞장서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지금까지의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기후 악당'이라고 불릴 만큼 턱없이 부족했으며, 문재인정부 이후 기후변화 대응에 의지를 보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우 부족하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충분하지 못한 기후변화 대응에는 산업계의 거센 반발이 큰 요인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이제는 한국의 산업계도 기후변화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때입니다. 산업계가 기후변화 대응을 미루고, 정부의 계획에 저항할수록, 시민의 고통은 더욱 커집니다. 산업계의 눈앞에 놓인 단기적인 이익만을 위해, 우리의 미래를 담보로 잡힐 수는 없습니다.
나아가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선점해야만 국제적인 산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장기적인 시각에서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수익성을 따져야겠죠. 정부 또한 산업계가 변화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의 산업계도 기후변화에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언제까지 단기적인 이익 앞에 앓는 소리만 하며 세계적인 변화의 바람을 피해 숨어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글: 손민우 기후에너지 캠페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