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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한 원전 건설 허가,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 14일 그린피스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대상으로 제기한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취소 소송의 1심 판결이 2년 만에 나왔습니다. 재판부는 원전 건설 허가 과정의 위법을 인정했지만, 건설을 취소할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건설 중단이 ‘공공복리'에 부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법을 어겨도 처벌 받는 이는 없는 판결. 이 위법한 원전 건설 허가는 누구의 책임일까요?


'법은 어겼지만, 무를 수는 없다'는 판결


지난 14일 재판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 취소소송에 대해 '사정판결'을 내렸습니다. 사정판결은 원고의 청구가 인정돼도 이를 이행하는 것이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청구를 기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 과정의 위법성은 인정하지만,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 건설 허가를 취소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상당수의 법조인은 이번 판결이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합니다. 원칙적으로는 행정 처분이 위법하다면 그 처분을 취소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죠. 하지만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을 중단할 수 없다고 판결한 재판부,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재판부가 신고리 5‧6호기 원전 건설 중단으로 예상한 손실액은 약 1조원입니다. 1천 600여개에 이르는 관련 사업체와 지역 경제에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고려해 추산한 수치입니다. 1조원이라니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원전 건설 중단으로 이런 손실이 발생한다고 하니 계속해서 짓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법하게 건설 허가를 따 낸 신고리 5‧6호기를 계속 짓는다면 우리는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요? 


지난 14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그린피스 활동가들과 560 소송단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 취소소송 사정 판결에 유감을 표하고 있다 / 그린피스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과정에서 저지른 두 가지 위법 사항


그린피스와 원고 측 소송단은 재판을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와 관련한 총 13가지 위법성 쟁점을 제기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중 2개 사항에 대해 위법을 인정했습니다.


첫째, 건설 허가 의결 과정에 자격이 없는 2명의 원자력안전위원이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이 위원들은 위원 위촉일로부터 3년 이내 한국수력원자력이나 관련 단체의 사업을 수행한 적이 있어, 그렇지 않아야 한다는 위원 자격 요건을 벗어났습니다. 재판부는 결격자가 의결에 참여한 이상, 건설 허가 처분도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둘째, 원전 건설허가 신청 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인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서 특정 내용의 기재가 누락됐다는 것입니다. 이 평가서는 원전을 운영하거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방사선 영향을 보는 자료입니다. 신고리 5‧6호기의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는 '사고로 인한 영향' 세부 사항들에 대한 기재가 누락됐습니다.


부산, 울산, 경남 주민 약 169만명을 상대로 반드시 해야 하는 주민의견수렴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현재 해당 주민들은 다수호기가 밀집된 지역에서 중대 사고 시 그 영향이 어떠한지,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정부의 비상계획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전제로 한 주민 의견도 반영되지 않은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공공복리인가?


지난해 국정감사를 통해 공개된 한국전력의 <균등화 발전원가 해외사례 조사 및 시사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최대 2492조원의 피해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는 건설 허가 취소에 따른 예상 손실액인 1조원의 2000배,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현재까지 투입된 비용 200조원의 10배가 넘는 비용입니다.


눈앞의 손실을 막기 위해 더 큰 피해를 감당하겠다는 재판부의 결정은 하나의 완고한 전제 하에 내려졌습니다. 원전 밀집 지역에는 지진 위험성이 없거나, 지진이 나도 원전 지역에서는 사고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을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요?


신고리 5‧6호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건설된 모든 원전이 중대 사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가동되고 있습니다. 원전 사고에 따른 피해 위험성에는 우리 국민 모두가 노출돼 있습니다. 원전이 초래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위험이 공공복리와 상치된다면 재판부가 판결에 기준으로 한 공공복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법원은 금전적 손실을 이유로 원전의 건설 취소를 불허했지만, 과연 그 손실을 주민의 안전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재판장은 판결 말미에 사실상 피고 원안위의 패소이며, 이에 재판 비용을 피고 측에서 지급하라는 주문으로 판결 요지 낭독을 마쳤습니다.


국민 안전을 무시한 1심 판결에 항소로 답하다


지난 20일 그린피스 소송 대리인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김영희, 김석연 변호사는 재판부의 신고리 5‧6호기 건설집행정지처분 기각과 1심 판결에 대해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그린피스와 559명의 국민소송단은 2심, 그리고 대법원의 판결이 이뤄질 때까지 법정 다툼을 멈추지 않을 계획입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는 위원 자격이 없는 결격자에 의해 결정됐고, 다수호기 밀집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중대 사고 대비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원전 사고 시 인근 지역을 비롯한 우리나라 전체에 미칠 수 있는 막대한 피해에 전혀 준비되지 않은 위법한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상투적인 말이지만 실제 그렇습니다. 경주 대지진이 있던 2016년 9월 12일 시작된 소송은 1심 판결까지 886일이 걸렸고, 총 14회의 재판 동안 방대한 자료가 법원에 제출됐습니다. 다시 2심을 시작하면 판결까지 앞으로 최소 1년여가 더 소요될 것입니다. 


위법한 허가에 책임질 사람은 남기지 않은 이 모순적인 재판부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번 소송은 탈핵 시민운동의 역사상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시민들이 원전 건설 허가의 부당함에 대해 사법적 문제를 제기한 국내 첫 사례이며, 시민들의 요구로 재판부가 원전 건설 허가의 위법성을 인정한 최초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그것을 바로 세우려 애쓰지 않을 때 더욱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입니다. 재판부의 사정판결은 건설 허가의 위법을 저지른 원안위에게는 면죄부이지만, 원전 인근 지역과 잠재적 피해자인 국민 모두에게는 생명과 안전의 문제입니다.


이전의 잘못된 결정들을 바로 잡을 새로운 법정 다툼의 시작, 국민 권리와 미래 세대의 평화를 위해 이 싸움은 계속돼야 합니다. 2심 항소 그리고 대법원의 판결까지 여러분의 뜨거운 지지와 참여가 필요합니다.


그린피스와 559명의 국민 소송단을 끝까지 지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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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마리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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