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후쿠시마 현지 조사, 그 첫 번째 이야기
복도(福島). 행운의 섬이란 뜻의 후쿠시마 지명입니다. 후쿠시마에서 행운이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단어가 됐습니다. 울창한 숲과 곡식이 익어 가는 논밭을 검은 피라미드가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2019년 10월 현지 조사를 다녀온 장마리 캠페이너가 3차례에 걸쳐 후쿠시마 방문기를 전합니다.
복도(福島). 행운의 섬이란 뜻의 후쿠시마 지명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을 생각하면 참 어울리는 이름이다. 산과 바다, 드넓은 평야까지. 자연이 허락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받은 지역이었다. 이젠 울창한 숲과 곡식이 익어 가는 논밭을 검은 피라미드가 가득 메우고 있다. 어쩌면 행운의 섬이라는 이름은 후쿠시마 원전 건설 전까지만 유효했던 것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후쿠시마 원전이 건설될 때부터 이런 대형 사고는 이미 예견되어 있던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후쿠시마의 10월은 서울보다 훨씬 추웠다. 열차를 2번 갈아타고 5시간 만에 후쿠시마역에 도착했다. 공항과 역 안에는 2020 도쿄 올림픽 대형 광고판이 걸려 있었다. 평일 퇴근 시간인데도 대형 백화점과 붙어 있는 후쿠시마역 안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도로는 서울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5만여 가구의 정전, 90명 이상의 사상, 1천만 명 이상의 피난민을 낸 태풍 하기비스가 거쳐 간 도시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퇴근길 직장 맘들은 장바구니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지나가고,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사람 사는 곳이니 다르지 않겠거니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일상적인 모습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린피스는 지난 몇 년간 후쿠시마 시티에서 발견되는 핫 스폿에 대해 꾸준히 일본 정부 관계자들에게 알려 왔다. 실제 후쿠시마시티는 사고 이후 일본 정부가 최우선으로 제염 작업을 진행한 곳이기도 하다. 불과 20km 밖에 접근 제한 구역인 나미에나 오보리 같은 방사선 고선량 지역이 위치하고 있다. 끔찍한 재앙과 평범한 일상이 한 시공간에 있는 눈앞의 광경을 어찌 소화할지 모른 채 숙소로 향했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 조사위원회는 2012년 7월 보고서에서 후쿠시마 사고가 인재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사고를 막기 위한 많은 기회가 있었으나, 도쿄전력이 안전 조치를 취하는 데 실패하거나 고의로 연기했다고 덧붙였다. 2002년 6월 정부 패널의 지질학자들이 향후 30년 안에 규모 8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20%로 추정하고 당시 일본 원자력 규제기구 등에 쓰나미 시뮬레이션을 요청했으나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던 사실이 하나의 근거였다. 또 2008년 도쿄전력 기술자들이 15.7 미터의 쓰나미 발생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공론화하였으나 비용 문제 등으로 후속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도 제시했다.
올해 조사는 햇수로 9년째, 횟수로는 31번째 현지 조사였다. 이번 현지 조사를 위한 특별 후원 덕분에 조사 지역을 더 확대할 수 있었다. 다양한 지역인 만큼 샘플링도 늘었다. 항공 조사를 위해 새로운 데이터 웹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도 마련했다. 조사 팀은 지난해 방문했던 접근 제한 구역을 중심으로 오염수와 직접 연관된 강 유역을 두 곳 더 방문하고 샘플링을 할 계획이었다. 일본 정부의 제염 타깃 지역인 칸노 씨 집과 방사선 오염 상황을 비교해볼 근접 지역도 확보해 둔 상황이었다.
후쿠시마 시티에서 보낸 이틀간 종일 비가 내렸다. 제염토 봉투가 유실된 고리야마 지역을 방문하려고 했지만, 연락이 닿는 지역 연구소 모두 큰 타격을 입었다고 전해 왔다. 처마와 다리가 무너져 위험하니 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제염토 봉투 유실 규모는 현지에서도 파악이 어려웠지만, 숲을 흠뻑 적신 후 내려온 빗물에 땅과 길이 모두 재오염되었을 것이 쉽게 예상됐다. 모쪼록 서로 조심하라는 안부만 나눴다. 고리야마의 입구쯤 위치한 모토미야를 지나치며 주민들의 피해 규모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후쿠시마 삼일 째, 태풍 하기비스로 여정이 지연된 팀원들까지 모두 도착해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그린피스 방사선 방호 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된 현지 조사 팀의 구성은 다양했다. 숀 버니를 비롯해 체르노빌에서 여러 번 조사를 진행한 베테랑 연구원부터 나처럼 처음 후쿠시마를 방문해 조사에 참여하는 캠페이너까지. 국가, 연령, 경험 수준이 모두 달랐지만 우리의 바람은 하나였다. 부디 지난해보다 더 오염된 지역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바람과 달리 후쿠시마시티에서 나미에로 이동하는 차 안의 분위기는 다소 무거웠다. 우리가 이전에 발견했던 핫 스폿 지역은 사고 전 수치로 복구되었지만, 새로운 고선량 오염 지점도 다수 파악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걱정 어린 메시지들이 와 있다. 후쿠시마 조사에 참여하는 내가 가장 자주 받은 질문은 겁나지 않냐는 것이었다. 30년 넘게 반핵 운동과 방사선 방호 활동을 지속해 온 전문가들과 함께 있고, 우리의 안전 역시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가장 적절한 보호 아래 있다는 건 모두가 알았다. 다만, 공기 중에 떠다니는 세슘 미세 입자가 내부 피폭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걱정이었다. 나는 겁나지 않았다. 현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모르고 떠드는 것이 더 겁나는 일이다. 그리고 다짐했다. 아주 만약에라도 내가 피폭 피해를 입는다면 나는 내 몸과 병을 증거로 탈원전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창밖으로 끝없이 빗줄기가 이어지는 동안 차 안의 선량계 숫자도 높아졌다.
이제 우리는 접근 제한 구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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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마리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캠페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