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이 석탄화력발전을 대체할 유일한 에너지원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과연 원전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뿐인 대안일까요?
지난 6월에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추가 상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나라 전기 생산의 약 37%를 차지하는 석탄화력발전을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 시점에서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을 현재 재생가능에너지보다 발전단가가 저렴한 원자력발전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한편 정부는 체코 원전 수주 활동에 참가하고 원전 수출에 관해 미국과 협력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정부가 결국 탈원전으로 탄소중립이 불가능한 것을 자인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죠.
원전과 재생가능에너지에 관해 많은 논쟁이 오가는 지금, 원전이 탄소중립에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4월,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86.7%가 현재의 기후 변화 상황을 기후위기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62.1%는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동의한다고 밝혔습니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016년 체결한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라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 이상 감축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기술력으로 원전 1기를 건설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0년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시점에서 빠르게 원전을 건설하기 시작해도,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없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전기 생산의 37%에 해당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원전으로 대체하려면 지금 가동 중인 원전 24기를 2배 이상으로 늘려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원전 밀집도 세계 1위, 개별 원전부지별 밀집도 및 규모 세계 1위, 원전 규모 대비 30km 반경 인구수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원전을 추가하는 것은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고보다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소형 모듈 원전(SMR)이란 차세대 기술을 실현하면 기존에 있던 안전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SMR은 상용화는커녕 실증도 되지 않은 기술입니다. 현재 속도로 최대한 빨리 개발해도 2035년 후에야 상용화가 가능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되려 인류가 안전하게 보관할 수 없는 핵폐기물 생산을 더 늘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또한 SMR은 미국과 독일 등 많은 국가가 40년 넘게 수십조 원을 투자했지만, 경제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300MW급의 소형 원자로를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지만 경제성과 안전성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입니다. SMR은 플라스틱처럼 대량으로 생산해 생산단가를 급격히 낮추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가 매우 어려운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핵잠수함을 제작하던 당대 최고의 기술력으로 소형 모듈 원전 상용화를 시도하던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는 경제성과 안전성 확보를 위해 수차례 설계를 변경했지만 이에 따른 공기 지연 등의 이유로 결국 파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석탄화력발전을 어떤 에너지원으로 대체해야 할까요? 그 답은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입니다.
재생가능에너지는 많은 부지를 차지하면서 날씨와 계절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등 변동성이 심하고 효율이 낮아 발전단가가 비싸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점은 이미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태양광은 이미 대량 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단가를 비약적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태양광 발전소의 핵심 부품인 태양광 모듈의 가격은 지난 10년간 약 10분의 1 수준까지 낮아졌습니다. 국내 태양광 발전 비용은 지난 4년 새 17.3% 하락했으며, 2030년에는 지금보다 30% 이상 더 싸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태양전지 기술도 발전을 거듭해 효율이 꾸준히 올라가고 있습니다. 발전 효율이 높아지면 더 적은 면적에서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게 되어 태양광 설치 면적을 줄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태양광과 풍력 발전 시설을 빠른 속도로 대폭 늘리고 대형 배터리 등 전기 저장 장치를 이용해 전력망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 (IEA)는 작년 10월 “태양광 발전이 전력 생산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했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영국, 독일 등 유럽의 여러 국가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등은 이미 전력 생산의 30~50%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이었던 미국의 경우에도 2020년 신규 전력시설 39.7GW 중 태양광, 풍력, 배터리 저장 에너지는 31.9GW로 전체 신규 설비의 80%를 차지합니다.
전체 국토 면적의 약 64%가 산림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도 가능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이 발간한 ‘2016 신재생에너지백서’에 따르면, 국내 일사량 및 풍량 등 자연조건과 이용 가능한 국토 면적을 고려했을 때 연간 생산 가능한 재생가능에너지 양은 약 12,167TWh에 이릅니다. 이는 지리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산지, 철도, 도로, 기타 설비제한구역(문화재보호구역, 환경보호지역 등) 등을 제외한 지역에서 생산 가능한 전력량을 계산한 것으로, 우리나라 연간 전력 소비량의 20배 이상이 되는 발전량입니다.
지난 40년간 원전을 연구한 영국의 환경운동가 조나단 포리트(Jonathon Porritt)는 “1974년부터 원전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분석을 해본 결과, 우리가 직면한 문제(기후위기)를 해결할 수단으로 원자력이 적절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며, “진실은 간단하다. 우리는 원자력을 21세기가 되면 점점 사라지게 될 20세기 기술 가운데 하나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탄소를 절감하는 데 있어 원자력이 역사적으로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1960년대 이래 원자력은 18,000원자로년에 해당하는 전기를 생산했고, 그 과정에서 석탄화력발전보다 훨씬 적은 탄소를 배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으로 생성되는 핵폐기물은 기후위기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위험을 초래합니다. 원전에서 나오는 고준위 핵폐기물은 1g만으로도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낼 정도로 독성이 강하고, 사람이 1m 근접 시 10~20초면 즉사하는 수준의 방사성 물질을 방출합니다. 이런 방사능이 사라지는 데는 약 10만 년이나 걸립니다. 그러나 인류는 아직 원전 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임시저장 시설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원전부지 내 폐기물 보관소는 98% 이상 가득 차 있어, 더 이상의 원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기후위기라는 전 지구적 위기의 해법으로 원전을 선택하는 것은 미래세대에게 더 큰 위험과 책임을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위험으로 다른 위험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2086년까지만 원전을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차기 정부는 탈원전 정책 기조를 유지 및 확대하고, 원자력 대신 재생가능에너지로 신속히 전환하여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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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태영 그린피스 커뮤니케이션 오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