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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기후 정책,
그린피스가 평가해 봤더니?

새 정부의 기후 국정 과제를 읽는 일곱 가지 포인트


윤석열 정부의 기후 정책과 비전은 기후 재앙을 막기에 충분한 수준일까요? 그린피스가 110개 국정 과제에서 7개 핵심 내용을 추려 봤습니다.


5월 10일 제20 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과 함께 새 정부가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윤 대통령과 새 행정부에게는 많은 과제들이 놓여 있겠죠? 기후위기는 이 번 정부가 반드시 대응해야 할 최우선 국정 과제가 되어야 할 텐데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기성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으로 공정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둘째, 기후위기는 모든 인류에게 닥친 보편적 위기로 인류가 모두 함께 대응해야 할 공통 과제라는 겁니다. 즉, 기후위기 대응이 인류 공동의 과제라는 것은 ‘상식’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난 5월 3일 대통령 인수위가 발표한 110개 국정 과제에서 기후 정책은 어떻게 다뤄졌을까요? 여러분들이 꼭 알아야 할 7가지 핵심을 정리해 봤습니다.


1. 국정 철학과 목표에서 뒷전으로 밀린 기후위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선거 기간 10대 공약 중 하나로 기후위기 대응을 약속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린피스와 함께 전국 1만 4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보낸 기후 편지에 답장을 쓰고 “탄소를 유발하는 에너지를 크게 감축하고 무탄소 에너지의 비중을 높이겠다. 대한민국의 과학 역량으로 세계인들에게 모범이 되는 에너지 모델을 만들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후보 시절 이 같은 의지 표명과 달리 110대 차기 국정 과제에서 기후위기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국정 과제는 3가지 국정 철학과 6개 국정 목표로 나뉘고 다시 20개 약속, 110개 과제로 이뤄져 있습니다. 기후위기 관련 공약은 16번째 약속 ‘탄소중립 실현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겠습니다” 부분에 담겨 있습니다. 순서로만 보면 국정 우선 과제에서 차순위도 아니고 차차순위 정도인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가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줄 경제∙외교∙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할 때 새 정부의 기후 인식은 많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2019년 9월 청소년들이 서울 종로구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기후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2. 탄소중립을 위한 수단으로 이번에도 ‘기승전원전’


예상했던 것처럼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에도 원전을 꼭 끼워 넣거나 끝부분에 원전으로 수렴하는 ‘기승전원전’ 식의 인식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라는 제1국정 목표에서 “코로나19로 입은 국민들의 피해를 온전히 치유하고, 부동산·원전 등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책의 ‘원칙’을 다시 세우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국정 과제 3번째 약속 사항으로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을 조속 재개하고 안전성을 전제로 운영 허가 만료 원전의 계속 운전 등으로 2030년 원전 비중을 상향하겠다”고 밝힙니다. 그러나 위험을 증가시키는 노후 원전 수명 연장과 신규 원전 건설로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기대는 오산입니다. 저장 포화 상태에 이르러 해결책이 없는 핵폐기물 문제를 고려하면 원전은 시급한 기후위기 대응의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세계 원전 밀집도 1위인 우리나라의 원전은 울진 산불과 같은 기후 재난에 더욱 취약합니다.


3. 시급한 재생에너지 확대, 어디 있나?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내용은 정말 찾아보기 힘든데요. 21번째 과제 “에너지안보 확립과 에너지 新산업‧新시장 창출”에 일부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과제 목표로 “ 에너지수요관리 혁신과 함께 재생e, 수소 등 다양한 에너지원의 확대를 통해 에너지자급률 제고 및 산업‧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활용”하겠다고 언급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또 “원전, 재생에너지 조화 등을 고려해 에너지믹스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에너지‧산업‧수송부문 NDC 달성방안 수정”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선거 기간 2030년 에너지 믹스를 원자력 비중을 30~35% 가량으로 늘리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5% 정도로 기존 목표보다 낮추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기후위기뿐만 아니라 RE100이나 탄소국경세*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크게 늘어나야 합니다. 이웃 국가 일본에서는 소니와 같은 기업들이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정부의 재생에너지 목표를 상향하라고 요구한 점을 현 정부도 명심하기 바랍니다.


*탄소 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강한 국가로 상품·서비스를 수출할 때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세 제도를 기존안보다 1년 앞당겨 2025년부터 시행하고 적용 대상도 늘릴 전망이다.


4. 기후위기는 곧 심각한 경제 위기라는 인식 부족


기후위기는 곧 경제 위기입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곧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탄소국경세나 RE100 등으로 한국의 기업들이 곧바로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EU는 최근보다 강화된 탄소국경세 수정안을 내놓았습니다. 탄소국경세의 대상이 되는 품목과 적용 범위를 확대한 것입니다. 실행 시기도 기존 2026년에서 2025년으로 앞당겼습니다. 이미 한국전력은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고 석탄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으로 인해 세계 최대 규모인 노르웨이 국부 펀드로부터 투자 블랙리스트에 오른지 오래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재보험사 스위스리에서도 기후위기로 2048년까지 한국의 GDP 손실이 약 13%까지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지난해 텍사스 이상 한파로 인해 삼성 반도체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약 4천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기후위기는 곧 경제 위기라는 상황은 점점 상식이 되어가고 있지만 ‘상식’을 내세운 새 정부의 국정 과제에는 이 같은 언급이 실종되어 있습니다.


2020년 1월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금융 지원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5. 실효성 없는 배출권 재조정 필요


정책 중에 그나마 다소 긍정적인 부분은 배출권 거래 제도를 조정해 탄소국경세 등에 대응하겠다는 의지입니다. 86번 과제 “과학적인 탄소중립 이행방안 마련으로 녹색경제 전환”에서 배출권 거래제 유상 할당 확대안을 검토하고, 늘어난 수입은 기업의 감축 활동을 지원하는 선순환 체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배출권 거래제**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를 못하고 있습니다. 워낙 배출권을 많이 할당해 주다 보니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는 기업들이 도리어 배출권이 남아서 이득을 남기는 기형적인 탄소 시장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다배출 국가를 대상으로 매년 실시되는 기후변화지수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배출권 거래제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데 부족하다고 지적받았습니다. 한편, 2022년 기후변화 대응지수에서 한국은 전체 64위 가운데 60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배출권 거래제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맞게 개선될지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정부가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 가능량(배출권)을 할당해 주고 추가로 배출하거나 더 적게 배출하는 양은 배출권을 통해 기업 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6. 모호한 ‘2035년 무공해차 전환 목표 설정 추진’


새 정부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공약은 수송 분야에서 내연기관 퇴출입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2035년까지 신규 내연기관 등록 금지를 하겠다고 공약했는데요. 이번 110대 과제 가운데 88번째 과제에서 “전기차·수소차 등 무공해차 보급 확대 및 ’35년 무공해차 전환 목표 설정 추진”을 밝힌 점은 환영할 만한 점입니다. 하지만 ‘목표 설정 추진’이 아니라 ‘이행’으로 계획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대로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등록을 중단하기만 해도 2050년 석유 수입은 40.2% 감소하고, 반대급부로 국내총생산(GDP)이 0.26% 늘면서 일자리도 5만 7천 개 정도 증가할 것으로 분석됩니다. 탈내연기관 시점을 2030년으로 5년 더 앞당기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지고 과실을 거두는 시점도 빨라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2021년 9월 그린피스가 서울 한강에서 현대자동차의 신속한 전기차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7.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고민 부족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정의로운 전환이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나 사회 구성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EU의 경우 오는 2027년까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최소 1000억 유로를 투입할 예정입니다. 이 같은 기금은 에너지 전환 기업이나 관련 중소기업 등을 지원하고 근로자 구직 활동과 재취업 훈련 등에 쓰입니다.


인수위의 국정 과제에서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해서는 23번째 과제에 ‘중소·중견기업 대상 클린팩토리 구축(‘25년 1,800개) 및 탄소 다배출산업 집적 지역의 기업·근로자 대상 정의로운 저탄소 전환 지원사업 추진’ 정도로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2022년 그린피스 활동가가 서울 종로구에서 새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그린피스는 지난 대선 기간 윤석열 당시 후보 캠프에 정책 제안서를 전달하고 KBS와 함께 윤 후보 측 공약에 대한 정책 분석을 실시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1만 4천여 명 어린이들의 손편지를 당시 후보자에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노르마 토레스 그린피스 국제 사무총장이 직접 서신을 보내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는 새로운 정부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110대 국정 과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린피스는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감시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지속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 동참이 더 큰 변화를 함께 만들어 갈 것입니다.


한국 정부에 기후행동 요구하기


글: 정상훈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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