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지났다. 인류의 기후위기 대응은 실패하고 있다.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COP27)가 시작됐다. 이번 총회는 ‘기후정의’를 논의하고 행동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과 그로 인한 피해가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간 뿐만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도 반지하에서, 건설 현장에서, 논밭에서 누군가의 가족이, 동료가, 친구가 숨을 거두고 있다. 다음 차례는 나의 가족이, 동료가, 친구가, 혹은 내가 될 수 있다.
기후위기는 나와 당신의 현실이다.
올해 우리 사회에서도 반지하에서, 건설 현장에서, 논밭에서 누군가의 가족이, 동료가, 친구가 기후변화로 인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우리가 함께 행동하지 않으면, 다음 차례는 내 가족이, 동료가, 친구가, 혹은 내가 될 수 있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깨닫고, 유엔기후변화협약을 만든지 무려 30년이 되었다. 그러나 인류가 연간 배출하는 온실가스량은 30년간 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늘었다. 그 결과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이 세 번 지나는 동안 지구는 더 뜨거워 졌고, 기후는 더 변화했다. 1만 년 전부터 문명을 번성하게 해준 안정적인 기후를 인간이 망쳐 버린 것이다. 말 그대로 기후비상상황이다.
올해 파키스탄에서는 수개월에 걸친 기록적인 폭우와 대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고, 3,300만명이 피해를 입고, 1,700여 명이 사망하는 기후 재난이 발생했다. 지난 달 나이지리아에서도 역대 최악의 홍수로 6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30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하고, 20만채 이상의 가옥이 파괴됐다. 둘 다 기후변화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기후 현상으로 피해가 잇달았다.
이런 숫자들이 잘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비현실적인 피해 규모 때문일 수도 있고, 이제 ‘백년 만의’, ‘역대급’, ‘기록적인’의 수식어가 붙은 극한 기상 현상을 뉴스에서 자주 접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물리적 거리 때문에 남의 나라 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나와 당신이 겪고 있는 실체적 현실이며, “인류에 대한 적색경보 알람이 귀청이 떨어지게 울리고 있는” 상황이다.
외국의 사례가 잘 와닿지 않는다면 우리 안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한국환경연구원이 발간한 2020 폭염영향 보고서는 기후변화로 갈수록 거세지는 폭염에 우리 이웃의 누가 어디서 피해를 입고 있는지를 각종 통계로 보여준다. 2014~2019 기간 동안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은 약 300여명이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어기구 의원실이 최근 5년(2017~2022년 9월)간 폭염으로 폐사한 가축이 2천만 마리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숫자가 잘 다가오지 않는다면 2020년 경향신문이 녹색연합과 함께 공동기획한 ‘기후변화의 증인들’ 시리즈 기사와 영상을 권한다. 각종 숫자 대신 기후위기 최전선에 노출되어 있는 해녀, 농부, 배달기사, 건설노동자, 쪽방 주민 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 글을 빌어 이런 중요한 기획을 해준 경향신문과 녹색연합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또한, 노동건강연대는 매달 최소한 언론에 보도된 노동자의 죽음만이라도 한데 모아 기억하고, 기록하고, 책임을 묻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이 ‘조용한 죽음’ 명단에는 기후변화의 희생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올해 3월, 울진과 삼척에서 역대 최장(213시간) 산불이 있었다. 다행히 직접적인 사상자는 없었다. 하지만 충남의 40대 소방관 한 분이 산불 지원에 따른 5일 연속 비상근무로 인해 과로사로 돌아가셨다. 기후재난이 많아 질수록 재난 상황과 복구에 투입되는 경찰·소방관·군인·공무원 분들의 삶도 더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7월에는 폭염이 있었다. 우리 모두가 폭염으로 힘들었지만 누군가는 폭염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대전 카이스트 신축 건물 공사현장에서 우리 이웃의 아들이었을 40대 노동자 한 분이, 인천 강화 주택 신축 현장에서 누군가의 아버지였을 60대 노동자 한 분이 열사병으로 쓰러져 삶을 마감하셨다.
당연하게도 폭염으로 인한 사망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푹푹 찌는 날씨에 충남 태안 감자밭에서 수확 작업을 하던 30대 중국인 노동자 한 분과 대전 유성구 건설현장에서 50대 중국인 노동자 한 분이 온열질환으로 쓰러져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셨다.
기후변화로 극한 기후 현상이 더 잦아지고, 더 거세지면서 재해를 대비하고 복구하는 과정에서도 우리의 소중한 이웃을 잃고 있다.
8월 경남 산청에서는 60대 노동자 한 분이 우천에 대비하여 초등학교 공사현장에서 비가림막을 설치하시다가 떨어져서 운명하셨다. 인천 강화에서도 50대 노동자 한 분이 집중 호우로 해변에 떠밀려온 쓰레기를 수거하다 굴착기가 바다에 빠져 돌아가셨다
8월에는 또 수도권과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115년만의 기록적인 폭우 사태가 있었다. 아마 ‘서초동 현자’, ‘신림동 펠프스’, ‘강남역 슈퍼맨’ 등을 기억하실 거다. 폭우로 침수된 차만 약 7천여대 였다. 또한, 14명이 목숨을 잃고, 6명이 실종 되고, 26명이 부상당했다.
8월 수도권 폭우 희생자 중에는 특히 가슴을 더 먹먹하게 했던 소식이 있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서 살고 있다 변을 당했던 가족의 이야기다.
발달 장애가 있는 언니를 매일 목욕시키면서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쉬는 날이면 언니와 열세살 난 딸을 데리고 소풍을 다녀오던 40대 후반의 가장과 언니와 딸이 수압 때문에 현관문을 열지 못해 집에 들이닥친 물에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보다 더 참혹했던 비극이었다.
사고 당시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참사를 피했던 70대 할머니는 "병원에서 산책이라도 하시면서 밥도 드시고 건강 챙기세요.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계세요!"라고 문자를 보낸 손녀와 딸 둘을 전부 잃게 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렇게 기후변화의 피해는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으로 집중된다. 이는 국가간에도 마찬가지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가난한 나라에 더 집중 되고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를 일으킨 온실가스는 부자 나라들이 대부분 배출했다. 국가간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 기후 부정의가 발생하는 것이다.
독일의 비영리기구 저먼워치(Germanwatch)는 매년 ‘글로벌 기후 위험 지수’를 발표한다. 2021년 보고서를 보면 2000~2019 기간 동안 기후변화 위험에 가장 취약했던 10개국은 미얀마, 아이티, 모잠비크, 파키스탄 등 전부 글로벌 사우스에 속하는 개도국들이다. 이 국가들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기상 현상 희생자는 ‘평균’ 연간 1만명 정도이다. 2014년 미얀마에서는 사이클론으로 14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 우리가 직면한 기후위기에 부자 나라는 얼마나 책임이 큰 걸까? 일반적으로 글로벌 북반구라고 하면 유럽, 북미의 미국과 캐나다, 오세아니아의 호주와 뉴질랜드, 아시아의 일본과 한국 정도의 산업 선진국을 의미한다.
산업혁명이 시작한 18세기 중반인 1750년부터 2020년까지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 통계를 보면, 고소득 국가와 고중소득 국가가 전체 배출량의 대부분(87%)을 차지한다. 저소득 국가의 배출량은 0.6% 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이 25%로 가장 큰 책임이 있고, 유럽 전체는 31%이다. 중국 역시 14%를 차지한다. 상대적으로 산업화가 늦었던 한국의 누적 배출량의 비중은 1% 정도로 작게 보이지만 저소득 국가 전체 보다 많고, 하위 129개국의 누적 배출량을 모두 합친 것과 같은 양이다. 가파르게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늘려오기만 한 우리나라의 누적 배출량 순위는 30년전에는 30위권 밖이었지만 이제는 17위까지 올라와 그 책임이 커졌다.
고소득 국가에 속하지 않지만 인구나 경제의 규모가 큰 개도국들의 기여도 작지 않다. 주요 20개국(G20)에 속하면서 OECD 회원국인 아닌 국가의 누적배출량 비중은 약 30%이고, 중국이 이중 절반 가량(14%)을 차지한다. 러시아(7%)와 인도(3%)도 책임이 작지 않다.
결국,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5% 정도를 차지하는 EU를 포함한 G20 국가가 앞장서서 줄여야 한다. 물론 그 안에서 선진국의 책임이 개도국보다 크다.
이러한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 원칙은 국가간 뿐만 아니라 한 사회 내에서의 기후위기 대응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6%이다. 건물과 수송은 각각 21%와 15%이다. 시민 개개인이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타고, 육식 위주 식습관을 줄이고, 재활용을 열심히 하고,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와 책임을 산업, 건물, 수송 부문에서 만들어줘야 한다.
특히, 온실가스 다배출 대기업의 책임과 역할이 크다. 녹색연합이 분석한 결과, 10대 대기업이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에 달한다. 기업들의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정부가 배출권 거래제를 2015년에 도입했지만, 2015년 대비 2021년까지 삼성전자의 배출량은 116%가, SK하이닉스는 62%가, 현대제철은 46%가 늘었다.
개인의 책임도 결코 같지 않다. 세계 불평등 연구소는 전 세계 인구 중 상위 10% 부자가 글로벌 개인 탄소 배출량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배출하고, 하위 50%는 12% 밖에 배출하지 않고 있다고 2021년 보고서에서 밝혔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기후부정의가 존재한다. 우리 사회의 늘어나는 부의 불평등 대해서는 많이 들어봤을 것 같다. 위 보고서는 2021년 기준으로 우리 사회 상위 10%가 전체 부의 59%를 차지하고, 하위 50%가 6% 정도 밖에 차지 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개인 탄소 배출량도 마찬가지이다. 상위 10%는 연간 1인당 평균 55톤을, 하위 50%는 7톤의 탄소를 배출한다. 상위 1%는 무려 180톤을 배출한다. 하위 50%에 비해 27배나 많은 양이다. 이렇게 기후변화에 기여한, 기여하고 있는, 기여할 책임이 다른데 피해는 사회취약계층이 더 많이 받았고, 받고 있고,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책임과 역할이 같을 수 없다.
글로벌 남반구에 속하는 이집트에서 11월 6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이번 COP27에서는 이러한 기후정의에 입각한 논의가 주가 되어야 한다.
우선적으로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감축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전 세계 국가들이 제출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분석한 결과, 목표를 다 지키더라도 지구 평균 기온이 2.5도 상승할 것이라는 결과를 유엔이 최근 발표했다. 이 역시 보수적인 예측이고, ⅔ 확률이며, 모든 국가가 다 목표를 지킨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우리는 3도 상승 경로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엄중한 현실이다.
1.1도가 오른 상황에서도 이미 지구 곳곳이 심각한 기후변화 피해를 겪고 있는데, 2.5~3도 상승은 우리가 용납해서는 안 되는 미래이다. 과학적 결론은 명확하다. 1.5도 이내로 막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2030년대 들어서면 1.5도 상승을 넘어서는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COP27에서는 1.5도의 과학적 감축 목표와 3도의 현실간의 괴리를 어떻게 빠르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적응에 대한 논의도 진전을 이루어야 한다. 지금 당장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어도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는 가열된다. 게다가 여전히 인류는 연간 4~500억톤의 온실가스를 내뿜고 있다. 따라서 적응이 필요하다. 특히 기후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아프리카, 동남아, 남미의 국가와 군소도서국의 적응을 위한 대비가 시급하다.
유엔환경계획은 개도국의 적응을 위해 2030년까지 매년 1,550~3,300억 달러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책임이 큰 선진국이 개도국의 감축과 적응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금액은 연간 1,000억달러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번 COP27에서는 개도국, 특히 기후취약국의 적응에 대한 온실가스 주요 배출국들의 재원 지원이 효과적으로 이행될 수 있는 논의가 진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회의에서 가장 주목을 받게 될 이슈는 ‘손실과 피해’다. 이미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기후현상으로 사회 인프라 피해, 재산 피해, 인명 피해, 문화적 손실, 생태계 파괴, 종의 멸종 등을 크게 겪고 있는 국가들에 대해서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이 큰 국가들이 ‘지원’이 아니라 ‘보상’을 해야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손실과 피해에 대한 별도의 재원이 수립되고, 실질적인 보상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어야 한다.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우리나라의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은 결코 작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연간 탄소 배출량은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스의 배출량을 합친 것과 같으며, 1인당 배출량은 OECD내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한국 보다 책임이 적은 국가들이 이미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다. 스페인,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 주로 유럽 국가들이다.
덴마크는 얼마전 선진국 최초로 개도국의 ‘손실과 피해’에 18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한국의 누적 탄소 배출량은 덴마크의 4.5배이며, 2020년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덴마크의 23배이다. 게다가 지난 10년간(2010~2020) 덴마크는 탄소 배출량을 거의 절반 가까이 줄였는데, 한국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이제 한국 역시 ‘기후악당’,’기후민폐’, ‘기후얌체’ 짓을 멈추고,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으로서 그에 걸맞는 감축 뿐만 아니라 한국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피해를 입고 있는 개도국에 대한 지원과 보상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기후 위기는 안전하고 공정한 미래를 위한 실질적인 재정적 약속과 전 세계 국가들이 과학과 연대 그리고 책무성에 집중하여 감축과 적응을 위해 행동 할 때 극복될 수 있다.
P.S. ‘기후정의’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으시면 ‘기후정의 - 희망과 절망의 갈림길에서’(한티재, 한재각 저) 책을 추천 드립니다.
글: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