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엉망진창’이라는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오염수 관리
그린피스는 작년부터 여러 차례 태평양 도서국 포럼(PIF)의 적극적인 후쿠시마 오염수 대응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PIF는 피지, 투발루, 통가, 파푸아뉴기니, 마셜 제도, 호주, 뉴질랜드 등 총 18개 국가들로 구성된 태평양 도서국의 정치 및 지역 연대체입니다.
PIF는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가 안전할 거라는 도쿄전력의 주장과 자료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수치와 설명이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복잡하며 분량도 수백 페이지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럼은 2022년 3월, 핵물리학, 해양과학, 생물학 등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과학자 위원회를 구성하게 됐습니다.
과학자들은 도쿄전력의 주장대로 후쿠시마 오염수가 제염 설비와 희석을 통해 안전한 수준으로 방류될지 확인하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쉽게 말해, 오염수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에 나선 것입니다. 이들은 도쿄전력과 3차례 미팅을 진행한 소감으로 ‘충격적이었다’는 반응을 전했습니다. 도쿄전력이 제공한 오염수 정보와 관련 지식이 매우 허술하고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2022년 8월,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데이터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외부에 공개하고 각자 독립적인 위상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외부 활동을 결정했습니다. 과학자들은 보고서 요약본에서 ‘전문가로서 과학적, 윤리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나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PIF 과학자 위원회 소속이자 미국의 핵물리학자 페렝 달노키-베레스 박사는 도쿄전력이 제공한 후쿠시마 오염수 데이터는 “부정확, 불완전, 비일관적인데다 편향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PIF 과학자 위원회는 도쿄전력이 확보한 오염수 관련 데이터 일체를 공식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요청 뒤 55일이 지나서야 도착한 19개 엑셀 파일의 수준은 기대에 못 미쳤다고 합니다. 데이터는 후쿠시마 원전 부지에 저장된 ALPS(다핵종제거설비) 처리 후 오염수를 4년 3개월 동안 조사한 결과로 오염수 안전성을 판단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오염수엔 64개의 방사성 물질이 들어있지만 4년 3개월 동안 도쿄전력은 그 중 7개 방사성 핵종에만 집중했습니다. 총 1,066개의 오염수 저장 탱크 중 단 1개의 탱크도 64개의 방사성 물질이 검사된 적 없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농도 변화나 ALPS 처리 전후의 차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ALPS 처리 후 오염수가 탱크를 모두 채우기 전 약 30리터만 채취해 샘플링을 진행하여 탱크 바닥의 고준위 슬러지(액체 폐기물과 유기 화합물로 구성된 끈적끈적한 형태) 폐기물의 용량, 농도 수준이나 제염 처리 효과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화학적, 물리적 법칙을 거스르는 결과도 많았습니다. 화학적 성질이 같은 세슘-134와 세슘-137은 방사능이 줄어드는 반감기에 따라 농도 비율이 서서히 감소되어야 하는데 갑자기 비율 증가가 보였고, 반감기가 동일한 세슘-137과 스트론튬-90은 보통 농도 비율이 두 자릿 수 이상의 차이를 보이지 않는데 최대 1만 6천배까지 차이가 났습니다. 과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데이터 결과에 대해 과학자들이 도쿄전력에 여러 차례 질문했지만 ‘모른다’는 답변 뿐이었습니다.
1차례 회의에 참여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담당자와 도쿄전력의 입장은 방류 전후에 방사성 물질을 최종 점검하면 문제 없다는 입장입니다.
오염수의 정체를 아무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떻게 해양 방류가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가 ‘안전’할 거란 주장을 입증할 과학적, 객관적 증거가 없는 상황이지만 도쿄전력의 방류 준비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1km 해저 터널 공사를 마치고 2023년 봄이나 여름부터 방류를 시작한다는 입장입니다.
1월 26일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페렝 박사는 한국에 “태평양 도서국과 협력해 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에 함께 대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해양 방사능 감시 모니터링 계획을 확대하는 방침에 대해서는 사후 처리에 불과한 모니터링은 방사능이 미칠 해양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아니라고 꼬집었습니다.
태평양 섬나라들은 방사능이 미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손실과 생태계 영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이 약 60년 전 태평양 섬에서 진행한 핵실험의 피해가 아직 생생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령이던 마셜 제도에서 1940-1950년대 진행된 핵실험만 총 67차례라고 합니다.
1954년, 마셜 제도에 떨어진 미국 최초의 수소폭탄 ‘캐슬 브라보(Castle Bravo)’의 위력은 히로시마 원자폭탄보다 1천배 컸습니다. 과학자들의 예상보다 2배를 뛰어넘는 위력이었습니다. 방사능 버섯 구름은 160km 이상 날아가 바다로 떨어졌고, 주변 해역에 있던 일본 참치잡이 어선 제5 후쿠류마루(第五福龍丸) 선원 23명 또한 ‘죽음의 재(낙진)’를 뒤집어쓰는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수백만 톤의 오염된 모래와 산호 부스러기가 주변 섬에 5cm 두께로 쌓였는데, 미군이 주민들을 핵실험 사흘 후에 대피시켜 많은 사람들이 치명적인 방사선에 노출되었다고 합니다. 고향을 잃고 타지를 전전하던 주민들이 1970년 대 일부 돌아왔다가 오염된 생선, 게, 과일 등을 섭취하고 심각한 증세를 앓았다는 발표도 있습니다. 이는 마셜 제도 뿐아니라 대부분의 태평양 섬나라들에 사회, 경제, 문화, 생태 측면의 큰 상처를 남기게 됐습니다.
2019년,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이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를 통해 마셜 제도의 이런 폐해를 종합적으로 보고했습니다. 핵실험 후 60년이 지난 시점에도 주변 11개 섬에서 모두 방사성 물질이 발견됐습니다. 이중 일부는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보다 최대 10배에서 1천배 높은 수준의 방사능이었다고 합니다. 마셜 제도는 아직까지 미 정부에 핵실험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태평양 도서국가들이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저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입니다.
그린피스는 50년 전 방사능 피해로 살 곳을 잃은 남태평양 주민들을 지원하는 캠페인을 시작으로 수십년 간 핵폐기물의 태평양 투기를 방지하는 활동들을 진행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이 시점에도 그린피스와 태평양 국가들은 방사성 물질의 해양 방류를 막기 위해 지난한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에겐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를 막을 시간이 있습니다. 핵심은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힘이 정책 결정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린피스는 여러분의 캠페인 서명과 후원 참여 덕분에 지난 5년 간 후쿠시마 오염수의 문제점을 밝히는 새로운 분석들을 국제 사회에 제시했습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한국 정부가 국제법적 제소 등 적극적 대응으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를 막을 때까지 강력한 캠페인을 펼칠 예정입니다. 그린피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캠페인에 꾸준한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