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느린 아이와 빠른 아이를 같이 키울 때
하나만 키웠다면 깨닫지 못했을
며칠 전 둘째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해진 상담 기간 외에도 가끔 아이가 잘하고 있다고 연락을 주신 적이 있기에 그것 때문에 온 연락인가 하고 있는데, 웬일로 개인적인 일이라며 살짝 운을 띄우시더니 조심스럽게 물어오셨다.
“어머니, 하율이 혹시 한글 어디 가서 배우나요?”
질문을 듣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이 웃음은 두 가지 뜻이 있었다.
1. ‘에이~ 선생님, 저는 애한테 그런 거 안 시켜요.’
2. ‘선생님도 우리 아이가 빠르다는 걸 인정하시는 거군요.’
아니라고 말씀드리니 구몬 같은 거 배우는 거 아니냐고 다시 물어 오신다. 점점 기분이 업되는 것이 느껴졌다. 목소리 톤은 ‘미’에서 ‘솔’ 정도로 더 올라가고 어깨도 아마 평소보다 3센티미터 정도는 더 올라갔던 것 같다.
선생님의 사정은 이랬다. 선생님도 나와 같이 아들이 둘인데 지금 9살, 6살이란다. 9살짜리는
유치원 때부터 이것저것 시키고 가르쳤는데도 한글을 떼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래서 6살짜리 둘째는 꼭 한글을 가르치고 싶은데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배우기 싫은 아이와 엄마 아빠가 돌아가면서 실랑이를 하고 있는 중에 우리 아이가 한글 읽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깜짝 놀란 선생님이 그림책을 주고 읽어보라고 했더니 조금은 읽어내더라는 것이다.
둘째는 지금 만 33개월이다. 단어를 이용한 더듬거리는 자기표현은 18개월이 지난 후부터 했던 것 같고, 두 돌이 지나자 말하는 문장이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합하여 어느 정도 읽어내는 수준이다.
“ㄷ(디귿)이 ㅏ(아)를 만나 '다'! ‘다’가 받침 ㄱ(기역)을 만나 '닥'!”
이런 식이다. 띄엄띄엄 이긴 하지만 음절 하나씩을 읽은 뒤 머릿속에서 조합해서 단어도 읽는다.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재밌어서 스스로 읽기 시작하니 이렇게 신통할 수가 없다. 요즘 시대는 이 나이에 영어까지 술술 하는 시대라지만, 그래도 왠지 우리 아들은 천재인가 싶고 아이가 이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다.
사실 둘째가 한글을 깨치게 된 건 팔 할은 2살(18개월) 많은 형님 덕이다. 형이 하는 건 다 따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둘째스러운 특성이 있다. 또 형한테 질 수 없다는 승부욕이 강한 성격도 있다. 다섯 살인 첫째에게도 일부러 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마침 EBS에서 새로운 한글 교육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제목은 무려 <한글 용사 아이야>!ㅏ(아),ㅣ(이),ㅑ(야)라는 모음 용사 3명이 자음을 찾으러 출동한 뒤, 찾은 자음에 자신의 모음을 붙여 글자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또 다른 주인공인 ‘훈민이’와 ‘정음이’가 한글 용사 ㅏ,ㅣ,ㅑ가 찾아온 한글 카드를 ‘뭐든지 자판기’에 넣으면 카드에 적혀 있는 뭔가가 실제로 뚝딱 만들어진다.
평소 아들 유전자가 뭔가 다르다는 생각은 안 했지만 용사, 로봇, 특공대 같은 것들에 환장하는 것 보면 다르기도 한가보다. 특공대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용사들이 나오는 한글 프로그램이 주효했다. 어찌나 재밌어하는지 본방으로 보고 주말 재방으로도 보여주었다. 평소 영상을 많이 보는 편은 아니고, 형제가 각각 자기 보고 싶은 영상을 말하면 15분 남짓 되는 애니메이션이나 자연 관찰 영상을 하루에 하나씩 보여주곤 했었다. 그런데 그런 영상들이 한글 용사 프로그램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한글 프로그램을 보여주면 좋은 점 또 한 가지는 TV를 보여줄 때 드는 죄책감이 덜하다는 것이다. 뭐라도 배우고 있으니까, 하면서 합리화하기 딱 좋았다. 그래서 마지못해 보여주는 척하며 한글 프로그램을 신나게 보여줬다.
EBS <한글 용사 아이야> 공식 홈페이지에서 한글 카드 자료와 따라 쓰기 자료를 내려받을 수 있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사이좋게 한글 공부를 하던 형제들
그렇게 6월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했더니 두 형제 모두 어느 정도 한글을 제법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보이는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니 너무 신기한지 계속 읽어대고 있다. 하루는 아이들과 함께 마트에 걸어가는데 큰 아이가 바닥을 보더니 “오! 수!” 했다. 하수구 뚜껑에 적힌 글자를 읽은 것이다. 지금 수준으로는 당연히 읽을 수 있는 글자였지만, 그걸 듣자마자 엄마만이 할 수 있는 과장된 리액션과 콧소리와 박수를 섞어 대답해주었다.
“우와~ 맞아 하진아! 진짜 잘 읽는데? 오수는 더러운 물이라는 뜻이야.”
그랬더니 다음부터 걸어갈 때 바닥에 ‘오수’라는 글자가 보일 때마다 말했다.
“엄마, 오수는 더러운 물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정확히 1년 전만 해도 지금 같은 상황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첫째가 36개월이 지났는데도 말할 줄 아는 단어가 20개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 이것도 집안 가족들 호칭을 다 끌어다 써서 겨우 채운 것이었고, 뭔가 소통이 필요할 때는 대부분 손짓 발짓과 "어! 어!"로만 이야기했다.
그때 당시 적었던 아이가 말할 수 있는 단어들
그렇다고 소통에 큰 문제가 있었느냐? 그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손짓 표현이 너무 정확해서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엄마 아빠가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말이 느린 아이들에게는 보통 말의 필요성을 느끼고 물꼬를 틀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는데(예를 들어 물컵을 손으로 가리키는 아이한테 "물! 해 봐." 이렇게 말을 써서 원하는 바를 표현하게 하는 것), 우리 부부는 아이가 당장 요구하는 것들을 해주지 않으면 내면에 불만족감을 키울 거란 불안감에 어설픈 손짓 표현도 다 알아듣고 요구하는 대로 해 주었다. 어쩜 이렇게 디테일하게 표현을 할까! 오히려 감탄하는 날도 많았다.
세 번째 생일이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아이가 처음으로 "아파요."라는 말을 했다. 이제 아플 때 말로 할 수 있겠구나 싶어 한시름 놓았는데, 자려고 불 끈 어두운 방 제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한참을 "아파요." 하며 연습을 하던 아이. 우리 부부는 자는 척하면서도 마주 보며 키득키득 웃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짠했는지 모른다. 본인은 얼마나 말이 하고 싶었을까 하는 마음에 울컥했다. 말 연습을 시키면서 아이가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는 걸 조금씩 느꼈다. 틀려도 말로 뱉어야 고쳐주면서 연습이 될 텐데, 본인이 먼저 해보고 발음이 안되면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조바심이 나다가도 마음을 고쳐먹은 건 때가 되면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부러 선수 쳐서, 괜히 부모의 불안감으로 아이를 다그치는 일이 없도록 자연스럽게 배워나갔으면 했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생겼다. 첫째의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 중에 평소 손찌검을 자주 하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맞았다고 선생님께 연락을 받을 때마다 속이 상했지만, 그런 아이는 어딜 가나 꼭 있기에(짧은 교직 경력으로 느낀 바) 아이가 극복해야 할 문제라 생각하고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신 아이에게 대처 방법을 열심히 가르쳤다.
"하진아, 친구가 때릴 때는 큰 소리로 하! 지! 마! 이렇게 말해야 해. 그래도 친구가 계속 때리면 그땐 선생님을 불러서 도와달라고 말하는 거야."
그런데 문제는 이름과 비슷한 '하지 마'는 말할 수 있는데 '선생님'은 어려운지 말을 안 하려고 했다. 암만 시켜봐도 묵묵부답. 답답함이 쌓여가던 중에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당시 18개월이던 둘째가 먼저 '떤땐님'을 말한 것이다. 15개월 즈음부터 둘째도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알음알음 주워들은 말을 그때부터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더 신경이 쓰였다. 말하기에서 동생에게 밀려버린 형의 심정이 어떨까,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을까 자꾸만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둘째가 뭐라고 말하면 "우와!" 하면서 잘했다고 손뼉 쳐주면서도 첫째 얼굴을 힐끔 쳐다보게 되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했지만 사실은 언어 발달 육아서도 찾아보고 맘 카페도 들락거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건 아닌데 싶은 마음이 자꾸 들던 어느 날, 결국 우리는 아이를 언어치료센터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절대 뭔가 투입하지 말자는 기존의 육아 방침을 180도 바꾼 것이다. 만 37개월이 지나고 바로 집 근처에 있는 언어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아이가 말 표현만 느릴 뿐이지 표현 자체를 못 하거나 꺼리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언어치료 선생님과의 첫 수업에서 "까까 죠!"라고 하면 과자를 주겠다고 했을 때 '죠' 발음이 안 되어서 "까까 도!"라고 바꾸었는데도 안 되어 결국 "까까 고!"하고 과자를 받아먹었던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수업이 재미있는지 아이는 집에 와서도 배운 걸 계속 연습하고 성공하면 정말 좋아했다. 또 속으로는 짠했다. 이렇게 말이 하고 싶었구나, 진작에 보내줄 걸.
언어치료 수업 후 5개월 정도까지는 첫째와 둘째의 말 표현이 비슷했다. 그러다가 점점 첫째가 월등히 나아진다는 것이 느껴졌다. 머릿속에만 있던 말들이 발음이 되니 모조리 끄집어 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왜요?" 질문도 수시로 받았고 나는 또 그게 그렇게 신이 났다. 아이도 수업 가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발음 교정하면서 1년은 채워야지 했는데 감사하게도 9개월 다니고 나서 선생님께서 먼저 그만 해도 되겠다고 말씀해주셨다. 어찌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랬었던 내가 둘째 어린이집 선생님의 전화에 어깨가 으쓱하는 장면이라니. 다시 둘째 이야기로 가보자. 한 배에서 태어나도 둘은 어찌 이리 다른지, 이 아이는 틀리든 말든 그냥 막 내지르는 성격이다. 말한 걸 틀렸다고 해도 그냥 배시시 웃고 마는 애교쟁이 녀석. 어설프게라도 시키면 다 따라 하는 성격. 그러니 말 표현이 금방 금방 늘었다. 두 돌 땐 거의 문장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는데, 당시 규모가 작은 어린이집 사정 상 3세 반이 더 어린 동생들과 통합을 해야 한다고 해서 우리 아이는 4세 반에 들어갔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지금도 형님들과 잘 지내고 있다.
만약 첫째를 언어센터에 보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조금 늦어지긴 했겠지만 말을 못 하진 않았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거라는 것. 우리는 아이의 미래를 절대 예측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둘째도 말은 정말 빠르지만 다른 부분은 어떻게 발달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흔한 말이지만 사람이 참 얼마나 간사한 존재인지. 겸손하게 살겠다는 삶의 모토가 그 전화 한 통으로 순식간에 흔들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니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 아이를 하나만 낳았다면 절대 몰랐을 것이다.
첫째만 키웠다면 아마 기다려주긴 했겠지만 항상 느린 아이에게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느린 아이를 몰아세우지 말고 기다려주자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애끓음으로 왜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지, 왜 아이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하는지,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되어 나를 탓하고 괴롭히지 않았을까. 만약 둘째가 첫째로 태어나 혼자 컸다면 아마 다른 느린 아이들과 그 부모님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에 대한 기대치도 점점 높아져 괴로운 상황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둘을 키우니 느린 아이, 빠른 아이와 양쪽 부모 심정을 모두 알게 됐다. 이건 정말 우리 가족에게도 다행이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다행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첫째가 느린 것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만약 반대였다면? 늘 앞서가는 첫째에게 기준이 맞추어져 따라오지 못하는 둘째를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이제 겨우 본격적인 학습의 길에 한 발 내딛는 한글 공부일 뿐이지만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제 속도에 맞게 해낸다. 기다리지 못하고 조바심 내고 불안해하는 쪽은 부모일 뿐이다. (부모와 선생님은 같이 도울뿐이다.) 앞으로 기나긴 여정에 불안함을 몰고 다닐 나에게 꾸준히 해주고 싶은 말을 지금 여기에 박제해 두고 싶다. 지금의 마음을 잊지 말고 잘 새겨 두어야지. 어린이집 선생님과 통화를 마무리하며 드린 말씀은 예전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더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