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엄마가 되기로 했다

모든 엄마들의 일과 취미 생활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by 초록빛보라

자칭 타칭을 망라해 늘 하고재비라 불렸다.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정 때문이다. 젊었을 때부터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친 적이 많았다. 교사가 되기 위한 기나긴 수험 생활로 가족들을 늘 긴장 상태로 만들었고 자전거 동호회 활동 외에 혼자 운동을 나가거나 여행을 떠나서 위험에 노출될까 걱정을 많이 끼쳤다. 십자수 바느질을 좋아해 바늘 한 번 잡으면 밤을 새워 건강 걱정을 끼치기 일쑤였고 읽고 싶은 책을 읽으려고 늦게 잘 때가 많아 잔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건 바로 악기 연주다. 특별히 잘하는 악기는 하나도 없지만 건드려 본 건 많다. 가장 최근에 배우게 된 것이 바로 플루트다. 첫 발령을 받았던 학교에서 이미 배우고 계셨던 선배님들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삶의 가장 큰 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무리 악기를 좋아해도 혼자 하는 것이 무슨 재미랴. 플루트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플루트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면서 합주의 매력에 빠졌다. 정기연주회도 세 번이나 하고 대구에서 열리는 플루트 페어의 초청 공연이나 교사 동아리 연수 후에 소소한 연주회 공연까지 무대에 설 일이 제법 생겼다. 연주 실력이 부족하다 느끼니 늘 무대 울렁증이 있지만 연주를 할 때 가장 행복하기에 배운 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경북 초등 음악(국악) 교과교육연구회에서 주관하는 음악 발표회가 있었다. 두 곡 합주를 위해 총 11번을 모여 매번 두 시간씩 연습했다. 연주 당일은 10분 공연을 위해 오전 8시에 집을 나서 포항까지 왕복 4시간 차량 이동에 리허설, 메이크업, 의상 맞춤과 공연 후 뒤풀이까지... 쉴 새 없는 일정에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저녁 8시였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늘 그랬듯 행복함이 몰려온다. 하지만 아주 잠시다. 그리고 연습 때보다 못했다는 아쉬운 마음이 남고 그래도 끝나서 후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생각이 지나가면 이제는 미안함이 몰려온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보고 있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게 미안함을 넘어 민망한 마음이 든다. 게다가 친정 엄마가 딱 이날 김장을 하신다고 하니 같이 돕지 못하는 마음은 가시방석이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자괴감까지 느껴진다.


플루트 오케스트라를 시작하고 두 번째 정기 연주회가 있던 날이었다. 그때 음악감독님이 연주회가 끝나고 무대에서 인사를 하시는데, 연습하는 동안 아기를 돌봐주신 친정 엄마,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 이하 가족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셨었다. 그런데 그땐 내가 결혼 전이라 미처 몰랐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돕고 희생하고 너무나 애를 써야 한다는 걸.


그래도 너무나 좋아하는 일이라 포기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하면서도 맘껏 누리지 못한다. 하지 못할 때의 괴로움보다는 하면서도 맘껏 누릴 수 없는 미안함이 그래도 조금은 덜 무겁다면 너무 이기적인 걸까.




어제 아침엔 우연히 친구의 인스타 스토리를 보고 육아 때문에 할 수 없이 좋아하는 일을 그만둔다는 걸 알게 됐다. 스튜어디스로 근무했던 마음도 얼굴도 예쁜 친구였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키우다 최근에 복직을 하면서 친정 엄마가 오셔서 아이들을 봐주셨는데 사정이 생겨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시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게 됐다고 했다. 그 친구의 어쩔 수 없는 선택 앞에서 나도 눈물이 났다.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많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취미 생활까지 하고 있는 나는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늘 느끼는 미안함은 당연한 마음인 걸까. 엄마가 부재일 때 아빠가 아이를 보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도 왜 나는 항상 고마운 마음 뒤로 미안하고 죄짓는 마음이 더 많이 드는 걸까. 남편이 일이 생길 때는 싫은 소리 없이 최대한으로 배려하면서도 나의 일에 대해서는 늘 이렇게 마음이 쫄리고 힘들어지는 걸까.




나는 연주 무대에 서는 것도 좋지만 연주를 준비하며 대기실에 머무는 시간이 정말 좋다. 그 시간엔 모든 멤버들이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 소녀가 된다. 고데기로 웨이브도 만들어주고 눈썹도 붙여주고 가지고 있는 액세서리도 나눈다. 드레스 옷매무새도 여며주고 쇄골뼈와 팔뚝엔 반짝이는 글리터도 발라주며 서로 더 예쁘게 보이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멋진 포즈로 프로필 사진도 남기고 단체 사진도 찍는다. 서로 하하호호 웃고 즐기는 그 시간이 어찌 보면 긴장한 채로 무대에 설 때 보다 훨씬 행복한 시간이다.


그런데 이제는 보인다. 웃는 그녀들도 사실은 얼마나 미안한 마음을 이고서 젊은 세월을 버티고 지나왔는지. 또는 젊은 시절 맘껏 펼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이토록 늦게라도 펼치게 된 것인지. 그분들께 당신은 그럴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앞으로의 세상은 여자라서, 엄마라서 포기해야 하고 단절되어야 하는 상황이 조금은 나아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는 한은 앞으로 계속 하고 싶은 걸 하며 이기적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뭐니 뭐니 해도 내가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하기에.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것이기에.


IMG_20211206_010228_793.jpg 우리 집 1호가 "엄마, 엘사 같아요!"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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