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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보라 Nov 13. 2023

서이초 막내 선생님을 추모하며

7월 23일에 썼던 글

2년 차라는 것이 어떤 시기인지 너무나 잘 안다. 새로운 한 해 새로이 만날 아이들과 어떤 학급을 꾸려 나갈까 신나게 계획을 세우고, 오래 사용할 학습 도구나 자료들도 뚝딱뚝딱 만들고, 학급 게시판 환경은 어떻게 꾸밀지 생각하고, 마르지 않은 임용고사 지식으로 지도서도 바로 흡수해 최고의 수업을 만드려 노력하는 시기이다. 꿈을 거두어 버리기에는 너무나 찬란한 시기여서 그게 너무나 아프다.



2년 차에 돌봄 업무를 맡고 너무 힘들어 울 때도 많았는데 선배들 앞에서는 절대 티를 내지 않았다. 분명 그랬다. 하지만 예리한 선배들은 나의 힘듦을 알아챘고 어느 날 이야기했다. "보라쌤, 힘들면 좀 징징거려도 돼. 쟤처럼 좀 징징거려 봐 바." 내가 만난 선배들은 새파란 후배의 하소연을 듣고 나 대신 쌍욕도 날려주고 일 처리 방법이나 노하우들도 알려주며 내 마음을 풀어주셨고, 덕분에 힘든 신규 시기를 지낼 수 있었다. 아이들, 학부모? 힘든 아이가 왜 없었을까. 하지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는 분명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민 끝에 건넨 상담 권유에도 반발하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셨고,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의 부모님은 늘 죄송하다 말씀해 주셔서 힘이 들어도 힘든 줄 몰랐다. 아이를 바르게 성장시키겠다는 목적이 서로 같았기 때문이다.



휴직을 했다가 20년 2학기에 다시 복직을 했는데, 복직 전에 가장 먼저 들었던 건 그 반 금쪽이의 엄마를 건드리지 말고 금쪽이도 웬만하면 건드리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알고 보니 이전 학년 담임을 국민신문고에 고발했다고 했다. 멀쩡한 아이를 자꾸 이상한 아이 취급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내가 본 아이는 본인이 수업을 하기 싫으면 학습지를 내던지고, 떼쟁이가 되어 고성의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햇빛 들어오는 것이 너무 싫다며 굳이 한 자리만 고집했다. 체육 시간 공을 주지 않았다고 친구를 때리고 또 울었다. 분명 정상 행동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아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정말 천사 같은 아이들이라 웬만한 싸움의 중재에 같이 노력해 주었고 다행히 별일 없이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로 매해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들은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해라. 수업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말을 기계 같이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온갖 소리를 냈다. 친구를 괴롭히지 말라는 말에 세상 비열한 미소를 날렸다. 그런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버텼다. 이유는 단 하나다. 수업을 열심히 듣고 싶은 더 많은 눈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열심히 수업 나눔을 쓰고 있는데, 사실 이건 나의 방패 중 하나다. 이만큼 열성을 다해 가르치고 있다는 걸, 아이가 바른 사람으로 자라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자꾸 강조해야만 혹시나 서운한 일이 생기더라도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다행히 잘 소통하며 한 학기가 무사히 지나간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인디스쿨에 하루가 지나가기 무섭게 올라오는 아동학대 신고 당했다는 글을 보며 이 일이 머지않아 내게 올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단지 운이 1% 정도 좋아 겨우 지뢰를 피했음을. 그래서 마음이 너무나 후벼파인다. 우리는 뭘 그리 최선을 다하려고 애를 썼나. 조금 못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고 왜 아무도 말하지 못했나. 자기 검열은 또 왜 그리 해댔나. 어차피 운에 달린 일인 것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교육청에 있는 분향소에 다녀왔다. 오고 가는 2시간 운전 길에 교대 동기들, 지난 학교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께 마구 전화를 걸었고 잘 지내냐 물었다. 작년 근무했던 학교에 신규로 들어왔던 2년차 후배 선생님에게도.. 힘들면 기댈 곳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같이 바꿔나갔으면 좋겠다. 같이 분노하고 같이 울고 그리고 행동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가신 분께 덜 미안할 것 같다. 언제까지 교단에 설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동안 이 부채감을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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