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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보라 Mar 19. 2022

모교에서 은사님과 함께 근무하게 된 사연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2월, 세 번만에 겨우 임용을 합격한(수능 4수 포함) 초초초 장수생 늦깎이 예비교사였던 나는 드디어 교사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연수원에서 신규 연수를 받고 있었다. 9시부터 시작되어 점심을 먹고 오후 저녁 먹을 무렵이 되어서야 끝나는 녹록지 않은 연수였지만 정말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기에 부푼 꿈을 안고 그 기간을 보냈다. 그런데 연수 기간 중 어느 날, 점심시간 밥을 먹던 식당에서 앞으로의 내 교직 생활을 뒤흔들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니... 보라 아이가? 보라 맞제?"


밥을 먹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보라가 맞냐고 물어온 그 사람은 다름 아닌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것이다. 어쩜, 18년 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모습의 은사님이 옆 테이블 맞은편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다. 물론 흔치 않은 이름에 신규 연수생 명찰을 패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하고 생각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18년이나 지난 한 명의 제자를 선생님이 먼저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 주시다니 정말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다 날 뻔했다. 


"니 교대 갔드나?"

"네, 다른 대학 갔다가 다시 시험 쳐서 교대 졸업하고 임용 쳤어요 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래, 내야 잘 지냈지. 니 (교대 간 것) 진짜 잘했다. 나는 수석교사 연수받으러 왔다. 진짜 반갑데이."


다음 날부터 연수원 가는 길이 더 신이 났다. 식사할 때라도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게다가 선생님께서 옆에 계신 동료 분들께 나를 아주 훌륭한 제자라고 소개까지 해 주시니 더 어깨가 으쓱하고 다시 옛날 선생님의 제자였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사실 교대를 다니는 중에 합격하면 찾아뵈려고 선생님께서 임지를 옮기실 때마다 계속 찾아보고 있었다. 교육청 홈페이지에 '스승 찾기' 코너가 있어서 선생님 이름을 검색하면 현재 근무하는 학교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개인정보 때문에 원하면 검색이 안 되게 할 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어디로 옮겼는지 확인하면 그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교직원 소개도 확인하고 꼭 합격해서 감사 인사드리러 찾아뵈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 기회가 이렇게 일찍 찾아오다니! 그것도 선생님께서 먼저 나를 알아봐 주시다니! 생각할수록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이었다.




나는 그 해 9월에 차로 15분만 가면 되는 살고 있는 지역에 발령을 받았다. 3월엔 보통 기피 지역에 발령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행히 합격자 중 중간 정도의 적당한 순위를 받은 덕에 9월 1일 자로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운 좋게 발령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선생님, 저 ○○초등학교에 발령 났어요!"

"진짜? 집에서 가까운 데에 잘 됐다. 축하해 보라야."


그리고 며칠 뒤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발령 축하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하셨다. 친히 내가 살고 있는 곳까지 와주시고 여성복 가게에서 예쁜 원피스 한 벌을 사 주셨다. 너무너무 감사했다. 이런 넘치는 사랑을 받아도 되나? 정말 생각할수록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근무하는 첫 학교는 거의 50 학급이 되는 아주 큰 학교였는데, 은사님께 이야기를 들었다며 수석 선생님 제자라면 안 봐도 알 수 있다고 많은 선생님들이 먼저 기대한다는 인사 말씀을 건네주셨다. 한편으로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늦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두려운 마음을 조금은 진정시킬 수 있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던 난데 든든한 백이 생긴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을 정도로 선배 선생님들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다.




교직에 들어오면서 정한 버킷리스트가 3가지 있다. 모교에서 근무하는 것, 은사님과 함께 근무하는 것, 제자와 함께 근무하는 것. 일단 살고 있던 지역에 근무하게 되었으니 모교 근무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근무한 지 2년이 지났을 때 은사님이 다른 지역에서 우리 지역으로 이동해 와 다시 나의 모교로 발령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식당에서 은사님을 우연히 만났던 행운보다 더 큰 행운이 왔다는 직감이 들었다. 우리 지역은 4년을 근무하고 다른 학교로 이동을 한다. 그런데 9월 발령을 받으면 그 해는 치지 않아 6개월을 더 근무할 수 있다. 보통은 어느 학교로 이동할지 많이 고민하지만 나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모교에 이미 은사님이 근무하고 계시니 재고 따질 것도 없이 무조건 여기였다. 게다가 아주 덕망이 높으신 교장 선생님께서 계신다고 하니 정말 하늘이 돕는다는 게 느껴졌다.


교사에게 3월은, 특히 새롭게 임지를 옮긴 교사라면 학생들만큼 적응의 시간을 거치기 마련인데, 나는 수석 선생님의 제자라는 이유로 정말 큰 환대를 받았고 그럴 때마다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낳은 자식에게만 내리사랑이 있는 게 아니었다. 은사님께 받은 은혜를 아이들을 잘 가르침으로 보답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마침 첫째를 임신 중이었는데 임산부인 제자 몸 상할까 얼마나 살뜰히 챙겨 주셨는지 모른다. 안타까웠던 것은 그 해가 은사님이 그 학교에서 근무한 마지막 해였는데 나는 9월 예정일을 채우지 못하고 아이를 조산한 까닭에 1학기가 마치기도 전에 출산휴가에 들어갔고 곧바로 육아휴직을 하며 영광스러웠던 은사님과의 근무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여전히 선생님은 시시때때로 아이를 키우는 다 큰 제자를 챙기셨다. 아기는 잘 크고 있니? 예쁜 내복 한 벌 보냈어. 밥 잘 챙겨 먹고 몸조리 잘해. 둘째를 낳았을 때도 어김없었다. 나는 3년 간의 길고 긴 휴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2년 전 2학기부터 복직을 해 다시 모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사이 선생님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하셨고 이제 정년퇴임을 바라보고 계신다. 다시 함께 근무할 기회는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러나 5개월 짧은 기간 동안 은사님과 모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다.


5년 만에 버킷 리스트를 두 가지나 이루었으니 앞으로 세 번째 버킷리스트는 25년을 더 기다릴 자신이 있다. 정년퇴임까지 아직 20년이 넘게 남았으니 그동안 제자들을 최선을 다해 가르치기로 새롭게 결심해본다. 9살이었던 첫 제자들이 이제 19살 고3이 되었는데 교대를 가는 아이가 있을까 사뭇 궁금하다. 이후에 가르쳤던 6학년 큰 아이들은 벌써 대학을 졸업할 때가 다 되어가니 어쩌면 세 번째 버킷리스트를 이룰 날도 생각보다 빨리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된다. 은사님과 같은 사랑을 주려면 지금의 자리에서 결코 부끄럽지 않게 지내야겠다.


스물네 살 어린 제자보다 더 아름다우신 우리 은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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