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해보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여름 방학 동안 매주 공교육 정상화 집회가 있었다. 7월 18일 이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모이자고 발 벗고 나서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매주 쉬지 않고 집회가 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일정이 많아 제대로 참석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여름휴가를 금요일 하루밖에 받지 못해서 한 주는 여행을 다녀야 했고, 한 주는 플루트 오케스트라 공연, 한 주는 석 달 전에 잡아놓은 큰아들 대학병원 진료 예약이 있었다. 유일하게 참석할 수 있었던 8월 5일 토요일은 한낮 기온이 35도를 넘는 폭염이었다. 하지만 발걸음 할 수 있어서 그저 좋았다. 뜨거운 마음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앉아 우는데 우울과 분노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8월 17일에 교육부는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교사는 앞으로 전문가에 의한 검사․상담․치료를 권고할 수 있고, 사전협의 후 상담을 실시하며 근무 시간․직무 범위 외의 상담 거부가 가능하다.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시킬 수 있으며 생활지도 불응 시 징계 요청 및 교육활동 침해 행위로 사안을 처리할 수 있다. 학교의 생태를 잘 몰랐던 혹자는 말한다. 이때까지 이러한 교육 행위를 할 수 없는지 몰랐다고. 엄밀히 말하면 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아동복지법 제17조 5호에 의해 정서적 아동 학대로 고소를 당할 수 있으므로 못 했던 것이다. 누가 고소의 위험까지 끌어안고 아이들을 가르치려 할까. 아무리 사명감 투철한 교사라도 그건 정말 힘든 일이다. 고시가 발표되었다 한들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교칙을 새롭게 정비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므로 당장에 어떤 변화는 전혀 없다. 오히려 여러 언론 보도로 인해 아동 학대 신고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악용한 신고가 7월 18일 이후로 더 늘었다는 것이 기가 막히는 일.
그런 분위기 속에서 2학기 개학을 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서 설렘 가득한 아이들과는 달리 내 마음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심각성이 많이 알려졌다고는 하나 교사로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전혀 없기에 답답한 마음만 가득했다. 그러는 사이 서이초 막내 선생님의 49재 추모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이 모아져 49재인 9월 4일 월요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지정하여 출근을 하지 않고 추모를 하자고 했다. 하지만 K교사들은 아이들을 두고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이 결코 편치 않으니 학교장 재량휴업일 지정이라는 대안을 내놓았다. 긴급한 사안의 경우라면 얼마든지 재량휴업일로 지정하여 아이들의 수업권을 보호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수의 교사들이 출근하지 못하는 일은 정말 긴급한 사안이지 않은가. 하지만 교육부는 재량휴업일을 지정하는 학교장과 해당일 연가, 병가로 출근을 하지 않는 교사들을 징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재량휴업일 지정을 결정했던 학교도 너도나도 결정을 번복, 철회하기 시작했다. 꺾이는 사기만큼이나 답답함은 늘어만 갔다. 병가를 쓰는 걸로 교사들 내부에서도 논의가 많았다. 하지만 징계가 두렵지는 않았다. 정당한 교육 활동도 고소 거리가 되는 지금의 학교와 교실이,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지 못하는 것과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이루어 갈 사회의 모습이 더 두려웠다.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느 날 아침, 학생이 제출한 신청서에 가장 힘이 되는 쪽지를 보았다. ‘존경하는 선생님, 공교육 멈춤의 날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힘내세요.’ 당장 동학년 단톡방에 공유했고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학부모 부심! 그런데 그 쪽지가 다가 아니었다. 그날 오후에 또 다른 학부모로부터 온 연락은 정말 죽어가던 마음속 생명수 같았다. 9월 4일 공교육 멈춤에 동참하기 위해 교외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싶은데 혹여나 그것 때문에 담임인 내가 피해를 입게 될까 봐 조심스럽게 연락을 하신 것이다. 피해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이 너무나 감사하여 메시지를 열자마자 눈물이 났다. 사실 교사를 이토록 지지해 주시는 학부모님이 계시다면 피해를 입는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결국 체험학습 서류를 쓰기로 결정하고 결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결과는 반려. 가정학습에도 기타 사유에도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집 근처 어디라도 체험을 간다는 내용에 공교육 멈춤 참여 내용을 추가하는 것은 되지만 오로지 공교육 멈춤 내용으로만 쓰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학교의 대처가 서운하고 정말 속상했지만 마음을 전해주신 학부모가 있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정말 든든한 힘이자 위로가 되었다. 교사는 동료 교사 외에 마음의 위로를 받는 일이 극히 드물다. 하지만 이제 우리 편이 생긴 것 같아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평생 잊지 못할 감사의 제목.
추모일에 맞춰 9월 2일에 또다시 대규모 교사 집회가 열렸다. 경북 구미에서만 무려 열 대의 버스가 출발했다. 늘 두 대로만 갔었는데 분노한 선생님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30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들이 모여 무언가가 정말 바뀌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도 되었던 날이다. 특별히 학부모님의 응원을 등에 업었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교직 인생의 소중한 터닝포인트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