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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보라 Dec 03. 2023

8년 전 제자와 우연히 만났다

그것도 공교육 정상화 집회에 처음 참석하는 날 아침 일찍 동네 빵집에서. 집회 때 점심 식사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동하고 기다리는 중간에 먹을 요량으로 빵을 사러 동네 빵집에 들렀다. 하나씩 집어 먹기 좋은 빵을 골라 계산하려고 계산대 앞에 섰을 때다. 갑자기 마주 보고 서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선생님!” 하고 부르는 게 아닌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핏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 누구지 하며 슬쩍 물었는데 아르바이트생이 다시 말했다. “선생님, 저 희은이에요!” 순간 희은이 얼굴이 떠오르고 내가 담임이었을 때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초임 시절 6학년 담임을 할 때 가르쳤던 제자였다. 너무나 반가워서 한참이나 안부를 주고받고 버스 시간 늦을까 봐 다음을 기약하며 아쉽게 헤어졌다.


하필 오늘 같은 날 이렇게 우연히 만날 수가 있나 싶어 너무나 신기하면서도 희은이를 만나게 하신 그분의 뜻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면서 생각했다. 내가 왜 이렇게 교육을 위해 애를 쓰고 있는가. 답이 바로 나왔다.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치고 키워내고 싶다는 소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집회 자체가 감동, 슬픔, 연대감 등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날은 특히나 제자를 만났다는 감격에 겨워 집회 내내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집회가 끝나고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희은이로부터 톡이 와 있었다. 두근두근하며 메시지를 열었다. 희은이는 만나서 너무너무 좋았다고, 선생님 아프지 마시고 무더운 여름 시원하게 보내시라고, 사랑한다는 말에 하트눈 이모티콘까지 아주 다정한 말들을 가득 남겨 놓았다. 집회 때 돌아가신 선생님의 유가족 발언에 눈물을 흘렸는데, 희은이의 메시지를 보니 또 눈물이 났다. 이번엔 감격과 기쁨의 눈물이었다.


희은아, 8년 동안 아주 다정한 어른으로 잘 자랐구나. 선생님은 요즘 마음이 많이 힘들어. 그래도 너를 보니 힘든 마음이 많이 옅어지는구나. 이 자리에서 정년까지 버틸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너를 만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유럽 여행 준비하며 읽던 책, 자전거 타는 거 좋아하는 것, 플루트 연주하는 것, 합창단 지도하고 교실에서도 피아노를 자주 연주하던 모습, 인공눈물 많이 넣는 것까지 아주 디테일하게 나를 기억해 주는 너를 보며 제자에게 담임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어른일까 생각이 많아지는구나. 지금은 비록 힘이 들지만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너를 생각할게. 앞으로의 내 교직 인생은 너의 다정함에 빚을 지게 되겠구나.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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