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미니멀 라이프의 고백
깜짝 놀랐다. 몇 해 전부터 열풍인 ‘미니멀 라이프’의 슬로건 중 하나가 ‘버릴수록 행복하다’란다. 어떤 이유로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사람, 그래서 수납이 항상 고민인 사람, 넘치는 물건 정리를 위해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처방되는 제1 법칙은 버리기다. 공간의 여백을 만들기 위해 일단 버리라고 권한다. 그것도 지금 당장, 과감히 버려야 한다. 물건에 미련이 남으면 안 된다나?
하긴, 우리는 물건에 깃든 사연에 미련이 남아 간직하기도 하니까. 공을 들여 ‘덕질’하는 물건도 있으니까. 찬장 가득 살림살이를 쟁여 놓기도 하고, 언젠가 꼭 쓸 것만 같아서, 살 빼면 입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물건의 쓰임을 유보하기도 하니까. 당장은 쓸모없는 물건들이 삶의 공간을 잠식하는 건 곤란한 일이다. 공간을 비우기 위해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소유에 대한 열렬한 욕망의 출처를 살피고, 물건과 관계 맺는 패턴을 정돈하기도 전에 물건부터 내다 버리라는 조언은 나쁘다. 물건이 무슨 잘못인가, 다 버려 버리게. 그 파격 때문에 인기를 끄는지도 모르겠다. 몽땅 버리는 통쾌한 순간의 카타르시스! 그렇다면 정말 버릴수록 행복해질까? 미니멀 라이프를 맥시멈으로 대차게 말아먹은 나는 단호히 대답한다. 아니라고.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면서 물건을 버릴 때 잠깐 행복했지만, 그 행복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물건을 버린 후 비슷한 물건이 금세 다시 갖고 싶어 졌다. 플라스틱 정리함을 버리고는 핸드 메이드 라탄 바구니를 원했다. 옷장을 차지하는 낡은 옷들을 바리바리 싸서 기증한 후, 텅 빈 옷장을 보며 느끼는 뿌듯함도 잠깐이다. 결국, 비슷한 스타일의 새 옷을 다시 산다. 나는 비움으로써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했던 게 아니라 온갖 매체를 통해 강요된 ‘킨포크식’ 취향으로 하나둘 물건을 교체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패턴을 반복하는 나를 자책했다.
그깟 구매욕을 참지 못하는 내 잘못일까? 물론 의지의 문제도 있지만, 소비자본주의 시대의 필연적 결과라고 변명하고 싶다. 물건뿐만 아니라 욕망까지 비우려는 내 의지를 꺾는 소비 시장의 부추김은 새 물건을 사도록 여러 형태로 이끈다. ‘불만족의 창조’를 마케팅으로 삼은 건 차를 더 팔아먹기 위한 어떤 자동차 회사 사장의 기획이었다. 패스트 패션은 어제의 옷을 유행이 지난 스타일로 만들고, 패스트 퍼니처는 가구를 쉽게 조립하는 만큼 쉽게 버릴 수 있게 했다.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컬러는 모든 아이템을 새로 다시 칠하고 싶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더 큰 만족을 강요당한다. ‘필요 이상’ 가지도록, 더 좋은 것, 더 세련된 것, 지금 유행인 것을 원하도록 말이다. 때로는 오래 쓸 수 있게 개발된 상품도 기업이 계획한 수명이 되면 폐기할 수밖에 없다. 이미 기업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다 알고 있는 ‘계획된 진부화’ 이야기다. 어쨌든 쉽게 버리고, 새것을 사고, 만족감을 느끼면 그만이다. 그렇게 나는 유행에 굴복했다.
지구 어딘가에 쓰레기를 쌓아가는 미니멀 라이프가 과연 행복이란 가치를 내세울 수 있는지 따져 묻고 싶다. ‘버릴수록 행복해진다’라는 슬로건은 굳이 버리지 않아도 될 물건을 폐기하라 부추긴다. 버려진 나의 물건들이 어디로 가는지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내 집에서 사라진 물건이 쓰레기장으로 옮겨졌을 뿐이라는 사실에 행복은커녕 머쓱하기만 하다. 라이프 스타일의 유행은 반복적 소비와 폐기를 정당화시키기 때문에 문제다. ‘재활용’처럼 말이다. 분리배출과 재활용은 버리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재활용하면 되니까 버려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지난 4월 쓰레기 대란에서도 확인했듯, 비닐을 비롯한 재활용 쓰레기는 계속 늘어나는데 재활용은 거의 되지 않았다. 재활용 업체의 수거 거부는 예견된 일이었다고도 하는데 말이다.
미니멀리즘, 단순하며 충만하기. 그 아리송한 지향점을 향한 첫 번째 단계가 ‘버리기’여서는 안된다. ‘버림’은 ‘소유’를 전제한 행위라는 점에서 부차적이다. 물건을 버린다는 것은 이미 물건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유’하는 모습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 버리면서 기뻐할 게 아니라 어떻게 가져야, 어떻게 물건과 관계 맺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숙고해야 한다. 나의 열렬한 소유 욕구를 어떻게 알아챌 것인지, 그 물건은 원래 나의 취향이었는지, 매체에 의해 강요당한 것은 아닌지를 물어야 한다. 물건을 갖기 전, 필요와 쓰임에 대해 공을 들여 고민해야 한다. 무작정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의 쓰임을 재정의하는 태도, 처음부터 물건과 관계 맺는 방식의 재고가 필요하다. 미니멀 라이프가 내거는 충만한 삶의 본질은 단지 ‘물건을 소유하냐, 버리냐’ 두 갈래의 선택만을 권하지 않는다. 공유, 점유, 교환 등 더 많은 선택지로 뻗어 나가는 가능성이 함께 이야기되어야 한다.
우린 피팅룸에서 잠깐 입어보는 새 옷처럼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쉽게 취하고 있진 않나. 오랜 것에서 미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와비 사비(WABI-SABI)’든, 텅 빈 여백에서 충만을 찾는 ‘미니멀’이든, 쓰레기 없는 대안적인 삶을 일구는 ‘제로 웨이스트’든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지향하는 가치와 나의 삶이 이루는 조화로움이 아닐까. 라이프 스타일에 억지로 끼워 맞춘 나의 모습이 인지 부조화를 이루며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버리고 새로 사는 모순적인 미니멀 라이프를 살았던 나의 경험처럼 말이다.
뚜렷한 지향과 신념을 담은 삶의 태도가 단지 슬로건으로 그치지 않기를, 유행처럼 소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물성의 본질에, 군더더기 없는 공간이 주는 에너지에 집중하며 삶의 본질을 포착하자는 미니멀리즘의 알맹이에 가까이 다가가 보자. ‘더’ 원하던 모습에서 ‘덜’이어도 괜찮다며 인식을 전복시켰던 미니멀리즘의 본질을 떠올린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의 모양을 다듬어 가기 위해 소비자가 아닌 '생활 정치'의 주체자로서 자신을 정체화 해 나가자. 지구와 나에게 모두 좋은,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 시대를 비껴갈 대안을 상상하면서.
<매거진 쓸> Vol.2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