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는 아니지만, 배달 음식을 시켜 먹습니다. 쓰레기를 줄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환경 활동가의 일상 속에서도, 가끔은 편리함이 승리하곤 합니다. 날씨가 극단적일 때, 몸이 노곤할 때 이용하는 서비스는 말 그대로 손가락만 까딱하면 눈앞에 맛집 음식들을 배달해줍니다. 하지만 배달 음식은 저에게는 곧장 일종의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가 되기도, 스트레스가 되기도 합니다. 한 번만 시켜 먹어도 플라스틱 배달 용기 쓰레기가 수북해지기 때문이지요. 일회용 플라스틱의 역습!
배달시킬 때는 편했는데, 다 먹고 나니 잘 씻어서 분리배출 해야 하는 재활용품 쓰레기가 쌓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 폐기물의 47%가 포장재입니다. 우리나라 배달 중개 서비스 이용자는 2018년 기준으로 약 2,5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전자상거래 확산, 1인 가구 증가 등 다양한 요인으로 좀 더 편리하게 음식도, 물건도 배달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일회용품 포장재 쓰레기도 늘어날 수밖에요. 하지만 커지는 배달 소비 시장에서 일회용품을 줄이는 마땅한 규제나 정책이 없습니다. 배달 중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와 시민들의 자발적인 실천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음식 포장에 사용된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는 현재 100% 재활용할 수 없습니다. 이물질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고, 이물질을 깨끗이 씻는다고 하더라도 처리 시설에서 다른 재활용품 쓰레기들과 섞여 오염될 수도 있습니다. 뚜껑은 PP, 용기는 PS… 재질이 다른 플라스틱을 맨눈으로 분류해내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런 실태를 잘 알고 있기에 어쩌면 배달 음식을 시켜 맛있게 먹고 나서도 쓰레기 앞에서 한숨을 쉬고는 합니다.
환경 활동가는 지속해서 쓰레기 처리 시설 현장을 방문하며, 시스템을 어떻게 하면 잘 개선할 수 있을지 골몰하는 일도 합니다. 쓰레기 소각장, 쓰레기 매립지, 재활용 쓰레기 선별장, 음식물 쓰레기 집하장, 음식물 쓰레기 처리 시설… 이제 안 가본 곳이 거의 없는데도, 갈 때마다 충격을 받습니다. 너무나 많은 쓰레기가, 적은 인력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처리됩니다. 시설에 들어설 때 온몸에 배여든 악취는 지금 떠올려도 코끝에 맴돕니다. 하지만 일하시는 분들 앞에서 손가락으로 코를 움켜잡을 수는 없었지요.
그렇다고 배달 음식 시켜 먹지 말자!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쌓여 가는 쓰레기 앞에서 여러 생각이 교차합니다. 내가 버린 쓰레기를 누군가가 옮기고, 누군가가 만지고 골라내며, 누군가가 씻는다는 것, 음식이 나의 입속으로 들어가기까지 많은 사람의 노고가 있었겠지만, 음식을 담았던 포장 쓰레기가 버려진 이후에도 더 많은 사람의 노고가 더해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또 의도치 않게, 어떤 동물은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해 먹기도 하지요. UNEP에 의하면 매년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죽는 바다새가 100만 마리, 고래나 바다표범, 바다소 등 보호해야 할 해양 포유동물이 10만 마리나 된다고 합니다. 매년 최소 8백만 톤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유출되며, 이는 1분마다 트럭 1대의 쓰레기를 바다에 덤핑하는 수치나 마찬가지라는 WEF의 보고서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나의 편리를 위해 선택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알게 된 이상, 조금은 신중해지려고 합니다. 한숨만 쉬고 있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정부나 기업에 대책을 요구 한다거나, 재활용이 더 잘 될 수 있도록 기여하기 위해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실천을 적극적으로 찾아본다거나 할 수 있겠지요. 대안은 무엇일지 고민하기도 하고요.
‘대안’이라고 하니 얼마 전, 모 배달 중개 서비스 업체에서 ‘생분해 용기’를 배달 시 사용할 수 있도록 내놓으며 ’지구를 생각하는’, ‘친환경’ 등의 키워드로 언론 보도가 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생분해 플라스틱은 정말 친환경일까요? 플라스틱 용기의 대안으로 부상하는 생분해 플라스틱은 일반 쓰레기로 버릴 경우, 매립되거나 소각됩니다. 재활용 쓰레기로 분리배출하더라도 다른 플라스틱 재질과 섞이면 재활용이 불가능합니다. 현재 국내에서 재활용품 쓰레기를 수거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으로는 생분해 플라스틱을 구분해 재활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와 기업이 모두 ‘일반 쓰레기로 버리라’라고 안내합니다. 일회용품의 대안으로 모양만 다른 일회용품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처리해야 할 쓰레기양을 늘리는 것은 아닌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일회용품을 일회용품으로 대체하는 것이 과연 대안일까요?
‘편리함의 대가를 치르다’라는 진부한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분명 플라스틱 쓰레기는 전 지구적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재활용 안 되는 플라스틱의 처리 비용은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사서 고생인 셈입니다. 현실에서 고스란히 내일의 부담으로 지워지기 전에 지금 당장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생산 단계에서부터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적절한 제도와 대안이 마련된다면 분리 배출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동물의 뉴스를 전해 듣는 고통도 줄어들겠지요?
*빅이슈 211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