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플라스틱은 약속했다. 세상을 바꿀 거라고. 목재나 금속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을 플라스틱으로 만들면 훨씬 쉽게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그 무게는 얼마나 가벼운지, 제작만 아니라 운송도 훨씬 쉬워졌다. 게다가 유리로 만들어야 했던 것도 능란하게 대체했다. 단단해야 하는 것, 탄성이 있어야 하는 것, 말랑말랑해야 하는 것, 투명해야 하는 것, 열에 강해야 하는 것, 마찰력이 있어야 하는 것, 한 번에 깨져야 하는 것, 매끄러워야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형태로 변형이 가능한데다가 재활용까지 가능한 만능 재질이었다. 무엇보다 굉장히 저렴했다. 얼마나 저렴했냐고? 무려 한 번 쓰고 버려도 될 정도로 저렴했다.
편리함의 대가, 쓰레기 더미로 되돌아온 플라스틱
물이나 음료를 담는 페트병부터 카페에서 쓰는 폴리에틸렌 컵, 야구 경기가 열리면 나눠주는 PVC 막대 풍선, 선거철에 나부끼는 폴리에스터 원단의 현수막, 편의점이나 슈퍼나 마트에서 20원만 얹어주면 받을 수 있는 비닐 봉지 같은 것들을 아까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낄 필요가 없다고 플라스틱이 약속했기 때문이다. 적은 돈을 들여 많이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대안을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플라스틱이 대안이라고 플라스틱 스스로가 선언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동안 우리는 이 플라스틱의 약속을 굳게 믿고 따랐다. 그렇게 만들어낸 플라스틱 제품이 무려 83억톤이다. 좀더 정확히 따지자면 우리가 83억톤의 플라스틱을 만들어내는데 1950년부터 2015년까지, 고작 66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 66년 동안 만들어진 83억톤의 플라스틱 중 63억톤이 버려졌고, 그중 고작 9%만 재활용*됐다. 지금 ‘사용 중’인 플라스틱 20억 톤은 대부분 새로 만들어진 것 아니면 아직 버려지지 않은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세 플라스틱 이야기도 해야 하고, 재활용이라는 환상에 대해 이야기도 해야 한다. 우리가 플라스틱의 약속만을 믿고 따른 결과는 처참하다. 이 약속에 따라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플라스틱으로 바꿨고, 너무 많은 플라스틱을 쓰고 버렸다. 이제 이 약속을 재고할 때가 왔다. 지금 당장 우리는 이 약속을 파기하고 플라스틱 없는 새로운 문명을 설계해야 한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 6월, <일회용 플라스틱 : 지속가능성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각국 정부로부터 플라스틱 오염을 방지하고 플라스틱이 미치는 환경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이 로드맵에 따라, 2018년 세계 환경의 날 행사 주최국이었던 인도는 2022년까지 인도의 13억 인구가 쓰고 있던 모든 일회용 플라스틱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칠레와 보츠와나, 페루는 비닐봉지 사용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나이지리아는 전국에 플라스틱 재활용 시설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2050년 바다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을 것
이보다 앞서 일어난 비닐 쓰레기 대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중국은 유럽과 미국 등으로부터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입하고 있었다. 폐플라스틱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해 자원화하고 있었는데, 중국 내에서 생산되는 플라스틱과 버려지는 플라스틱만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되자 유럽과 미국으로부터의 폐플라스틱 수입을 전면 중단한 것이다. 여기에 원유 가격의 하락세가 이어졌고,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비용이 새 플라스틱을 만드는 것보다 많이 들어 폐플라스틱이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기 때문에 도무지 처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미국의 연방 정부와 각 주는 당장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규제를 논의하기 시작했고 유럽연합은 2021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생산과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플라스틱은 더는 약속을 이행할 수 없는 불성실한 채무자가 됐다. 가볍고 만들기 쉽고 저렴하기 때문에 자신을 쓰라고 했던 플라스틱 때문에 생겨난 환경 오염은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 한반도를 뒤덮는 미세먼지와 지난여름 겪었던 유례없는 폭염, 음식과 물에 유입돼 식탁에 오르는 미세 플라스틱을 해결하기 위해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은 금속을,유리를, 도자기를 모두 플라스틱으로 대체해 확보할 수 있는 시간과 비용을 뛰어넘은지 오래다. 무엇보다 이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면, 2050년에는 바다에 어류보다 플라스틱이 많아질 거라는 세계 경제 포럼의 연구 보고도 있지않나. 이제 우리도 플라스틱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플라스틱 없는 사회와 플라스틱 없는 지구를 만드는 새로운 약속을 해야할 때가 왔다.적어도 불필요한 일회용 플라스틱은 당장 사라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인식의 전환, 제도 정비와 함께 시작돼야
이런 때에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도록 인식의 전환을 촉진할 수 있는 것은 제도이다. 우리는 이미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 매장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컵과 일회용 빨대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컵 보증금 제도가 폐지되고 10년만이다.
정부에서 일회용컵 사용 규제를 시행하기 전까지의 매장 모습을 기억해보라.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않을거면서 아무도 머그컵이나 유리잔에 음료를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고 아무도 머그컵이나 유리잔에 음료를 따라줄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규제가 시작되자마자 빠른 속도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제도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을 바꾸는 촉매가되었다. 빨대 없이 먹어도 그렇게까지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이제 우리는 편리함에 젖었던 더 많은 습관을 바꾸기 위해 플라스틱 저감을 위한 제도를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
*한겨레, '지금까지 플라스틱 총생산량 83억톤 대부분 쓰레기로 버려져'. 2017.7.20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03526.html
참여와 혁신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8.11.13
참여와혁신(http://www.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