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앞둔 무더운 여름이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기 전, 더 넓은 무대에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일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환경부에서 주관하는 '국제환경전문가 양성과정'이었다. 국제환경전문가 양성과정은 일정 기간 교육을 거쳐 국제기구 인턴에 합격한 연수생에게 체제비를 지원해주는 정부 프로그램이다. 대다수의 국제기구 인턴이 무급으로 운영되는 점을 감안하면, 생활비 걱정 없이 환경 관련 국제기구를 경험할 수 있는 국제환경전문가 양성과정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나는 해당 과정에 선발되기 위해 여름방학을 무려 학교 기숙사에서 보내며 서류와 면접을 준비했다.
하지만 결과는 최종 탈락. 대입 이후 오랜만에 탈락의 쓴맛을 맛봤다. 물론 지금 돌이켜 보면 떨어질 만도 했다고 생각한다. 면접(특히 영어면접)에서 말을 더듬는 등 제대로 인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예비번호를 받을까 잠깐 기대도 했지만 부질없는 희망이었다.
솔직히 나는 합격할 줄 알았다. 녹색에너지경영 자기설계전공과 같은 기후변화 분야에 대한 열정을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이력이 내 무기라고 생각했다. 그 외에 기후변화와 관련된 여러 대외활동이나 비영리단체 인턴쉽 경험도 함께 내세웠다. 결국 첫인상이 크게 좌우되는 면접장에서 나의 무기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탈락 통보를 받았다. 물론 나보다 더 뛰어난 지원자들도 분명 많았을 것이다.
어쨌든 탈락은 탈락이다. 여름방학을 국제기구 인턴 준비로 알차게 보내려던 나의 계획은 완전히 무너졌다. 탈락 통보를 받은 후 며칠간 기숙사에서 은둔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번 여름은 대학생으로서의 마지막 방학이었고, 이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종의 정언 명령이 머릿속을 울렸기 때문이었다.
나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마지막 남은 13학점을 채우기 위해 충실히 수업을 들으며 동시에 취업을 준비하는 옵션이었고, 다른 하나는 학교의 산학협력 인턴쉽을 이용해 인턴 학점을 받아 졸업하는 옵션이었다.
세상 물정 경험을 중요시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인턴 채용공고를 뒤지기 시작했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당시 몇몇 환경컨설팅 업체에서 신입사원을 뽑고 있었다. 그중 탄소배출권 사업개발 부서에서 사람을 찾는 공고가 눈에 들어왔고, 지체 없이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일주일 뒤, 동작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 지원한 회사로부터 서류합격 통보 연락을 받았다. 실무진 면접과 임원면접이 예정되어 있으니 준비하라고 했다. 특히 임원면접의 경우 영어발표와 더불어 '배출권거래제'를 주제로 PT 발표를 준비해야 했다.
지난 국제환경전문가 양성과정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면접을 준비했다. 실무진 면접은 정형화되어 있는 질문들, 예를 들어 자기소개, 지원 동기, 목표 성취 경험 위주로 모범답안을 준비해 달달 외웠고, 영어발표도 미리 대본을 짜두었다.
재미있던 건 PT발표 준비 과정이었다. '배출권거래제'라는 주제는 상당히 포괄적이었고, 다룰 수 있는 내용이 많아 자칫 발표가 처질 수 있었다. 환경경제학 수업에서 배운 배출권거래제 내용을 그대로 활용하자니, 면접관들의 지루한 표정이 벌써 눈에 선했다. 그래서 보다 강력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사업개발이라는 지원 직무에 걸맞은 사업제안서 형태의 PT 면접을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면접관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사업 아이템을 선정하기 위해 회사 뒷조사부터 시작했다. 방치된 지 몇 년은 된듯한 회사 홈페이지에서는 소득이 없었다. 구글링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정보가 없는 회사라면 지원을 고민해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마지막으로 던진 카드는 그 회사 임원의 페이스북 염탐(...)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쿡스토브(조리기구) 사진을 발견했다.
문득 몇 주 전 읽은 인터넷 신문기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내용인 즉 쿡스토브를 개도국 주민에게 보급하여 탄소배출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쿡스토브로 뭔가를 하려는구나!' 강한 확신을 얻는 나는 PT 주제를 쿡스토브 보급을 통한 해외 온실가스 감축사업으로 정했다. 장표는 배출권거래제 개요를 시작으로 사업 배경, 비즈니스 모델, 예상 효과 등으로 구성했다.
추억이 새록새록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면접 보기 전 PT 발표자료를 미리 건네받은 그 회사에 비상이 걸렸다고 했다. 비밀리에 추진 중이던 쿡스토브 보급사업 정보가 누출된 줄 알았던 것이다. 입사 후에도 팀원들이 나에게 정보를 제공한 배후가 있는지 집요하게 캐물었다. 임원 페이스북 계정에서 쿡스토브 사진을 봤다고 말해도 끝까지 믿지 않았다.
면접 당일, 면접장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회사 근처 카페에서 준비한 대본을 외우고 또 외웠다. 다행히 그날 컨디션도 좋았고, PT 발표까지 실수 없이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다음 날 합격 통보를 받았다. 마지막 학기를 산학인턴 학점으로 졸업한 후, 자연스레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내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커리어를 시작한 그해 여름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였다. 인턴쉽 지원을 포기하고 학교를 다녔다면 남들과 비슷하게 취업을 준비했을 것이다. 어쩌면 더 좋은 조건의 직장에 자리를 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내렸던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기보다는, 그 선택이 빛을 발하도록 내 앞길을 계속 닦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
첫 직장에서 3년간 다양하고 흔치 않은 경험을 쌓았고, 그것은 나의 큰 자산이 되었다. 무엇보다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그 3년 동안의 경험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풀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