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빵, 그 서러웠을 이름

- 내 친구 이름은 국화빵이었다

by 이지현


그리운 친구



깊어가는 가을은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가 딱이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라고 불렀지만, 나는 언제나 이맘때면 어린 시절의 일본인 친구와 국화빵이 떠오르고 마음이 서럽다.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수업을 파하면 교문 앞에 와있는 국화빵 장사 앞에 먼저 달려가서 앉았다. 이미 동글동글한 구멍 속으로 밀가루가 하얗게 밀려들어갔고, 이제 연하고 달콤한 팥고물 차례였다.

어느 게 팥 단지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들어가는지 눈여겨보았다가 그 풀빵이 다 익기를 기다려 얼른 사야 했다.




눈썰미란 다 비슷해서 행동이 잽싸야 찜한 풀빵을 산다. 여지없이 나는 그 기득권을 뺏기기 일쑤였다.

풀빵 하나 사기 위해 온 안간힘을 기울여서 찜해도 풀빵 장사와 미리 친해지는 사교성도, 찜한 풀빵에 대한 소유권 주장도 할 수 없던 내성적이었던 나는 할 수 없이 풀빵 장사가 골고루 팥 단지를 듬뿍 넣기만을 바랐다. 그저 운에 맡길 뿐이었다.


애들이 많아지면 눈치 빠른 풀빵 장사는 한 숟갈로 여러 개의 빵에 고물을 나눠 넣었다. 그래도 추운 겨울날 잠시 손이 뜨끈뜨끈해지기도 하는 풀빵의 순간적인 아삭거리는 맛에 사 먹곤 했다.


쌍둥이인 여자 친구가 있었다. 엄마가 일본인이었던 그 애들은 정말 국화빵처럼 닮았다.

혀 짧은 소리를 해대는 그 애들은 국화빵 장사가 학교 앞에 오는 날이면 빙 돌아서 피해 갔다. 그래도 국화빵 앞에 둘러앉은 아이들은 쌍둥이들에게 '국화빵이다 국화빵' 하며 놀리는걸 취미로 삼았다. 쌍둥이들은 그런 아이들을 피해 얼른 가버리곤 했다.


쌍둥이들이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도 한 번이라도 놀리는 애들에게 삿대질도 못해주는 나는 그냥 쌍둥이와 시선이 마주치면 고개를 숙여 피했다.



그 애들이라고 그걸 먹고 싶지 않았을까.

유미와 어느 날 한 반이 되었다. 동생이었든지, 언니였든지 가물거린다.

한국말을 어눌하게 하는 유미의 국어공부를 도울 목적으로 선생님이 나와 짝이 되게 했다. 내가 그중 잘하는 게 국어와 사회였기 때문이다.

먼저 나서서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니 그 덕분에 가까이 지냈다. 어쩌면 쌍둥이들 집에 놀러 가는 걸 좋아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집에는 희한한 과자나 물건들이 많아서 그걸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언제나 이국적인 멋으로 특이했다. 다들 흙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지만, 쌍둥이들 집은 시멘트로 발라서 흙이 없이 햇살이 튀도록 반짝였다.


쌍둥이들은 엄마와 일본말로 주고받았는데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표정만 열심히 보았다.

유미가 한글이 서툴러서 내가 가서 같이 숙제하는 것을 그 애의 엄마가 좋아했다. 유미는 자주 나를 데리고 자신의 집에 가곤 했다.

한글보다는 일본말에 더 익숙한 그 아이들이 한글 숙제를 하는데 아무래도 내가 도움이 되었던 듯싶다.



국화빵으로 불리던 친구가 먹던 국화빵



어느 날 나는 일본 과자들을 얻어먹기만 해서 미안했었을까,

국화빵 세 개를 사서 흰 종이봉투에 담아 갔다.

유미와 유지, 쌍둥이들 엄마랑 해서 세 개를 산 것이다. 그 애들은 국화빵을 보자마자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것처럼 정말 맛나게 먹었다. 물론 나는 일본 화과자를 받아먹었다.


그 애들이 국화빵이라고 놀림을 받는 동안에도 곁눈으로 얼마나 그걸 먹고 싶었을까.

더군다나 그애 집에서 얻어먹었던 화과자에는 국화빵처럼 달콤한 단팥이 가득하지 않았던가.



아버지가 한국인이지만 엄마가 일본인인 관계로 아무것도 분별할 수 없던 친구들에게 쪽발이니 국화빵이라는 놀림으로도 그냥 웃어야 했던 유미와 쌍둥이 자매 유지.


그 애가 일본으로 영영 전학 간다고 떠나던 날을 오래 기억한다.

그애 집 긴 골목의 대문깐에서 오래 기대어 서있던, 안 가고 싶다며 나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던 짙은 눈썹의 유미.


그렇게 놀림을 받았어도 이 땅이 정이 들었었을까. 어린 나도 쌍둥이들이 그렇게 놀림을 받을 때는 떠나는 게 오히려 더 낫겠다고 맘속으로 생각하곤 했는데.

아니면 일본으로 가더라도 거기서는 또 한국인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혹시 미리 알고 그렇게 울었을까.

아마 어른들로서는 어린 두 아이가 상처를 입으면서 자라느니 일본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했으리라.

유미와 유지가 그때 놀리던 친구들의 잘못을 용서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차별받지 않고 무사히 행복하게 잘 살았다면 좋겠다.

아니, 두 자매는 국화빵처럼 잘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언제나 꼭 붙어 다녔으니까.

혹여라도 이 글을 본다면 한 번이라도 유미나 유지가 연락을 해왔으면 좋겠다.

이 겨울, 추억의 선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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